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 돋보인 ‘역린’, 눈물을 아껴요 이재규 감독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4.24 07: 09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이재규라는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긴 건 그가 ‘다모’라는 사극으로 연출 데뷔를 앞두고 있을 즈음 들리던 그에 대한 풍문 때문이었다. “MBC에 MBC PD답지 않은 유별난 신인 감독이 나타났다”는 얘기였다. 대체로 에고(ego) 강한 깐깐한 MBC 드라마국에 겸손 모드의 뉴페이스 출현은 꽤 신선했다.
 당시 MBC엔 주선이라는 유명 캐스팅 디렉터가 있었지만, 이재규 감독은 본인이 직접 발품을 팔며 배우들을 섭외하러 다녔고, 사비를 들여 직접 제본한 대본도 배우와 매니저들 사이에서 소장 가치 있는 ‘레어 아이템’으로 통했다.
 이런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시청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리 없다. ‘다모’는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부감샷과 경쾌한 액션 장면과 더불어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유행어까지 낳으며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채널 돌아갈까 봐 쉴 새 없이 대사를 주고받는 기존 드라마 서사구조와 달리 은유적인 장치와 여백 덕분에 “영화 같은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원이 ‘더킹 투 하츠’의 출연을 자청한 것도 “이재규 감독이라면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무한 신뢰 덕분이었다. 그와 작업했던 모든 배우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능력과 겸손을 겸비한 연출가” “배우의 감정선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주고 같이 울어주는 감독”이라고. 디렉션을 주고 OK, NG를 외치는 대신, 원하는 연기가 나오면 배우에게 다가가 “고맙다”며 격려해주는 감독은 요즘도 흔치 않다.
 그런 그가 보란 듯 영화 ‘역린’을 연출했다. 역시 압축과 절제미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이번에도 배우들을 직접 찾아다녔고, 진정성을 담보로 한 설득은 여지없이 적중했다. 자존심이 세 종종 부딪칠 것 같았던 최성현 작가와도 의외로 긍정적인 스파크가 튀었다. “작가님, 여기서 이 대사는 무슨 의미죠?” “제가 잘 이해를 못 해서 그러는데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상대는 발톱을 숨기고 저절로 내 편이 되게 돼있다.
 작년 9월부터 2월까지 83회차 ‘역린’을 촬영하며 이재규는 많이 울었다. 천성적으로 눈물이 많기도 하지만, 사도세자를 아비로 둔 비운의 왕 정조 현빈과 왕을 암살하기 위해 궁에 들어온 내시 정재영,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지 못한 킬러 조정석의 연기를 모니터로 보며 배우들 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흘려 “수자원공사에서 파견 나온 감독이냐”는 말까지 들었다.
 3년 만에 컴백한 현빈의 부담감을 덜어주려고 일일이 편집점을 일러주며 선택과 집중에 몰두할 수 있게 했고, ‘도둑들’ 같은 캐릭터 무비가 아님에도 조정석 김성령 한지민 정은채 등 주연 8명의 사연을 골고루 녹여내는 치밀한 설계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반 년간 배우들과 마음 편히 노래방 한 번 못 갈 만큼 ‘빡센’ 고난의 행군을 마친 요즘, 그는 11kg이 줄었고 생체 리듬과 배터리는 완전 방전 상태가 됐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되고, 정성을 쏟으면 이내 겉에 배어나오며 밝아진다. 밝아지면 이내 남을 감동시키게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만물을 생육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예기 중용 23번째 장의 이 대사는 기본을 소홀히 여겼다가 뼈아프게 반성하는, 압축 고도성장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요즘 세상을 향한 감독의 처절한 외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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