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선수들의 잃어버린 소원,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4.04.24 06: 16

“우리가 성적을 내면 감독님과 오래 있을 수 있다.”
LG 이병규(9번)는 2013년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당시 시즌 목표를 이렇게 밝혔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10년 동안 가지 못한 ‘4강·포스트시즌’을 강조하면서도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았다.
이병규는 1년을 함께 한 김기태 감독에 대해 “사실 선수였다가 감독이 되면 변하시는 분들이 많다. 물론 감독이라는 자리가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마음으로 다가오신다. 실제로 우리 선수들도 많이 놀랐다”면서 “이런 게 선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감독님만을 위해 야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성적을 내면 감독님과 오래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기태 감독과 긴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야한다는 뜻이었다.

이병규 만이 아니었다. LG 선수단 모두에게 김기태 감독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2012년 11월 LG와 FA 재계약을 택한 정성훈과 이진영은 “돈이 첫 번째라면 재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존경하는 감독님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둘은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김기태 감독님을 앞으로도 모셔야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LG에 잔류하게 된 원인이 겨우 1년을 함께한 김기태 감독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성훈과 이진영은 당시 FA 시장의 대어였다. 중심타순 어디에 자리하든 자기 몫을 해냈고 수비 또한 리그 정상급이었다. 이미 이전 4년 동안 LG에서 모범 FA임을 증명한 만큼, 걱정하지 않고 향후 4년 맡길 수 있었다. 때문에 몇몇 팀들은 LG와 정성훈·이진영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지방에 있는 A와 B구단이 둘을 잡기 위해 김주찬 규모의 계약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나 정성훈과 이진영은 원소속구단 FA 협상 시작일 첫 날부터 LG와 계약을 체결했다.
김 감독을 향한 마음은 팀의 주축이 아니거나, 김 감독과 인연이 깊지 않은 신예 선수들도 비슷했다. 2009년부터 2년 동안 현역 군복무에 임한 김용의는 2011년 가까스로 다시 야구배트를 잡았다. 이후 2012시즌 초반 대타나 대주자로 그라운드에 섰다. 김용의는 타점을 올리거나 결정적인 도루를 기록할 때면 “감독님이 기회를 주신만큼, 이에 반드시 보답해야한다는 마음으로 그라운드에 섰다”고 말했다.
김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부터 LG 2군에서 김기태 감독과 호흡을 맞춘 차명석 전 LG 투수코치는 지난 2년 동안 “다른 목표는 없다. 김기태 감독님이 재계약하시는 게 첫 번째 목표다. 투수들을 잘 관리하고 강한 마운드를 구축해 성적이 나면 구단도 김기태 감독님과 재계약할 것이다. 감독님의 재계약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감독님’이란 세 글자는 LG를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3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 10년 동안 반복된 악몽에서 탈출하는 환희를 맛봤다. 성공까지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많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이 있을 때도 팀을 대표했다. 어린 선수가 사고를 저지르면 “감독은 선수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부모의 심정으로 사과드린다”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팀이 승리할 때면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선수들 모두 수고했다”고 좋은 경기를 펼친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야구를 잘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팀 전체가 하나가 되는 일이다. 김 감독의 손가락 세리머니의 의미 또한 ‘한 마음’이었다. LG의 한 고참선수는 “김기태 감독님이 우리 팀에 오시기 전까지 베테랑은 베테랑대로, 어린선수들은 어린선수들대로 힘들었다. 누구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며 “베테랑은 마음만큼 야구가 되지 않아 은퇴나 방출을 걱정했고, 어린선수들은 겨우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할까봐,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다”고 과거를 돌아봤다.
덧붙여 “프랜차이즈 스타 이병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복귀한 첫 해, 이병규는 하위타선을 맴돌다가 9번 타순까지 자리가 밀렸다. 리듬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은퇴까지 생각하는 것 같더라”며 “이러면서 선수들은 외부의 시선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점점 멀어져갔다. 김기태 감독님이 오시기 전 LG는 정말 분위기가 다른 팀이었다”고 아쉬움을 삼켰다.
지난해 이병규는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고령 타격왕에 올랐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4년 전처럼 하위타순에 자리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빈번히 6번, 혹은 7번 타자로 출장했다. 그럼에도 이병규는 “항상 최선을 다해야한다. 감독님께서 내신 라인업은 최선을 다해 승리하라는 의미다”며 “앞자리든 뒷자리든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내 앞에 타자들이 살아나가면 나는 부담 없이 이들을 홈으로 들어오게 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고 웃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LG 선수들은 당연히 김기태 감독이 구단과 연장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 생각했다.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날 극적인 승리와 함께 2위에 도달, 숙원 했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뤘다. 때문에 김기태 감독과 함께 할 날도 길어질 것으로 봤다. 지난 1월 22일 NC는 김경문 감독과 계약 만료 1년을 앞두고 3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LG 선수들도 비슷한 소식을 듣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한 겨울이 지나도, 시범경기가 열려도 김기태 감독의 연장 계약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결국 선수들은 시즌 개막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김 감독이 자진사퇴했다는 말에 정신을 잃었고, 다들 멍하게 그라운드만 바라봤다.
LG의 한 중고참 선수는 “23일 경기를 전후해 김기태 감독님의 사퇴 소식이 들렸다. 경기가 끝나고 숙소에서 선수단 미팅이 열렸다. 선수들 모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만, 내일도 야구가 있지 않나. 다시 준비해서 잘 해보자’고 서로 등을 두드렸다. 조계현 감독님도 ‘나도 오늘 정확한 소식을 들었다.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다시 해보자. 한 번 이겨내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정말로 낯설더라. 그저 시간이 계속 흘러가기를, 그래서 지금 이 기분이 괜찮아 지기를 바랄 뿐이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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