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51)‘관중 쇼크사’ 해태-롯데전, ‘망국 스포츠’ 개탄…무관중 경기론도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04.15 07: 20

한국 프로야구 창단 구단인 해태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는 초창기부터 제과업계의 라이벌로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응원 관중들도 두 팀 간의 대결에선 경기 흐름과 진행 상황, 그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1988년 5월 3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던 해태와 롯데의 야간경기. 2만 7000명의 많은 관중이 들어찬 그 경기에서 롯데는 8회 말에 대거 7득점, 8-4로 승리를 눈앞에 두었으나 9회 초에 한꺼번에 5점을 잃어 8-9로 대역전패했다.
노상수를 선발로 내세운 롯데는 2회에 박영태의 적시타로 1-0으로 앞서 나갔고 3회까지 안타 수 6-1로 경기흐름을 주도했다. 그러나 4회에 해태가 김성한의 2루타와 김준환의 2점 홈런으로 노상수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렸고, 이어 나온 김응국이 김종모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아 1-4로 전세가 뒤집히자 관중석이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해태는 선발 신동수를 일찌감치 교체하고 2회 1사 후부터 문희수를 투입했다. 롯데가 5회 말 공격에서 무기력하게 3타자가 범타로 물러나자 관중석에서 빈병이나 깡통이 그라운드로 날아들어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급기야 6회 말에는 롯데 김민호가 친 타구를 해태 중견수 이순철이 담장 바로 앞에서 잡아내자 그의 주변에 빈병과 깡통이 우수수 쏟아져 경기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해태
김응룡 감독은 그 장면에서 “선수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다”고 선수들을 덕 아웃으로 불러들였다. 관중석에서는 우박처럼 빈병과 깡통이 난무했다.
장내방송을 통해 자제를 호소하는 등 소동을 수습하고 경기 중단 9분 만에 가까스로 경기는 속행됐으나 해태가 득점 기회를 잡을 때마다 빈병 투척 등 소동은 계속됐다.
관중 소동은 롯데 7회 말 공격 때 다시 심해져 5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보다 못해 남창희 주심이 마이크를 들고 나서 “이런 상황에선 경기를 도저히 진행할 수 없다”면서 관중들의 자제를 재차 호소했다.
 
롯데가 8회에 해태의 문희수, 차동철 두 투수를 집중 공략, 7점을 뽑아내 전세를 뒤집자 잠시 가라않는 듯했던 소동은 이윽고 해태가 9회 초에 5점을 뽑아 재역전하자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9회 말에 해태 선동렬이 마운드에 올라 2번 한영준을 삼진, 3번 김용철을 투수 땅볼, 4번 김민호를 삼진으로 처리, 경기를 마감하는 과정에서도 경기가 2분간 중단됐다.
결국 해태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관중들의 흥분은 극도에 달했고, 그라운드는 온통 빈병과 깡통, 오물 등으로 뒤범벅이 됐다. 양 팀 선수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피신했다. 그 와중에 롯데의 역전패에 충격을 받은 이 아무개 씨가 쇼크로 사망(급성신부전증) 하고 관중들이 마구 던진 빈병에 12명이 다치는 큰 불상사가 일어났다.
6월 8일치 방담기사는, ‘승부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집단광기와도 비슷한 과열현상은 우려할만한 사태이다. 프로야구가 지역연고제에 기초를 두고 있어 연고팀에 애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프로야구 출범 자체가 5공화국의 정권 유지를 위한 방편 때문에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어 관중들의 위험수위를 넘어선 난동사태로 인해 망국 스포츠라는 지탄도 나올 만하다.’고 개탄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프로야구 관중 소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수수방관해오던 KBO는 관중 사망 사고까지 빚어지자 6월 1일 이웅희 KBO 총재가 ‘관중난동 방지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담화문에는 “최근 빈발하고 있는 프로야구 경기장 관림질서의 극심한 해이는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둔다”며 조치 가능한 사항을 언급했다. 즉 관중난동이 발생할 경우 ▲홈팀과 전혀 관계  없는 제3의 구장으로 장소 변경, ▲무기한 경기 중단, ▲관중을 입장시키지 않고 경기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 가운데 이른바 제3항의 ‘무관중 경기’가 참으로 희한한 발상이었다. 그로 인해 프로의 근본과 상식을 저버린 ‘자폭적인 탁상공론’이라는 매스컴의 질타를 받았다. 매스컴이 관중 사망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당시 모 야당 총재가 6월 2일치 조간신문을 통해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지역감정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 ‘마치 프로야구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도를 넘어선 관중 소란은 사직구장 관중 사망을 계기로 진정 추세에 접어들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롯데와 해태 선수들의 그라운드와 덕 아웃의 모습.(제공=일간스포츠)
1988년 5월 31일치 기록지. 관중소동의 간단한 내역과 경기중단 시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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