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9위' 한화, '8888577' 롯데 버금가는 암흑기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3.09.23 06: 58

암흑기의 절정이다. 
한화가 2년 연속 최하위가 확정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8위 아니라 9위다. 9개 구단 체제 첫 해부터 신생팀 NC에 10경기 뒤지며 최하위 자리를 면치 못한 한화는 프로야구 사상 첫 9위의 불명예를 썼다. 지난 2009·2010·2012년에 이어 최근 5년 사이 벌써 4번째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른바 암흑기가 절정에 달한 시점이다. 한화는 지난 2007년 페넌트레이스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뒤 2008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포스트시즌이 좌절됐다. 이는 LG(2003~2012)의 10년, 삼미-청보-태평양(1982~1988)과 롯데(2001~2007)의 7년에 이어 역대 4번째 최장기간 가을야구 탈락 기록이다. 

프로야구 초창기 대표적인 최하위팀은 삼미-청보-태평양으로 구단이 계속 바뀐 인천야구 팀이었다. 삼미는 1982년 프로 원년 첫 해 역대 최저 승률(.188)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1984·1985·1987년에도 최하위에 그쳤다. 프로 출범 첫 6년간 4번 최하위를 독차지하다시피했다. 1989년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 첫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1990년대에는 쌍방울이 최하위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1991년 첫 해 공동 6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쌍방울은 그러나 1992년에 이어 1994~1995년 3차례 최하위로 처졌다. 창단 후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쌍방울이었지만, 태평양처럼 1996년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을 끝으로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2000년대에는 롯데가 있었다. 롯데는 2001~2004년 프로야구 최초로 4년 연속 최하위의 굴욕을 당했다. 2005~2007년 역시 최하위는 면했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 기간 동안 롯데의 순위 '8888577'은 암흑기를 상징하는 굴욕의 번호였다. 감독대행 포함 김명성·우용득·백인천·김용철·양상문·강병철 6명의 감독이 팀을 이끌었으나 암흑기를 깨지 못했다. 
삼미-쌍방울-롯데에 이어 2010년대에는 한화가 최하위팀 암흑기를 잇고 있다. 2009년 첫 8위를 시작으로 2010년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문 한화는 2011년 공동 6위로 잠깐 반등했을 뿐 2012~2013년 2년 연속 또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대교체 실패와 인프라 및 인적 투자 미비로 초래한 면이 크다.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낸 롯데에 버금가는 위기에 봉착했다. 
롯데는 2000년대 초반 소극적인 투자와 세대교체 실패로 암흑기를 맞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FA 영입, 상동 전용훈련장 건립, 최초의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 선임 등 탈꼴찌를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쳤다. 이 같은 노력은 2008~2012년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로 이어졌고, 오랜 암흑기 끝에 전성시대를 열 수 있었다. 
한화의 암흑기는 자칫 롯데 이상으로 오래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한화가 침체한 시기 프로야구는 9~10구단으로 확장됐다. NC에 이어 KT까지 최고 유망주들을 우선적으로 데려가 한화의 리빌딩이 더욱 늦어지는 면이 없지 않다. 당장 NC에도 밀린 만큼 2년 후 1군 무대에 올 KT에도 우위를 점한다고 안심할 수 없다. 
하지만 한화는 암흑기가 시작된 후 늦었지만 서산에 전용훈련장을 건립하며 유망주 육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권을 모두 쓰는 건 물론 신고선수 영입도 어느 팀보다 적극적이다. 올 시즌을 마친 뒤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으로 새판짜기에 나선다. 구단에서도 FA 영입 등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5년간 4번의 최하위, 강한 충격의 반작용을 일으킬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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