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의리남’ 홍원기, 박찬호 은퇴식을 성사 시키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07.22 11: 10

연예계에 ‘김보성의 의리’가 화제다. 야구계는 홍원기(41) 넥센 히어로즈 코치의 ‘숨은 의리’가 입소문을 타고 잔잔하게 퍼지고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상한 의리’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 홍원기의 의리는 친구를 돋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박찬호(41) 은퇴식의 후일담이 되겠다. 박찬호가 지난 7월 18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렸던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후배들의 열렬한 지지와 환호 속에 ‘공중부양(헹가래)’으로 은퇴식의 피날레를 찍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절친한 친구 홍원기가 자리하고 있다.
2012년 시즌 후 그해 11월 30일 박찬호는 공식 은퇴식 없이 기자회견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 장면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했던 것이 바로 박찬호와 공주고 동기인 홍원기 코치였다. 이른바 야구 판의 1992학번은 끈끈한 유대와 정으로도 유명한 세대이다. 그 학번의 중심에 홍원기 코치가 있다. 일부러 공치사를 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하는 홍 코치지만, 굳이 박찬호 은퇴의 힘이 되 준 사실을 알리려고 하는 까닭은 ‘홍원기의 의리’가 보여준 뜻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홍원기 코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13시즌이 끝난 뒤부터였다. 홍 코치의 가슴 한편에는 늘 은퇴식을 하지 못하고 떠난 박찬호가 걸려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박찬호라는 이름이 팬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갈 판이었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이 총대를 메고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프로야구선수협회의 후배들(각 구단 대표들)을 두루 만나 ‘박찬호 공식 은퇴식’의 필요성을 설파하기 이르렀다. 후배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 시기를 올스타전으로 잡았다.
후배들과의 협의 과정이 마냥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체로 홍 코치의 취지에 찬동하고 따라줬다. 물론 박찬호가 마지막 유니폼을 입었던 한화 이글스 구단도 박찬호의 그라운드 은퇴식을 고려했지만 워낙 팀 성적이 나빠 좀체 표면화시키기 어려웠던 터. 그렇다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발 벗고 나선 홍원기 코치의 꾸준한 설득과 노력으로 마침내 지난 5월 선수협 대의원 총회에서 박찬호 은퇴식 추진을 결의하고 KBO에 협조 요청을 하게 됐다. 결국 KBO도 선수협의 요청에 화답, 올스타전에서 박찬호 은퇴식을 치르기로 모양새 좋게 매듭지어졌다.
홍원기 코치는 “작년부터 그런 얘기(박찬호 은퇴식)가 나왔다. 찬호와 친분이 있는 것을 아니까 선수들이 안부도 물어보고, 각 팀 주장들(선수협 대의원)과 의견을 나누게 됐다. 개인적인 의견이었지만 찬호가 비록 고향 팀 한화에서 마지막으로 일 년만 뛰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였으므로 ‘선수들이 다 모인자리(올스타전)에서 하면 어떻겠나’하는 얘기로 정리됐다.”
구단 대표선수들의 의견이 수렴되자 선수협이 나서 KBO측에 건의하게 됐다는 것이다. 홍 코치는 그에 덧붙여 이렇게 설명했다.
“제 개인 생각으로 제일 친한 친구를 떠나서 (박찬호가) 그냥 잊혀 져서는 안 되겠다, 우리나라를 대표했고, 아시다시피  IMF 힘들 때 우리 국민들 희망이었고, 스타였던 그의 앞에서 올스타전을 뛰고 있는 우리 선수들, 박찬호를 보고 박찬호 같은 꿈을 키워나간 선수들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홍원기의 말에 따르면 박찬호는 후배들이 자신의 은퇴식을 마련해준 데 대해 아주 감격했다고 한다. 은퇴식이 결정된 다음 홍 코치가 그 사실을 전달해주자 박찬호는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고 울컥했다. 홍 코치는 “저는 선수들 마음만 전달했을 뿐이다. (박찬호에게)선수협이 이런 생각을 갖고 KBO에 정식으로 요청했는데 성사 될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박찬호가 “선수들이 그런 마음을 가져준 데 대해 가슴 벅차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은퇴식을 찬호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회견만 하고 떠난 뒷모습을 보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유니폼을 입고 떠나는 게 제일 보기 좋은 데, 기자회견 때 마음이 짠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 선수였는데, 물론 많은 훌륭한 선배들이 계시지만 박찬호를 보고 희망을 품었던 팬들 앞에서 인사를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나.”
은퇴식 후 기자회견 때 박찬호는 앞으로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요지의 답을 내놨다.
박찬호의 생각을 잘 읽고 있는 홍원기 코치는 그와 관련, “박찬호의 생각과 관심은 무조건 유소년 야구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야구가 큰 인기를 끌고 폭발적인 모양새이긴 하지만 선수 육성의 기본 뿌리는 취약하다. 어린이들이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면서 “박찬호가 한화 입단 당시에 계약금과 연봉을 모두 유소년 야구에 써달라고 한 취지를 상기해보면 알 수 있다”고 전했다.
 
홍원기 코치의 의리를 되새길 때 떠오르는 삽화 하나가 있다. 2013년 1월 8일, 세상을 떠난 고 조성민을 장지로 운구하면서 맨 앞에서 오열을 하던 그의 모습이다. 그는 조성민이 느닷없이 변을 당했을 때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첫날부터 장례를 마칠 때까지 궂은일을 앞장서서 해냈다.
“(조성민이) 세상을 떠난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공원에 가끔 가서 보곤 하는데 너무 미안한 친구다. 세상이 안 좋게 볼 때 나까지도 색안경 끼고 봐 너무 미안하고 제일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을 떠난 이와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두루 ‘의리’를 지켜온 그의 행보가 유난스레 살가워 보인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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