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실패' 축구협회, '조광래의 교훈' 되새겨라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06.29 06: 29

한국축구가 무너졌다. 20년 전 성적으로 회귀하며 냉정한 현 주소를 실감했다. 이런 실패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옳은 방향으로의 변화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그 선봉에 서야 한다.
한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실상 참패했다. 2회 연속 16강이라는 아시아 최초 대업에 도전했으나 1무 2패에 그쳤다. 경기력도 실망스러웠다. 내심 1승 상대로 지목했던 알제리에는 2-4로 무너졌다. 마지막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50분 가까이 10명으로 뛴 팀에 졌다는 점에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사실 월드컵 레벨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번 월드컵만 봐도 상대가 퇴장을 당한 상황에서 진 팀은 한국 밖에 없었다.
냉정히 말하면 ‘월드컵 레벨’이 아니었다는 말도 된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에 비난의 화살이 내리 꽂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는 것을 좋아하는 감독은 없다. 지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벤치의 지략과 선수들의 실력이 부족했고 좀 더 넓게 보면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축협이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지금 팬들의 비난이 향하는 지점은 ‘16강 진출 실패’가 아니다. 2002 한·일 월드컵으로 팬들의 시선이 한껏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8회 연속 본선 진출로 본선 진출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월드컵에서 16강에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과정이었다. 연이은 감독 교체로 인한 홍역, 그리고 ‘의리’로 대변되는 선수 차출 문제에서 분노가 쌓였다. 그 분노가 ‘부진한 성적’이라는 촉매제를 만나 폭발한 것이다.
축협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우왕좌왕했다. 따지고 보면 당초 이번 월드컵을 겨냥하고 지휘봉을 맡긴 조광래 감독을 경질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물론 레바논전 패배가 결정적이었지만 추구하는 방향과 전체적인 승률로 대변되는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내도, 믿음도 없었다. 여기에 기술위원회조차 소집하지 않은 채 밀실야합의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어버렸다.
반대로 정작 감독을 경질하면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고사한 최강희 감독에게 억지로 떠넘겼고 최종예선까지 시한부로 맡았던 최 감독이 약속대로 물러나자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홍명보 감독에게 짐을 맡겼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1년 남짓의 짧은 기간에 월드컵을 준비해야 했던 홍 감독도 희생양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축협의 잘못된, 그리고 신중하지 못했던 판단은 브라질에서의 참패로 이어졌다.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김없이 나온다. 아마도, 축협은 “변하겠다”라며 고개를 숙일 것이다. 매번 실패가 있을 때 그래왔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바뀐 것은 별로 없었다. 세기가 바뀌었어도 연간 예산이 1000억 원에 이르는 거대 조직인 축협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당장 옆 동네 일본은 탈락 이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축협은 아직 뭔가의 말조차 꺼내지도 못했다. 이런 사소한 것이 누적되면서 차이가 생긴다.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을 생각하면 또 손길이 급해진다. 당장 홍 감독의 거취 여부부터 결정해야 한다. 물러난다면 철저한 검증을 통해 새 감독을 찾아야 할 것이고, 유임한다면 어떤 부분에서 변화와 개선이 필요한지 종합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4년 뒤 월드컵을 생각한다는 말조차 근시안적인 시선이다. 20년 뒤, 50년 뒤 한국 축구를 생각할 때 무엇이 가장 옳은 방향인지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는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조광래 감독은 한국 축구에 패싱 게임을 접목시키려는 참신한 시도를 한 지도자로 기억된다. 물론 공도 있고 과도 있었다. 조광래 감독이 계속 대표팀을 맡았다고 해서 지금보다 나은 성적을 거뒀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준비기간 동안 일관성 있게 나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며 그나마 납득할 만한 마무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조광래 경질이 남긴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마음대로 칼을 휘두른다면, 그 칼끝은 언젠가 축협의 목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