데뷔전 초구를 홈런으로 연결한 태너 전 감독 사망
OSEN 이지석 기자
발행 2011.02.13 07: 30

[OSEN=이지석 미국통신원] 1979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우승을 이끌었던 척 태너 전 감독이 13일(이하 한국시간) 펜실베니아주 뉴캐슬의 자택에서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태너 전 감독은 1979년 월드시리즈에서 1승3패로 리드를 당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고 4승3패로 극적인 우승을 이끌었던 인물. 당시 우승이 확정되자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그리고 선수들의 아내들까지 모두 덕아웃 지붕에서 'We are family'라는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었던 태너 전 감독은 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소유자였다.

 
당시 패배의 위기에 직면한 월드시리즈 5차전이 열리던 날, 태너 감독은 모친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그러나 태너 감독은 의연한 자세로 팀을 지휘했고, 결국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소중한 승리를 따냈다.
 
선수 시절 태너 감독은 진기한 기록의 소유자였다. 1955년 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빅리그 생활을 시작한 그는 데뷔 첫 경기에서 초구를 홈런으로 연결시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
 
감독으로서 태너는 1970년부터 1988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거치며 통산 1천352승1천381패의 성적을 남겼다.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태너는 여러 팀의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파이어리츠 구단에 남아 닐 헌팅턴 단장의 시니어 어드바이저의 역할을 수행했다.
 
버그 실리그 커미셔너는 "태너 전 감독은 평생을 야구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라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야구에만 헌신한 인물로, 특히 말년에 소중한 인연을 맺었던 파이어리츠 구단으로 돌아와 매우 기뻤다"고 회고했다.
 
최근에는 만년 약체로 전락했지만 파이어리츠 구단은 태너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8년 동안 7차례나 5할대가 넘는 승률을 기록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팀 주축 선수들의 약물 복용 사실을 눈 감아 주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태너 감독은 너클볼 투수 윌버 우드를 구원투수에서 선발투수로 변신시켜 큰 성공을 거뒀고, 리치 고시지를 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발굴해냈다. 무엇보다 투수들의 분업화를 체계적으로 이끈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특출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지만 도루를 앞세운 기동력의 야구로 파이어리츠를 강팀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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