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이형종, “야구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3.01.25 06: 24

이형종(24)이 2년 만에 유니폼을 입었다. 이형종은 지난해 11월 LG 2군에 합류, 구리에서 선수단과 함께 훈련에 임하는 중이다. 비록 아직 임의탈퇴 신분이고 공을 던지는 단계는 아니지만 잠실 마운드를 향해 한 걸음씩 움직이고 있다.
이형종은 2008년 신인 최다 계약금 4억3000만원을 받고 LG 유니폼을 입었다. 고교시절 150km를 상회하는 직구와 각도 큰 슬라이더로 일찍이 당해 최고 유망주로 꼽혔고 LG는 주저하지 않고 미래의 에이스로 이형종을 선택했다.
하지만 부상이 이형종의 발목을 잡았다.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수술과 재활이 반복됐고 프로 입단 후 3년 동안 1군에서 단 2경기만 나왔다. 큰 꿈을 안고 프로 무대를 밟았지만 이형종에게 다가온 것은 부상으로 인한 좌절감과 프로 부적응이었다. 이형종은 당시 자신이 밑바닥에 있다는 생각에 너무 조급했었다고 돌아봤다.

“사실 야구를 시작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힘든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선수로서 성공을 꿈꾸며 미래를 계획했다. 이승엽 선배님처럼 하나씩 단계별로 다 이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프로 입단 전까지는 놀랍게도 모든 목표를 다 이뤘다. 20살에 프로에 들어왔으니 신인왕을 받을 차례였다. 근데 팔이 너무 아프더라. 마운드에 오르기는커녕 수술하고 재활하면서 20살에 이루어야 할 일을 21살, 22살로 미루게 됐다. 나는 이렇게 밑바닥에 있는데 동기인 (정)찬헌이와 (이)범준이는 수많은 경기를 나갔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조급해졌다.”
조급함은 무리를 낳았다. 이형종은 프로 3년차였던 2010시즌 통증을 감수하고 1군 데뷔전을 치렀다. 5월 16일 잠실 롯데전에서 최고구속 152km를 찍으며 5이닝 2실점으로 데뷔전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현장에 있던 27000명의 관중들은 물론, LG 관계자들도 만족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다음 등판에서 이형종의 2010시즌은 끝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팔꿈치가 아팠고 4⅔이닝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된 후 그라운드를 떠나고 말았다.
“지금 돌아보면 2년차인 21살 때 두 번째 수술을 했어야했다. 그런데 1년 넘게 재활한 게 너무 아까워서 통증이 있었는데도 1군 경기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파도 어떻게든 1군에서 던지고 싶었다. 프로에 들어온 지 2년이나 지났는데 한 경기도 나가지 못했다. 일단 한두 경기만 나가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통증을 숨겼다. 막상 마운드를 밟으면 아프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했다. 하지만 1군 첫 등판부터 너무 아팠다. 일주일이나 쉬고 두 번째 등판에 임했는데 통증은 더 심해졌다. 나는 아픈데 다른 사람들은 아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냐고 의심했다. 거기서부터 마음이 더 안 좋아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 같다. 사실 3년차까지 1군 경기에 못나가는 선수들도 많다. 당시에는 이런 것도 모르고 그저 조급하기만 했었다.”
좌절은 방황으로 이어졌다.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간 이형종은 LG에서 임의탈퇴 됐다. 당시 LG는 이형종에게 구단 프로그램에 맞춰 재활을 소화하고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방안을 권유했으나, 이형종은 개인적인 일정을 통한 부상 치료와 재활이 더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실상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의지였다. 2010년 8월 팀을 떠난 이형종이 잡은 것은 골프채였다. 세미프로지도를 받으며 다음해 5월까지 골프에 매진했다. 단 한 타 차이로 세미프로 자격을 얻지 못한 다음에는 단순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이렇게 1년을 방황하고 가슴 속에 남은 것은 야구 밖에 없었다.
“팀을 떠나면서 어릴 적부터 함께 한 야구가 없어졌는데도 당시에는 허전함을 느끼지 못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야구가 없어서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야구가 없어지니 마치 내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사는 것 같았다. 방황했던 시간들이 내 자신에게 야구가 어떤 건지 돌아본 계기가 된 것 같다. 다시 야구공을 잡기 위해 9월 미국으로 건너가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복귀를 다짐하자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프로 입단 후 수술과 재활로 긴 시간을 함께한 김병곤 전 LG 트레이너가 이형종을 지원했다. 기약 없는 복귀였지만 이형종은 김병곤 트레이너와 함께 차분히 재활에 임했다.
“미국에서 수술은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그 때 김병곤 트레이너님께서 나를 도와주셨다. 2008년 신인 입단 때부터 나를 봐주신 분이다. ‘다시 야구를 하기 위해 수술했으니 어서 재활을 시작해라’고 하셨다. 트레이너님께서 2011년 연말에 트레이닝 센터를 오픈하셨는데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재활에 들어갔다. 작년 6월부터는 캐치볼까지 시작했다. 재활하면서도 언제 복귀할지 몰랐기 때문에 막막하고 힘들었는데 공을 던지기 시작하니 ‘그래 이게 내가 하던 거다’는 느낌이 들었다. 20대의 절반을 트레이너님과 함께 보냈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내게 더 엄격하신 분이다. 트레이너님이 없었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재활 상황도 꾸준히 LG 구단에 전달하시고 계셨다.”
재활에 박차를 가하니 복귀를 향한 문이 하나씩 열렸다. 작년 8월부터 LG와 연락이 닿았고 2012시즌이 끝난 후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아직 임의탈퇴 신분이 풀린 것은 아니다. LG 김기태 감독은 “신고선수와 같은 신분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고 이형종에게 냉정함을 보였다. 2군 노찬엽 감독 역시 “이형종은 지금 교육기간이다. 몸 상태도 프로야구를 하기엔 아직 이르다. 앞으로 모든 것은 이형종에게 달렸다”고 당장 이형종이 팀에 등록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이형종 역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충실하게 단계를 밟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예전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여기서 배운 걸 토대로 더 성숙해지고 싶다. 그리고 당장 무엇을 이루기보다는 내가 할 일에 충실해서 오랫동안 야구를 하고 싶다. 그라운드를 밟는 날이 6개월 후가 될지 1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도 선후배님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노력하겠다. 이제 통증은 없다. 팀에 합류할 때만해도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오니 마음이 편하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야구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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