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회귀 한 CJ ‘권법’, 검은띠 맞습니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4.21 07: 1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영화 ‘권법’(감독 박광현)을 둘러싼 후유증이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주연배우 여진구 쪽에선 “계약까지 해놓고 박광현 감독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를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고, ‘권법’ 측은 “크랭크 인 한 달 전까지 다른 영화를 찍고 오겠다는 여진구 측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권법’ 제작사가 김수현의 출연 여부를 타진한 사실이 알려지며 여진구에겐 동정 여론이, 한국 투자사인 CJ와 ‘권법’ 측엔 ‘또 갑질’이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붙었다. 사실 2대8 정도의 쌍방과실인데, 미성년자 배우에게 동정표가 쏠렸고 CJ는 대기업이란 이유로 과도하게 비난을 받은 것이다.
 단숨에 중화권 스타로 발돋움한 김수현으로 주인공을 바꾸고 싶었던 제작진의 ‘단순 변심’이야 얼마든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여진구를 끝까지 설득하고 어떤 식으로든 보상했어야 했는데 이 과정을 소홀히 여긴 감독과 제작진의 아마추어리즘이 이번 사태를 낳은 근본 원인이다.

 항간엔 ‘권법’ 제작사가 김수현을 접촉한 게 아니라 김수현 쪽에서 먼저 ‘권법’ 출연 시그널을 보냈다는 말도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권법’ 제작진의 말 못할 억울함도 이 대목에서 발생할 것이다. 얘기인즉슨 본격적인 중국 활동을 앞둔 김수현 측이 한중 합작 ‘권법’의 준비 상황을 문의했고, 이 과정에서 출연 가능성까지 내비췄다는 얘기다.
 만약 사정이 이랬다면, ‘권법’ 제작진과 박 감독은 여진구에게 하차 통보 전 조심스럽게 교체 이유를 설득해야 했고, 투 트랙으로 김수현의 출연 계약서 작성을 서둘렀어야 한다. 여진구 문제가 외부에 불거지자 예상대로 김수현은 “이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다”며 황급히 발을 뺐고, 여진구 측은 이미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감정이 상한 상태였다. 기성 감독과 국내 1위 투자배급사 CJ E&M답지 않은 상황 오판과 일처리였다.
사실 촬영 전 주연배우 교체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권법’과 가장 유사한 일을 겪었던 영화는 차이나 머니가 투입된 ‘미스터 고’였다. 당시 남지현이 일찌감치 여주인공으로 내정됐지만, 계약 직전 중국 3대 투자사 중 하나인 화이브라더스의 요구로 중국 여배우 서교로 교체됐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잡음이 일지 않았던 건 김용화 감독과 쇼박스가 남지현과 가족들에게 충분히 양해를 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남지현의 어머니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우리도 사람인데 어떻게 서운하지 않을 수 있나. 연습도 많이 한 상태였고. 하지만 감독님이 너무 미안해 하셨고 지현이를 다독여줘 얘기가 잘 마무리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박광현 감독은 “살도 빼고 액션 준비도 할 게 많은데 굳이 5~7월 다른 영화를 찍어야 하느냐”며 여진구 스케줄에 관여해 상대 심기를 건드렸다. 결국 여진구 측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5~7월 스케줄을 잡자 박 감독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사태를 키운 꼴이 됐다. 냉정함이 위기관리 능력의 관건이란 걸 새삼 실감케 한 사례였다.
이에 반해 여진구 측은 하차 통보 직전까지 8월 ‘권법’ 크랭크 인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액션 연습도 충실히 따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권법’은 아직 촬영, 조명, 연출부 등 핵심 스태프가 100% 꾸려지지 않았고, 필름메이커스를 통해 제작부원을 모집중이다. 또 영화의 주 촬영지가 될 부산 기장 세트장 부지 매입도 아직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추세라면 테스트 촬영이라면 모를까, 8월 크랭크 인이 최소 한 두 달 늦춰질 것이라는 게 영화계 중론이다.
 이렇게 불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는 동안 CJ가 적극적으로 화재 진압에 나서지 못한 건 새 정부 들어 영화산업 독과점과 수직계열화가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CJ 영화사업부문장 정태성 대표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CJ가 어설프게 나설 경우 ‘권법’의 실질적인 제작자인 정 대표가 ‘자기 영화를 감싸는 것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누구도 오더없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법’은 지난 2006년 정태성 당시 쇼박스 영화사업 본부장이 ‘웰컴 투 동막골’ 박광현 감독과 함께 차린 쇼박스의 자회사 모션101의 창립 예비작으로 태동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마포구로 사무실을 옮겨 다니며 ‘간다, 엎어졌다’ 말이 많았고, 작년엔 조인성 이연희를 캐스팅해 ‘고생 끝나나 보다’ 싶었지만 50억 원이 넘는 부실 채권과 300억이 넘는 제작비 때문에 다시 원점 회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위기를 맞았지만 8년 동안 내공을 쌓은 ‘권법’이 이대로 주저앉진 않을 것이다. 박광현 감독의 뚝심과 세련된 연출력, 더 적합한 배우가 붙어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경우의 수는 더 늦기 전에 제작진이 여진구를 찾아가 오해를 풀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물론 여진구와 1인 기획사 대표인 그의 모친이 이를 받아줄 때 가능한 일이지만. 초능력 주인공의 활약을 다룬 SF 영화 ‘권법’이 제목처럼 유단자인지, 노란 띠인지는 제작진이 어떻게 사태를 봉합할 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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