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윤종빈감독은 왜 특급 칭찬을 자기 검열했을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7.21 07: 2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윤종빈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악인에 대한 연민 의식이다. 이력서만 보면 정말 나쁜 놈인데, 자소서를 읽고 나면 마냥 비난만 할 순 없는 불편한 진실이 발생한다. 하정우가 연기한 ‘비스티보이즈’의 호스트바 마담이 그랬고, ‘범죄와의 전쟁’ 대부님 최민식도 이 범주였다. 다들 말 못할 사정이 하나둘 있게 마련이고, 내키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과 적당히 얽혀 사는 게 인생이라는 걸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19세기 조선 철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군도’ 역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버림받은 아들 조윤(강동원)의 콤플렉스가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 요즘으로 치면 지방 군수나 시의원 정도 되는 공직자 아버지를 뒀지만, 집밖에서 낳은 자식이란 이유로 찬밥 신세가 되고 태생적 한계에 따른 자괴감과 우울감을 검술로 극복하려던 남자는 결국 불행으로 가는 삐딱선을 타고 만다.
조선 최고의 무관이 된 약관 조윤은 부패한 관료 아버지 보다 더 악랄하고 지능적인 수법으로 나주 백성들의 곡식을 빼앗고 양민 학살까지 일삼는다. ‘소생 이렇게 해서라도 아버님께 인정받고 싶습니다’라는 처연한 외침이겠으나 문제는 초근목피로 견디는 백성들의 원망과 한탄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조윤은 지리산에서 암약중인 화적떼 추설의 제거 대상이 되고 이들과의 목숨을 건 대결에 불려나오게 된다.

 ‘망할 세상 백성을 구하라’는 묵직한 카피에 끌려 ‘군도’를 보게 본다면 코믹한 내레이션에 1차 당황하게 되고, 하정우의 절간 엉덩이 뒤태 장면부턴 ‘이거 뭐지?’ 의아하게 된다. 예상치 못했던 코미디가 반가울 수도 있지만, 민중 봉기나 혁명에 대한 울림 가득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했다면 얼마든지 당혹스러울 수 있는 궤도 이탈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홍길동이나 임꺽정을 연상시키는 의적들이 관아와 양반집을 털어 곡식을 백성에게 나눠주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도치(하정우)가 양반들의 상투를 자르며 통쾌해하는 장면 보단 감흥의 강도가 확실히 떨어진다. 마카로니 서부극을 표방한 ‘군도’가 정작 다루고 싶었던 건 처음부터 화적떼의 맹활약이 아니라 죄의식 없이 가족을 몰살시킨 악당 조윤을 향한 불가촉천민 도치의 계급장 떼고 붙는 한판 복수였던 것이다.
 감독과 네 번째 작업인 ‘중앙대 영화적 동지’ 하정우는 이 액션극의 완급을 조절하는 4륜 구동 엔진이자 브레이크다. 이름 앞에 ‘The’라는 정관사를 붙이고 싶을 만큼 놀라운 몰입과 힘 조절을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줬다. 초반부 백정 돌무치로 나올 때의 순박함과 가족을 잃은 뒤 도적떼 일원이 된 도치의 적개심 가득한 눈빛이 ‘군도’를 한층 풍성하게 해준 배경화면이 됐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을 떠올리게 하는 대나무 숲 대련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였다. 일당 백 실력자 조윤을 자신의 ‘나와바리’ 대나무 숲으로 유인한 뒤 독학한대로 그를 가두고 처단하는 장면은 구간반복으로 보고 싶을 만큼 아이디어가 좋았다. ‘군도’가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하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갇히지 않은 것도 하정우의 이런 열연 덕분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윤종빈과 영감을 주고받는 시너지 작업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소화해낸 강동원은 연기력과 별개로 다시 한 번 구매력 뛰어난 상업 배우로 방점을 찍게 됐다. 상복을 입어도 섹시하고, 흰 도포를 입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탄성이 터지는 건 아우라라는 수식 외에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워낙 타고난 신체 비율이 뛰어난 배우인데 감독이 로우앵글로 잡아 비주얼이 한층 더 극대화됐다. 상투가 베어져 긴 머리가 찰랑이는 일명 ‘전설의 고향’ 장면에선 여자 보다 더 고운 미모가 부각돼 개봉 후 온라인 감상평 공간이 불판이 될 것 같다.
 뒤늦게 생면부지인 갓난아기 조카 때문에 심적 동요를 느낀다는 게 조윤의 캐릭터 상 얼른 와 닿지 않지만, 강동원의 미모에 가려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학파 설정으로 피해갔지만, 나주 대부호의 자제임에도 군데군데 배어나오는 경상도 억양이 왠지 배우가 역할을 위해 끝까지 정성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자신의 제작사를 차려 투자사와 공동 제작한 감독이 얼마든지 재능을 더 발휘해 특급 칭찬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를 마다한 채 강동원의 이미지즘을 최대한 창립작에 끌어다 썼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이 영리한 자기 검열 전략은 어느 정도 주효할 것이다. 러닝타임 137분.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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