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희가 들려준 '노숙자 이야기'와 광주의 겨울나기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11.26 07: 36

"선수들에게 노숙자 이야기를 해줬다".
대전전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최만희 감독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대전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노숙자 이야기를 해줬다는 것이다. 강등이라는 서슬 퍼런 칼날이 목 앞까지 다가와있는 상황에서 대뜸 꺼낸 노숙자 이야기,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
최 감독의 이야기는 이렇다. 추운 겨울을 맨 몸으로 버텨야하는 노숙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재산은 종이 박스다. 바로 그 종이 박스가 얇은가 두꺼운가에 따라 같은 노숙자라도 추위를 이겨내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추위를 이겨내는 유일한 재산, 종이 박스 하나. 바로 이것이 현재 강등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팀들의 모습이다.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두꺼운 박스를 가져야 강등이라는 혹독한 추위에 맞서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강등권에 처해있다는 가혹한 현실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두꺼운 박스를 손에 넣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어린 선수들이 많은 광주에 있어 지금 벌이는 강등 전쟁은 혹한의 추위 속에서 맨몸으로 버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 감독 본인은 한사코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시즌 내내 꾸준히 불거졌던 단장과 불협화음도 찬바람을 더하고 있다.
지금 광주는 두꺼운 종이 박스 하나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아직은 따뜻한 집을 바랄만한 형편도, 상황도 아니라는 것을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최 감독은 조금은 난해하지만 뼈에 사무치는 비유를 들어 선수들을 독려했던 것이다.
최 감독은 "이 고비만 넘기면 너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경기, 지난 성남전 같은 경기는 너희가 평생 가도 축구인생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칭찬과 응원을 동시에 보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은 결국 선수들이기에, 최 감독은 선수들 본인이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부담없이 어깨를 다독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최 감독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광주는 이날 경기서 후반 25분 대전에 먼저 선제골을 내주고 곧바로 동점골을 넣는 저력을 발휘하며 1-1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간절히 원하던 승점 3점은 아니었지만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의 불씨는 살릴 수 있었다. 어리고 경험없던 선수들이 조금씩 승부를 뒤집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 종이 박스는 분명,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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