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49) 주심을 골탕 먹인 이만수와 정재호 포수, ‘왜 그랬을까’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04.01 12: 21

포수가 심판(주심)을 골탕 먹이기 가장 좋은 방법은, 불온하게도 투수의 공을 슬쩍 피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심은 그 공을 가슴팍이나 어깨 부위, 혹은 마스크에 직통으로 얻어맞게 마련이다. 예기치 못한 일이어서 주심도 미처 피할 도리가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행위는 심판에 대해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모름지기 삼가해야 마땅한 노릇일터. 판정 불만에 대한 보복 수단치고는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런 사건이 실제로 한국 프로야구 판에서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그런 ‘괘씸한(심판의 처지에서 볼 때)’ 사건이 두 차례 일어났다. 한 사건은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들의 공분(公憤)을 사 엄청난 후폭풍이 일었지만 야사(野史)로만 남아 있고, 다른 한 사건은 그 선수가 퇴장을 선언 당해 공식 기록으로도 남아 정사(正史)로 편입됐다. 이만수의 행위는 특히 심판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식돼 들끓었던 심판들이 공공연하게 응징에 나섰던 일이기도 하다. 
앞의 경우 SK 와이번스 감독인 이만수가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0년대 초반 삼성 포수 시절에 저지른 것이고, 뒤의 사례는 1990년 8월 25일 OB 신인 포수 정재호(당시 23살)가 감행했던 사건이다. 정재호의 경우 KBO 상벌일지에도 기록이 남아 있어 쉽게 확인이 됐지만, 이만수의 경우 이미 30년이나 지난 일이어서 직접 피해 당사자인 최화용 주심과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이 불명확해 당시 상황의 완전한 복원이 어려웠다.(※만약 1983~1985년 사이에 대구구장에서 일어난 일로 추정되는 그 사건을 목격하신 야구팬이 있으시다면 제보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만수와 정재호가 그 같은 불순한 일을 행한 것은 물론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단순히 선수의 피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고, 실제 불리한 편파 판정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만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래 내용은 한계가 있지만, 관계자들의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부정확하나마 사건을 재구성, 정리한 것이다. 
이만수, “나이스 볼”을 외친 뒤 슬쩍 미트를 빼다
1984년(?) 어느 날, 대구구장이다. 투수는 삼성 라이온즈 에이스 김시진이었고, 포수 마스크는 이만수가 쓰고 있었다. 경기는 어느덧 8회 초로 접어들었다. 김시진이 던진 빠른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쐐액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입담이 세기로도 유명했던 이만수가 미트를 위로 들고 “나이스 볼”을 외치며 볼을 잡는 척하다가 느닷없이 미트를 슬쩍 내렸다. 공은 그대로 최화용 주심의 가슴께에 꽂혔다. 비록 보호대를 차고 있었지만 워낙 정통으로 얻어맞은 최화용 심판이 “아이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가슴을 감싸 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결국 통증을 이기지 못해 경기를 마무리 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당연히 이만수는 퇴장감이었지만, 최화용 주심은 “퇴장”을 선언하지 못하고 엉겁결에 그냥 넘기고 말았다. 그의 자리는 대기 심판으로 메웠다.
그날 밤,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를 마치고 구장 앞 단골 술집 수궁에서 목을 축이고 있던 김광철 심판(KBO 심판위원장 역임. 현 한국야구심판학교장) 일행 앞에 선배인 최화용 심판이 울상을 지으며 나타나 하소연을 했다.
“광철아, 심판 못해 먹겠다. 어찌 이럴 수가 있나.” 그의 설명인즉, 8회 경기 도중 정동진 삼성 수석코치(당시 감독은 김영덕)가 나와 이만수에게 무언가 얘기를 하고 덕 아웃으로 들어간 뒤 이만수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다. 의협심이 남달랐던 김광철 심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확인해보니 최화용 심판의 가슴 부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심한 타박상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직접 눈으로 부상 부위를 확인하는 순간, 이건 ‘살인미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수는 ‘사인이 안 맞았다고’ 했다지만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심판들에게 연락했고, 이틀 뒤 대구 경기에 내가 주심으로 나섰다. 스트라이크, 볼 불만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정동진 수석코치는 아니라고 부인 했지만 뭐라고 숙덕거린 다음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내가 볼 때는 충분히 냄새가 풀풀 났다. 이만수하고 가끔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한다. 정재호 사건보다 내부적으로는 그 게 더 큰 사건이었다.” (김광철의 증언)
 
심판들은 삼성 경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이를테면 보복 판정에 나섰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심판들이 삼성 구단을 ‘무림의 공적’으로 삼고 총궐기한 것이다. 뜻밖의 전개에 당황한 삼성 구단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혼이 난 이만수는 심판진의 숙소를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당시 김광철 심판은 이만수가 독단으로 저지른 행위가 아닌,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단정했다. 정동진 수석코치를 염두에 둔 것이다. 명포수 출신인 정동진 코치(뒤에 삼성 감독)는 대구상고 감독 시절 이만수의 스승이었고, 삼성 구단의 요청을 받고 이만수를 가르치기 위해 프로로 왔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더욱이 그가 이만수에게 무언가 얘기를 하고 난 뒤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혐의’는 짙었다.
정동진 씨는 그런 사실 자체를 극구 부인했다.   
“몇 년 도인지, 언제 경기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1984년 전반기 같기도 하고. 상대 팀도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왜 그런 것을 지시하겠는가. 이만수한테 물어보니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 김광철 심판은 내가 지시를 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다만 당시 최화용 주심의 판정(스트라이크, 볼)이 상대 팀도 난리를 칠정도로 왔다 갔다 했다. 양 팀 모두 불만스럽게 본 것은 사실이다. 그날 경기에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막 흔들렸다. 김광철은 내가 그랬다고 찍어 내리는데, 그런 것 아니다. 그 뒤에 김광철 심판이 내려와 주심을 보면서 패악을 죽였다. 아마 박현식 감독이 심판위원장을 할 때였을 텐데, 그 뒤 구단이 사과를 하고, 심판진이 사과를 받아주어 지나갔다. 사건화는 안 됐고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주심이) 바로 병원에 간걸로 알고 있다. 만수가 ‘나이스 볼’ 하면서 살짝 피했다. 내 기억으로는 나가지 않았고, (김광철 심판은)술만 먹으면 형이 그랬잖아 하는데, 아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런 식으로 유추하면 안 된다.”(정동진의 증언)
그 사건의 피해자로 2년 전 간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인 최화용(73) 씨는 “글쎄, 그 게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다. 대구구장인데, 이만수가 고의적으로 피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퇴장을 안 시켰던 것은 만수가 바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 내가 참았기 때문이다. 공을 가슴에 맞았는데 그 때 당시에 심적으로 많이 괴로웠다. 새카만 후배한테 이런 꼴 당해야하나, 하는. 고의적으로 그랬으니까 수치감을 많이 느꼈다. 직구, 빠른 공인데 인코너로 들어오는 걸 바로 캐처가 우측으로 피했다. 만수가 후회하는 기색을 보여 참았다.”고 가물가물해진 옛 기억을 되살렸다.  
최화용 씨는 “심근경색으로 입원했다가 간암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고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엊그제 병원에 갔더니 수치가 많이 낮아져 의사 선생님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그러더라”며 근황을 전했다. 
삼진 불만, 정재호의 반란, 그리고 큰 대가 치러
 
1990년 8월 25일, OB 베어스와 빙그레 이글스의 경기가 저녁 6시 30분부터 대전구장에서 열렸다. 삼복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 섭씨 30도가 넘는 열기로 그라운드는 달아올라 있었다.
빙그레는 OB 선발 박철순을 몰아쳐 장종훈의 2점 홈런을 포함, 4회까지 10-5로 앞섰다.  , 초장에 무너진 박철순은 2⅔이닝 동안 8자책점을 기록하고 물러났다.
마침내 8회 말. 빙그레 3번 타자 대타 진상봉이 타석에 들어섰다. OB 투수 김진규가 던진 초구 가운데 높은 공이 OB 포수 정재호가 잡지 않고 몸을 피하는 바람에 박찬황 주심 마스크에 정통으로 날아들었다.
박찬황 주심은 즉각 정재호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밤 9시 11분께였고, 그 소동으로 경기가 4분간 중단됐다. 
8월 28일, KBO는 상벌위원회를 열고, ‘비신사적인 행위’를 한 정재호에게 10게임 출장정지, 벌금 20만 원을 매겼다. KBO 징계일지에 ‘(정재호가) 고의로 투구를 포구하지 않고 주심에게 볼을 맞추는 악질적인 행위’를 징계 사유로 적바림 해놓았다. 
 
김학효 기록원은 그 경기의 공식 기록지에 ‘8회 초 투수 송진우 삼진 3구 삼진 불만, 투수가 던진 공 일부러 받지 않고, 통과시켜 박찬황 주심 마스크에 맞도록’이라고 적어 놓았다.  
OB 구단은 그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정재호에게 자체 중징계를 내렸다. ‘무기한 출장정지와 정지 기간 중 연봉지급 정지’라는. 
정재호는 미국 노스드리지대 출신으로 1990년 한 해에 주전이 아닌 보조포수로 29게임에만 출장한 뒤 그만뒀다. 김광철 심판학교장은 정재호에 대해 “불평불만이 많았고, 대놓고 표현하는 포수였다. 공을 받은 뒤 볼 판정을 내리면 뒤로 돌아 심판을 힐끗 째려보거나 공을 한참 쥐고 있었던 선수”로 기억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이만수의 현역 시절 수비와 타격 모습(제공=일간스포츠)
KBO 징계일지에 적혀 있는 정재호의 징계내용.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