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제작소] SM의 남다른 '때깔' 만드는 그녀..'민희진 실장'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3.09.10 09: 52

"콘셉트가 뭐예요?"
새 음반이 나올 때마다, 기자들이 기획사에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이다. 답변은 몇가지 중에 하나다. 섹시, 큐티, 똘끼, 카리스마, 러블리. 그런데 유독 이 답변을 어려워하는 기획사가 있다. 바로 아이돌의 명가 SM엔터테인먼트다.
SM은 신곡이 나오기 전 멤버별 티저 사진에 영상, 아트필름까지 다양한 ‘떡밥’들을 던지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데, 이들 콘셉트를 한마디로 쉽게 정의내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컬러풀한 옷을 입고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샤이니나, 웬 보자기를 얼굴에 뒤집어쓴 에프엑스를 대체 어떻게 표현하겠나. 어휘력이 보통 사람 수준인 기자는 그래서 SM 관련 기사에 ‘특이하다’라는 단어만 얼마나 남발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 희한한 ‘때깔’을 내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또한 ‘특이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업계 1위를 자랑하는 대형기획사에서 ‘도전’을 즐기고 있는 사람. 연예기획사 중 가장 시스템이 발달한 곳에서 가장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람. 바로 비주얼&아트실의 민희진 실장이다.
그의 작업은 ‘잘 빠진’ SM의 작품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엑소에게 교복을 입히고, 에프엑스의 첫사랑에 핑크색을 부여한다. 서울 청담동, 마치 미래공간처럼 온통 하얗게 빛나는 SM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가 끝나고 ‘너무 워커홀릭 같지 않았냐’고 걱정한 그와의 ‘수다’를 가감없이 공개한다.
OSEN(이하 O) - 입사는 언제 하신건가요.
민희진(이하 M) - 2002년 공채로 입사했어요.
O - 혹시 SM 음악의 팬이셨나요.
M - 제 취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죠. 유행가에 관심이 없었어서 잘 모르기도 했고요. 어려서부터 제가 듣고 싶은 음악만 듣고 지냈어요. 7-8살 쯤, 아빠가 듣던 다국적의 LP를 비롯해 당시 유선 방송을 통해 접했던 각종 영화 OST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재즈를 기반으로 유럽을 비롯한 제 3세계 음악에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SM 입사가 오히려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O - 이상한 선택인데요.(웃음)
M - 저와는 멀어도 세상과는 훨씬 가까운 곳이었죠. 대중 미술을 전공한 만큼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어요. 소모적이기 보다 영감을 주는 그래픽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70년대 영국의 디자인그룹 힙그노시스(Hipgnosis)를 통해 감동 받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죠. 의미있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특히나 한국의 '아이돌'이라는 변형, 특화된 장르를 통해 제가 의도한 작업들을 선보인다면 아이러니하면서도 짜릿한 일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O - 그때에도 SM은 대형기획사였어요. 유연하지만은 않은 조직이었을텐데요. 
M - 당시엔 엔터 업계 현황 등 모든 것들이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처음에는 물론 하달받는 미션부터 잘 해내는 것이 과제였죠. 음반 작업에 있어 콘셉트와 그래픽의 연계, 그 파생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았어요. 앨범 재킷 촬영, 디자인, 스타일리스트 등 담당 매니저들이 제각각 외주를 구해오던 시절이었죠. 그런 상황이 처음엔 너무 놀라웠어요. 그렇다 보니 초반엔 일 자체 보다 외적인 문제, 조직을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뚝딱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조심스러웠고 선한 지략이 필요했죠. 신입사원이 큰소리 내는데 당연히 한계가 있었고요.(웃음) 제가 좀 급한 성격인데 그래도 일을 통해 기다리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어디든 규모가 큰 조직은 마치 살아 숨쉬는 거대한 바위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명은 있지만 움직임이 둔하죠. 큰 조직을 유연하게 움직이려면 끈기가 절실해요. 인내와 열정,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결국 '거사'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진행형이죠.  
O - 그렇다면 처음 뜻을 펼친 작업은 뭐였어요?
M - 거창하게 뜻을 펼쳤다기 보다는, 처음으로 시스테믹하게 일했던 작업은 동방신기의 크리스마스 앨범이었던 것 같네요. 콘셉트, 촬영, 세트, 디자인에 있어 나름의 로직을 만들어 작업했죠. '선물'이라는 콘셉트로, 5명의 멤버들이 마니또를 하듯, 다른 멤버에게 주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설정을 만들고 앨범 자체를 팬들에게 주는 선물로 규정해 작업했어요. 앨범을 구입한 팬들도 다른 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콘셉트로.
사실 무엇보다 일관되고 명확한 비주얼라이즈를 위해선 데뷔 시점 부터가 중요하죠. 소녀시대 런칭 당시 소녀시대라는 그룹명을 듣고 이수만 프로듀서께 이미지 맵을 만들어 앨범 재킷의 비주얼 콘셉트와 제가 그리는 소녀시대의 전체적인 비주얼 방향성에 대해 브리핑 했었어요. 소녀가 '어떤' 소녀여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O - 어필은 성공적이었나요?
M - 소녀를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관건이었죠. 앨범 콘셉트와 앨범 재킷의 의상, 디자인 등 앨범 전반의 비주얼을 비롯한 전체적인 정체성과 방향성까지 의견을 드렸어요. 들으시고 모든 팀장들에게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그 당시엔 무대의상에 대한 권한이 없었는데, 그 이후로 서서히 좀 더 많은 영역에 관여하게 됐죠.
O - 이렇게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아직도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M - 한 가지 일을 하는 게 아니면 다들 의아해하는 것 같긴 해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하는 거냐고.(웃음) 어쩌면, 제 일 자체가 기존에 있던 일이 아니라 이해 못하시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해요. 기획자이자, 비주얼 작업자, 때로는 마케터로 일하죠. 꼭 필요한 일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O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M - 아침에 눈 뜨자마자 메일, 스케줄 확인. 주로 낮에는 여러 회의와 미팅이 많고, 오후부터 밤까지 거의 그래픽 작업을 해요. 작업이 바쁠 땐 하루종일 작업하기도 하고요.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일벌레 같으니까.(웃음) 짬 날때마다 당연히 여가를 즐기죠. 일과 생활을 분리한다기 보다 일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요. 사실 생활이 즐겁지 않으면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아요.
O - 유독 기억에 남는 앨범도 있을 것 같아요.
M - 아무래도 샤이니의 ‘로미오’ 앨범이 가장 기억에 남죠. 제가 의도한 바를 온전히 실현한 앨범이에요. 샤이니를 통해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던 어떤 명확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로미오'라는 앨범명도 제안했고, 의도했던 이미지 구현을 위해 포토그래퍼 섭외에 예민했어요. 처음엔 제가 직접 찍을까 고민했을 정도였죠. 제 의도는 제가 제일 잘 아니까.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힘든 미묘함을 포착하는게 관건이었거든요.
일부러 메이저 씬의 포토그래퍼 보다는 좀 더 생경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찾았어요.
O - SM이 메이저 일을 안한 스태프를 찾는다니, 잘 안어울려요.(웃음)
M - 그래서 더 재미있잖아요. 안어울리는 합이 원래 더 재미있는 법이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두가 고대했던 합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날 때부터 메이저, 언더가 있나요. 일에 있어 목적과 결과만 충족되면 됐지, 그런 무의미한 경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첫 미팅 날 심지어 포토그래퍼도 의아해 하더라고요. 왜 본인들을 섭외했냐고.(웃음) 전 의도와 목적을 열심히 설명했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제안했죠. 언제든 의외의 것, 의외의 만남이 세상을 재미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O - 이제 실장님의 업무가 좀 보이기 시작합니다.(웃음)
M - 구심점 없는 중구난방 식의 작업을 좋아하지 않아요. 일종의 '스토리텔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몇 년전, 한참 고단할 무렵이었는데 우연히 로베르 델피르(Robert Delpire)의 전시를 보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어요. 전시장에서 많이 울었죠. 당시 일에 대한 남 모를 외로움이 컸는데, 델피르의 작업과 일생을 통해 큰 위안과 알수없는 안도감을 느꼈어요. 다시금 힘을 낼 수 있게 된 계기가 됐죠.
O - 샤이니와 에프엑스는 정말 특이해요.
M - '특이하다'는 칭찬으로 들리네요. 감사합니다.(웃음) 샤이니와 에프엑스는 제가 예전부터 그려 온, '어떤' 이미지를 투영한 그룹이에요. '이런 이미지의 그룹이 나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있었죠. 생각이 멤버들의 개성과 만나 새로운 시너지를 일으킬 때 기분 좋아요.  
O - 그런데 그 두 그룹은 콘셉트가 난해하다는 평도 있어요. 
M - 늘 목표는 하나에요. 의도하고 목적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했는가. 목적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대중과 소통하려 해요. 어차피 모든 사람을 다 이해시킬 순 없어요. 서로간에 친절함의 정도가 다른 법이죠.
그렇다고 그런 점들을 무시하고 있지만도 않아요. 꼭 지켜야 하는 중심과의 간극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겠죠.
O - 엑소 얘기를 안할 수가 없어요. 30대인 저도 ‘으르렁’은 한참 들었거든요.(웃음)
M - 엑소 멤버들은 섹시함과 풋풋함이 공존한 캐릭터를 갖고 있어요. 데뷔 때부터 이러한 그들 본연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싶었어요. '으르렁'이라는 곡을 처음 듣고, 교복이 떠올랐던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 였죠.
첫 번째 타이틀곡의 '늑대'라는 캐릭터도 직접적으로 풀기보다 '늑대=남성성=소년의 열정'으로 치환해 생각했어요. 치기 어린 열정 가득한 소년의 감성이 '늑대'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두 번째 타이틀곡인 '으르렁'과도 자연스럽게 이어, 사랑에 빠진 열정소년의 스토리를 '학교'라는 콘셉트 안에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내고 싶었어요.
O -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실장님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죠?
M - 겉보기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멋있고 재미있는 일 만은 아니에요. 물론 제겐 재미있는 일이지만.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다는 말 있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결과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추세라,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네요.
전 매 작업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촬영하듯 임했던 것 같아요.(웃음) 지난 몇 년 간, 많은 날을 후드를 뒤집어 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출근했어요. 회사에서 자주 잤으니까요.(웃음)
O - 아, 그런 말 나오면 팀원들이 싫어할텐데요.(웃음)
M - 저희 팀원들은 저를 잘 알죠. (웃음) 아무도 제게 야근 시키지 않았듯이,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야근 시키지 않아요. 다만 각자 주어진 시간 내 베스트를 내길 바랄 뿐이죠.
O - 베스트를 내려면 칼퇴근 못하겠죠?(웃음)
M - 일을 꼭 회사에서 할 필요도 없어요. 원하면 집에 가서 하자고 해요. 자기 스케줄을 운용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지연출근 이라는 제도도 있고, 부득이하게 늦어질 땐 부담없이 문자보내라고도 해요. 워낙 야근이 잦은 터라 깐깐히 재고 싶지 않아요. 즐거운 게 중요해요. 밤에 꼭 잠을 자야 하는 사람에게 야근을 고집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에요. 자기 스케줄을 잘 운용해 저녁이 아닌 이른 오전시간에 출근하고 일찍 퇴근할 수 도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놀이터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유연한 방식에 적응 못하고 눈치보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주입식 교육의 폐혜라고 생각합니다만. (웃음) 이 일을 너무 하고 싶다며 힘들게 들어와 금세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정말 원하는 게 있으면 남들보다 기꺼이, 즐겁게 자기 시간을 할애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언제,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상응하는 열매를 얻을 수 있어요.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죠.
O - SM이라고 하면, 보통 거대기획사, 음악 공장과 같은 어마어마한 시스템이 먼저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SM과 상상력, SM과 고정관념 깨기, SM과 민실장님의 캐릭터는 바로 연결되진 않거든요.  
M - 어마어마하고 무서운 조직이라기 보다 순수하고 열심인 조직이죠. 여느 이익 집단 보다 인간적이고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밖에서 묘사하는 SM의 모습에 가끔 어리둥절 할 때가 있어요.(웃음)
O - 엔터 업계 종사자로서, 실장님이 가장 중시하는 건 뭘까요.
M - 저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으려 노력해요. 언제나 유연한 사고를 지향하죠. 안주하는 순간, 재미 없잖아요.(웃음) 
rinny@osen.co.kr  
SM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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