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웅, 연기의 ‘테크니션’을 꿈꾸다 [인터뷰]
OSEN 조신영 기자
발행 2012.09.27 16: 51

이 남자, 매력적이다 못해 조금은 놀랍다. 설마 했던 명장면은 그의 치밀한 계산아래 만들어진 것이고, 다부진 말솜씨와 놀라운 흡입력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게 만든다.
최근 종영된 KBS 2TV 드라마 ‘각시탈’에서 기무라 슌지 역으로 열연을 펼친 배우 박기웅을 합정동에서 만났다. 아직 드라마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박기웅은 간혹 슌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매니저를 내보내고 단 둘이 마주한 박기웅은 인터뷰도 마치 드라마를 찍듯 진지했다. 여느 배우들과의 인터뷰와는 조금 달랐다.
다작으로 다져진 탄탄함과 절친했던 故 박용하를 통해 얻은 인생의 경험은 그를 진정한 연기의 ‘테크니션’을 꿈꾸게 만드는 좋은 기폭제가 된 듯 했다.

◆ ‘각시탈’이 남긴 영광의 상처..8박9일과 링거투혼
박기웅에게 ‘각시탈’을 마친 소감을 물었더니 “그냥 촬영을 또 해야 할 것 같다. 연기의 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촬영 마지막 일주일 중 5일은 차에서 있었고, 이틀은 숙박업소를 잡았어요. 그런데 저희는 1-2시간 밖에 못자서 숙박을 안 하고 대실을 하면 됐죠.(웃음) 작품 끝나고 종방연 이후에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하고 일요일을 휴가로 받았는데, 많이 아파서 몸살 약 먹고 잔 기억밖에 없어요.”
각시탈 이강토(주원)와가 선(善)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그가 맡았던 슌지는 극 후반 악(惡)을 대표하는 인물로, 극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슌지는 극 초반 평범한 학교 선생님으로 순수했던 인물이었지만, 형 이강산(신현준)과 어머니(송옥숙)의 복수를 위해 각시탈을 쓴 이강토에 의해 자신의 형 켄지(박주형)가 죽임을 당하자 '복수'의 칼날을 갈며 변모했고  그렇게 악귀가 된 캐릭터. 연기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캐릭터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꼽아달라고 하자 “착했던 슌지가 일본 순사로 변신하는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다”면서 얘기를 풀어냈다.
“슌지라는 인물이 주인공의 당위성 부여를 위한 ‘악의 축’이라고 생각했고, 히어로를 만들어내고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원래 못 된 인물이 아니었잖아요. 시대의 흐름과 아픔 속에서 변모하는 모습을 그려야 돼 정말 어려웠어요. 양쪽에서 줄을 타는 느낌이었죠.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부상투혼도 있었기에 가장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점을 꼽아달라고 하자 박기웅은 “거친 액션은 전문적인 연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그렇게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하지만 밤 정말 많이 셌다”면서 웃었다.
그는 “디졸브 촬영이라고 잠 조금씩 자고 몇 박 몇 일 씩 촬영하는 게 있는데 제 원래 기록은 7박8일이었다. 그런데 ‘각시탈’을 통해서 8박9일로 갱신했다”면서 “한 브리지 신은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나더라. 링거도 많이 맞았다”고 고백했다.
◆ 한계에서 벗어나고픈 ‘연기자’
다소 복잡한 감정을 연기해야 했던 박기웅은 철저한 계산아래 얼굴 표정을 만들어냈단다. 많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게 새겨진 슌지가 자살하는 장면은 그의 노력이 집약된 것. 얘기를 듣고 나니 조금은 놀랐다.
“강토를 마주하고 난 뒤 슌지가 자살하는 부분은 제가 정말 많은 준비를 했어요. 철처히 테크닉을 발휘해서 촬영한 장면이에요. 오른쪽 얼굴은 웃고, 왼쪽 얼굴은 울고 있었죠. 알아채신 분들이 있을까요.(웃음)”  
그는 한계에서 벗어나고픈 사람처럼 자신의 얼굴을 다양하게 연습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박기웅은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을 수도 있는데 평소에 얼굴 근육을 가지고 연습을 많이한다”면서 “귀를 움직이거나 사시를 만들어보거나, 한쪽 눈으로만 울거나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기자는 대중예술인이기도 하지만 서비스인이기도 하죠. ‘나는 100% 몰입해서 촬영했으니 네가 느껴라’가 아닌 시청자들이 보시기에 좋은 장면을 만들어 드려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철저한 테크니션이 되고 싶어요. 완벽한 기술 위에 감성을 쏟아 부으면 그 연기를 접하는 시청자분들이 보기시에도 좋지 않을까요.”
‘관객의 눈’을 중요시 여긴다는 박기웅은 “계산적인 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스태프와의 궁합을 논하는 ‘배우’
박기웅의 연기에는 현장 스태프와의 찰떡 궁합도 한몫했다. 윤성식 감독과 네 번째 하는 작품이라서 스태프들 역시 큰 변화가 없었고,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말 그대로 ‘조명발’ 제대로 받았단다.
“마지막 자살신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설명했죠. 그랬더니 조명기사 형이 ‘이렇게 가자’면서 조명으로 표현을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현장은 배우와 스태프와의 호흡이 중요해요.”
그는 자신이 현장에서 친절한 오빠이자 선배, 그리고 후배의 모습으로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된 사연도 털어놨다.
박기웅은 “중견배우부터 주연, 조연 어느 누구하나가 긴장하거나 떨거나, 구성원으로 좋은 연기를 하지 못하면 극 전체가 흔들린다고 생각한다”면서 “박용하 형님이 현장에서 보여줬던 주인공으로서의 ‘리더’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용하와 드라마 ‘남자이야기’에서 함께 연기를 했고, 절친해 그의 자살에 그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그렇게 스태프와의 ‘호흡’을 논하는 박기웅은 약 10년간 연기를 해오며 그간 다작을 했다. 최근에는 영화 ‘최종병기 활’과 드라마 ‘각시탈’을 비롯해 ‘더 뮤지컬’ 등에 출연했는데 그에게 물으니 한 30작품 정도 된다고 답을 한다.
“처음에는 조연기간 없이 광고하나 터져서 주인공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죠.(하하) 그런데 잘 안됐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흥행시키고 싶었고, 그게 다작의 시작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빠지고 연기자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초연해지고 자세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이걸로 부와 명예를 얻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먹고 사는 데는 지장없어요.”
뭔가 해탈한 듯 한 얘기를 하는 박기웅은 “연기자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걸어봤고, 주연과 조연을 오가면서 많이 느꼈다”면서 “초연하게 하라던 부모님의 말씀처럼 지금은 초연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시탈’은 제게 행복이고 복이었던 것 같아요. 신상한 코멘트지만 다같이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처럼 똑같이 ‘연기’를 할 거에요. 알파치노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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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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