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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김남길 '해적' 손예진, 대결 혹은 협업



[유진모의 테마토크] 치열한 연기대결일까, 아니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콜라보레이션일까? KBS2 월화드라마 '상어'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남길과 손예진이 이달말 혹은 내달초 크랭크인되는 한국판 '캐리비언의 해적'으로 불리는 제작비 100억원짜리 영화 '해적'에서도 공연한다.
'해적'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해양 어드벤처물로서 옥새를 삼킨 고래를 잡기 위해 나선 해적과 산적의 모험담이 기둥줄거리로 펼쳐진다. 김남길은 산적을, 손예진은 해적을 각각 맡는다.
배우들에게는 보통 작품 선정의 공식 혹은 터부가 있다. 차기작은 전작의 캐릭터나 직업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형태를 선정한다는 점과 더불어 한번 공연한 배우와 연달아 공연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기 마련.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재 '상어'에서 각각 남녀 주연을 맡은 김남길과 손예진이 또 다시 후속작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두 사람은 '상어'가 끝나자마자 짧은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해적'의 촬영에 돌입해야 한다. 블록버스터이니 만큼 촬영 기간이 짧지 않을 것이므로 이 작품의 개봉은 내년 이맘때쯤으로 보는 게 상식적으로 맞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해적'의 촬영을 끝마친 뒤 꽤 긴 휴식기간을 갖거나 한 편의 드라마에 더 출연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두 사람이 '해적' 개봉 전 각자 다른 드라마에 출연한다 하더라도 '상어'가 준 인상이 워낙 깊었고 '해적'의 사이즈로 볼 때 대대적인 홍보마케팅이 이뤄질 것이므로 두 사람이 연달아 한 작품에서 공연한다는 이미지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는 게 각자에게로 볼 때나 작품으로 볼 때나 이득일까, 손해일까?
연예인 특히 배우에게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다. 개그맨이 정극 배우로서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그들이 코믹 이미지로 굳어있기 때문이란 게 그 증거다. 그런 맥락에서 주연배우 두 사람이 작품 속에서 자주 만나는 것은 확실히 좋지만은 않다.
최불암 김혜자는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무려 22년간 부부로 호흡을 맞추는 바람에 부부로 오인받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두 사람의 호흡이 완벽했고 드라마의 인기가 높았다는 증거로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는 해프닝이긴 하지만 사실 별로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
황정민과 엄정화도 스크린에서 자주 만났다. '끝과 시작' '댄싱 퀸' '오감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에서 공연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댄싱 퀸'은 흥행성적이나 평단의 평가가 괜찮았지만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 내의 중편 '끝과 시작'을 장편으로 늘린 '끝과 시작'은 흥행과 완성도 모두 쓴맛을 봐야 했다.
감독이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중편 '끝과 시작'에 출연했던 황정민 엄정화 김효진을 그대로 장편에 옮기는 게 옳다고 판단했고 그 캐스팅이 완성도와 흥행을 보증한다는 믿음을 가졌을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되지만 자주 만나는 주연배우의 조합은 관객에게 식상함을 줄 뿐이었다.
'해적'의 김남길과 손예진 캐스팅은 감독이나 투자사와 제작사 입장에선 환상의 카드일 것이다. 현재 두 사람은 '상어'로 가장 핫한 배우 중의 선두에 있다. 비록 이 드라마는 한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전 중이지만 최대 경쟁작 '구가의 서'가 종영되고 드디어 조해우(손예진)가 김준(김남길)의 정체가 한이수 임을 알게 되면서 긴박감이 더해짐에 따라 시청률이 상승 중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구가의 서'만큼의 폭발적인 시청률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마니아 용 드라마'라는 호평을 들으며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충성도 만큼은 단연 절정을 자랑한다. 이 드라마에 몰두하는 시청자들은 왜 시청률이 안 오르는지 이상할 정도라며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이 드라마가 호평받는 배경은 단연 작가의 필력과 더불어 김남길 손예진 두 주연배우의 열연에 있다.
고교시절에 만난 한이수와 조해우는 신분차이를 극복한 첫사랑 커플이다. 하지만 조해우 집안에 의해 한이수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12년간 한이수는 일본에서 숨어지내며 복수의 칼날을 간 뒤 드디어 조해우 앞에 김준이라는 사업가가 돼 나타나 복수를 시작한다.
조해우는 고교 선배인 오준영(하석진)과 이제 막 결혼했지만 맡은 사건 때문에 무척 바쁜 탓에 신혼생활에서 그리 깨가 쏟아지지 않는데다가 한이수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그가 살아있으리란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는 가운데 그에 대한 연민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꽤 혼란스러운 상태.
김준 역시 첫사랑 조해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완전하게 지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 조해우 집안에 대한 복수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해우를 향한 아련한 감정 따위는 사치일 따름이다. 오준영이 김준에게 '사람을 못 믿으면 사람을 잃는다'고 말하자 그는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고 싸늘하게 답한다. 그런 그에게 사랑놀음은 감정의 과잉이고 복수가 목적인 그에게 감정의 출렁임 따위는 불필요한 쓰레기일 뿐이다.
이런 복잡한 감정의 선을 연기해내는 김남길과 손예진의 연기대결은 불꽃이 튄다는 표현이 적확할 만큼 치열하다. 시종일관 표정의 변화 없이 차가운 김준을 표현해야 하는 김남길의 무표정 속에는 감정의 해일과 이를 절제하는 엄청난 인내력이 묻어나온다. 확실히 군복무는 김남길의 연기력을 일취월장시켰다.
두 말이 필요 없는 손예진의 연기력은 타이틀롤 김남길을 강력하게 위협한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서 쉴 새 없이 헤엄을 쳐아하고 그래서 그 상어가 좋다는 한이수의 어린 시절 특이한 취향에서 나온 제목으로 상어는 한이수 자체고 그래서 '상어'의 주인공은 사실 김남길이다.
하지만 그 상어와 치열하게 맞서고 때로는 그 상어의 피끓는 복수심을 제어하고자 하는 손예진의 연기력은 고래다. 오준영에 대한 인간적인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다양한 표정의 변화부터 사건을 파헤쳐가는 검사로서의 냉철한 자기중심 잡기는 웬만한 젊은 배우가 동시에 표현해내기 쉽지 않은 다중성격이다. 더 나아가 한이수를 찾아 헤매는 순수함의 극치를 보였다가 김준이 한이수임을 알게 된 후 연민과 냉정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내면의 연기를 펼치는 표현력은 압권이다.
사실 현재까지 방영된 내용만으로 김준과 조해우가 합일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두 사람은 팽팽하게 서로를 곁눈질하며 양쪽 평행선을 함께 내달리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연기대결은 왠지 천편일률적인 멜로 라인에서 벗어나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처절한 비애를 풀풀 풍긴다.
현재까지 두 사람의 연기대결은 경쟁구도로 훌륭한 협업을 이뤄내 작품의 완성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해적' 제작진은 그걸 기대하고 두 사람의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캐리비안의 해적'은 단연코 조니 뎁이 타이틀롤이고 그가 제일 앞에 선 주인공이지만 초기 여자 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와 최근 여주인공 페넬로페 크루즈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들은 험한 해적들 틈바구니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거친 남자들만 등장하는 작품 속에서의 홍일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손예진은 더 나아가 '해적'의 타이틀롤이다. 김남길은 산적이고 손예진은 해적이다. '상어'가 김남길이라면 '해적'은 손예진이다. 게다가 배경도 거의 바다다.
지금까지 손예진은 청순가련형의 부드럽고 아름답고 연약한 이미지로서 정통멜로나 상큼한 깍쟁이같은 이미지의 인물로 로맨틱코미디 등 주로 두 가지 장르에서 빛을 발해왔다면 '해적'은 시대극이고 액션극이고 어드벤처 성향의 장르라 그녀로서는 처음 도전해보는 영역이다. 특히 지금까지 정적인 이미지였던 그녀가 해적 캐릭터를 맡아 얼마나 활발한 액션 연기를 소화해낼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결국 '해적'에서도 김남길과 손예진은 협업을 뿌리로 한 냉정한 연기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그 대결은 결국 협업으로 귀결되고 그 경쟁하는 화합이 작품의 완성도를 부추기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두 주연배우의 연속적인 만남은 우연의 일치이겠고 그것의 결과를 어떻게 꾸미는가는 결국 두 배우의 치열한 경쟁구도와 이를 재미로 승화시키는 기술에 달렸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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