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제국' 통속극 아닌 명품드라마였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7.15 21: 54

[유진모의 테마토크]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킬 만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장극이니 상황이 황당하니 욕을 해대지만 볼 사람들은 다 본다.
이에 비해 의외로 시청률이 잘 안 나오지만 구성이 탄탄하고 특유의 재미가 살아있는 드라마들이 있다. 지난 1일 시작된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이 그렇다. 이 드라마는 9%대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아직은 시청자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확실한 주제의식 그리고 기존 드라마의 통념을 뛰어넘는 신선한 시각으로 오랫만에 웰메이드 드라마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황금의 제국'인 성진그룹에서 패권을 쥐기 위한 인정사정 없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성진그룹 후계자들의 싸움과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주인공들이 큰 돈을 벌기 위해 싸우지만 결국 돈과 권력의 노예가 돼가는 과정을 살떨리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들은 저마다 자신의 복수와 돈에 대한 집착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부여하지만 결국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선한 사람은 없었고 그들 스스로가 가해자고 세속적인 자본주의의 노예임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장태주(고수)는 부산 출신의 부모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 중의 서민이다. 장태주의 아버지는 거리 행상 끝에 꿈에 그리던 밀면 집을 차리지만 그 건물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는 바람에 권리금도 못 건지고 보상금 없이 형편 없는 보증금만 받고 물러날 위기에 처한다. 이에 동병상련의 상인들과 점포를 사수하기 위해 농성을 벌이지만 재건축을 맡은 성진건설 최민재(손현주) 사장의 사주를 받은 용역깡패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사망한다.
성진그룹은 최동성(박근형) 회장이 자신의 동생 최동진(정한용) 등 가족들과 함께 일궈온 왕국이다. 하지만 최동진은 자신의 아들 최민재 최용재(김형규) 등과 함께 비리를 저지르며 이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은근히 움직여왔다. 이에 최동성은 최동진과 최민재를 밀어내기 위한 전초전으로 최용재를 주가조작 등의 비리로 고발해 구속수감시킨다.
이때부터 최동진 최민재 부자의 최동성 측을 향한 복수와 대결 구도는 본격화된다.
최동성의 슬하에는 최원재(엄효섭) 최정윤(신동미) 최서윤(이요원) 최성재(이현진) 등 2남 2녀가 있다. 이들 중 최정윤만 그룹의 후계자 자리에 관심이 없을 뿐 세 사람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후계 다툼에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장남 최원재는 타고난 바람기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에 일찌기 최동성의 눈 밖에 난 존재. 그래서 최원재는 후계 다툼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최민재를 돕는 어이 없는 자충수를 두는 가운데 최서윤에게 외면당한다.
최서윤은 최동성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여식이다. 자신은 문학 공부에 더 전념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그룹 경영에 뛰어들어 실질적인 후계자 수업을 쌓게 된다.
막내 최성재는 스스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라고 한다. 즉 그의 어머니 한정희(김미숙)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수면 아래에서 어머니의 잠행으로 후계 자리를 노리고 있다.
현재로선 최서윤과 최민재가 후계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구조고 그 외곽에 장태주가 있다. 그룹 경영에서 밀려난 최민재는 어떻게든 기사회생하기 위해 쇼핑몰 사업을 꾸미고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최서윤과 팽팽한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최서윤과 손을 잡은 장태주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작품내용을 암시하듯 살짝 조선왕조실록을 비췄듯이 이 드라마는 마치 조선 왕조의 패권다툼을 현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여기에 천민 출신의 장태주가 신분을 뛰어넘어 새로운 황금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야인으로 그려진다.
이 드라마는 외형상으로는 1990년부터 2010년까지 격동의 20년을 배경으로 한국의 경제사를 반영한 한 재벌그룹의 후계다툼과 여기에 끼어든 한 젊은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씨줄과 날줄로 엮었다. 마치 역사 속의 왕위쟁탈전을 현대로 옮겨놓은 듯한 형제간의 음모와 배신과 이합집산, 그리고 부부간의 애증 등을 뒤섞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제국의 대서사시를 그려낸다.
여기까지는 이 드라마가 그렇고 그런 돈에 대한 욕망과 재벌의 탐욕에 의해 스스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권선징악의 천편일률적인 구도 속에서 천민으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통쾌하게 마무리하고 잘 먹고 잘 살았더라 하는 식으로 통속적으로 이줘질 것처럼 보였지만 4회 방송 만에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벌써부터 쫄깃하게 시청자의 심장을 수축시키고 있다.
제국의 왕이었던 최동성은 한번의 대수술이라는 위기를 잘 넘겼지만 다시 그 후유증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초기에는 그냥 아주 평범한 재벌가의 현모양처로 그려졌던 한정희는 정작 가슴 속에 비수를 숨긴 채 자신의 아들 성재의 왕위 계승을 위해 잠행하고 있다는 복선이 드러났고 마냥 악인으로만 여겨졌던 최민재는 정작 로맨티스트고 휴머니스트였지만 후계 계승의 암투가 난무하는 이 복마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 최동진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권력에 집착해야만 했던 안쓰러운 인물임이 드러났다.
그에게는 자신이 10년간 병간호를 해온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짝사랑해온 여인도 있었다. 그 여자는 은행장의 딸로서 쓰러져가는 최민재의 성진건설을 살려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녀가 대출을 미끼로 결혼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했던 최민재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아니 아버지를 살리고 자신의 기업가로서의 생명력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성진그룹을 차지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별을 고하고 재혼을 선택한다.
압권은 최민재와 장태주의 '미사일 버튼 신드롬' 대화였다. 벼랑 끝에 내몰린 최민재는 장태주를 찾아왔는데 여기서 장태주는 최민재에게 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군인에게는 사람을 죽인다는 의식이 없다는 설명을 한다. 직접 총칼을 휘두른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미사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정작 본인은 가볍게 단추 하나만 눌렀을 뿐이라고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민재가 깡패들에게 상가를 철거하라는 명령 전화만 했을 뿐이지만 결국은 그 전화 한 통으로 자신의 아버지 등 철거민이 죽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
하지만 결국 장태주가 누른 버튼도 최민재와 똑같았다. 그가 최민재를 구석으로 몰아감으로써 그의 아내가 죽었다.
더 나아가 장태주는 돈의 노예가 돼가고 있었다. 그의 부동산 회사 파트너 윤설희(장신영)는 '태주야, 여기까지 하고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제어하고 있지만 한번 시동이 걸린 장태주의 질풍노도와 같은 질주는 도대체 쉬어갈 줄을 모르고 더 큰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밀면집 하나 차리면 되겠다던 소박한 장태주는 황금의 제국에 한 다리를 걸침으로써 그 역시 세속적인 욕망에 미쳐가며 탐욕의 괴물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최서윤도 결국은 권력욕에 눈 먼 공주일 뿐이다. 그녀는 사촌오빠인 최민재의 양 날개를 무참하게 꺾어버리고 아무리 깜냥이 모자란 함량미달의 왕위 계승 1순위자라고 하지만 오빠 최원재마저도 과감하게 내친다.
결국 이 드라마 속에는 단독 주인공도 그 어떤 선한 캐릭터도 없다. 그래서 그저 그렇고 그런 통속극과 궤를 달리 하는 명품드라마를 지향한다. 왜냐면 돈 앞에서는 공자도 맹자도 없이 모두 눈먼 늑대가 돼 미친 탐욕의 더러운 침을 흘린다는 살벌하지만 사실적인 진리를 웅변하기 때문이다. 돈은 더럽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세균의 온상이 되는 게 돈이지만 사람들은 그 돈을 차지하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결국 이 더러운 자본주의의 불편한 구조를 냉정하게 꼬집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돋보인다.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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