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욱·임재철, 상승세 LG의 숨겨진 힘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4.07.29 06: 01

“어느 팀이든 50패는 한다. 어제 오늘 졌다고 다 끝난 것처럼 굴지 말자. 정말 포기하고 싶다면 50패한 후에 하자.”
지난 5월말 LG 베테랑 우투수 정현욱(36)은 후배 투수들을 불러 모았다. 당시 LG 마운드는 선발진과 불펜진이 동시 붕괴, 대량실점으로 패하는 경우가 잦았다. 지난해 팀 평균자책점 1위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선발투수가 잘 던지면 불펜이 무너졌고, 반대로 선발투수가 조기강판 당하면 불펜이 그나마 버텼다. 좀처럼 해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서 정현욱은 후배들에게 ‘50패 이론’을 강조했다.  
정현욱은 “아무리 잘하는 팀이라도 50패는 한다. 삼성에서 우승도 몇 차례 했지만 그래도 1년에 50번 이상은 졌다”며 “물론 투수가 안타 맞고, 경기에서 지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도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배들까지 부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배가 포기하고 가만히 있으면 후배는 그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다. 적어도 후배들에게 아무 것도 안 하는 선배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어쩌면 현재 LG 상승세의 시작점은 여기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지난 5월 30일 최하위 LG는 16승 30패 1무, 5할 승률 ‘-14’를 찍었다. 4강권과는 무려 9.5경기 차이. 상위 팀을 향해 고개를 들기도 힘들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LG의 두 베테랑 정현욱과 외야수 임재철(38)은 고개 숙이지 않았다.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아도, 언제나 덕아웃과 라커룸에서 후배들을 독려하며 매일 매일을 철저히 준비했다.   
LG 양상문 감독 역시 정현욱의 역할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양 감독은 “현욱이의 보직이 무엇이 되든 현욱이는 우리 투수진에 꼭 필요한 존재다”고 매번 목소리를 높였다. 정현욱이 부진한 다음 날에는 “구위는 좋아지고 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투수인 만큼, 스스로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무한신뢰를 보냈다. 정현욱 또한 양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꾸준히 페이스를 올렸다. 5월까지 평균자책점 6.05였으나, 6월부터 전반기 마지막까지 평균자책점 2.77를 기록했다. 정현욱의 자리는 추격조지만, LG 마운드는 어긋났던 부분들이 하나씩 맞물리며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투수조에 정현욱이 있다면, 야수조에는 임재철이 있다. 지난 6월 26일 1군에 올라온 임재철은 경기 중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인다. 선발 출장하는 날보다 덕아웃을 지키는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이닝이 끝날 때마다 가장 먼저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후배들을 격려한다. 불펜에서 투수들이 몸을 풀고 있으면 자청해서 불펜 포수 옆에서 타격 포즈를 취해 투수에게 조언한다. 주로 벤치를 지키는 후배들에게는 경기에 집중하고 대타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임재철은 “우리 팀의 주장은 (이)진영이다. 하지만 진영이는 거의 매일 경기에 나간다. 누군가는 경기 중 덕아웃에서 대기하고 있는 후배들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진영이가 큰 바퀴라면, 나는 작은 바퀴가 되고자 했다. 사실 타자 입장에서 덕아웃에 마냥 앉아만 있다가 대타로 나가면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경기 감각이 없는 상태라 방망이는커녕 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덕아웃에 있더라도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고 내가 어떻게 쳐야겠다고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그래야 대타로 나갔을 때 칠 확률이 올라간다. 덕아웃에 앉아 있는 후배들에게 이런 부분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7월 3일 LG는 내야수 조쉬 벨을 방출했고 이틀 후 새 외국인타자 브래드 스나이더를 영입했다. 스나이더의 포지션이 외야수기 때문에 자연히 외야진 정리가 필요했다. 결국 지난 23일 임재철은 1군 엔트리서 제외됐다. 그러나 양 감독은 임재철을 2군으로 보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양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정말 미안하다. 베테랑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미안한데 내가 덕아웃에 남아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며 “지금 우리 벤치 분위기는 재철이가 이끌고 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정현욱은 1996년 프로 입단 후 2012년까지 17년 동안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1999년 롯데에 지명된 임재철은 삼성과 한화를 거쳐 2004년부터 작년까지 두산에서 활약했다. 둘 다 LG 유니폼보다는 각각 삼성·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익숙하다. 정현욱은 삼성에서, 임재철은 두산에서 터득한 리더십을 LG로 가져오고 있다.
정현욱은 “삼성 입단 후 매번 투수 선배들의 훈련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지금 코치를 하고 계시는 김태한 선배님과 전병호 선배님 모두 정말 부지런하셨다. 후배인 나로서는 그저 선배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따라가기도 하루하루가 벅찼다”고 돌아봤다. 임재철은 “처음에 롯데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박정태 선배님, 이후 한화로 이적하고 나서는 장종훈 선배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분들의 준비성과 기술, 그리고 정신력을 배우고 싶었다”며 “이후 두산에 왔는데 두산은 두산 만의 문화가 있더라.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마치 칼을 가는 것 같았다. ‘경기에 안 나갈수록 더 준비해야 한다’는 의식이 선수들 모두에게 박혀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재철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LG에서 나를 불러줬다. 그만큼 내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부탁도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며 “나로 인해 덕아웃에 앉아 있는 후배들이 좀 더 준비한다면 그 자체로도 만족스럽다. 이렇게 하나하나 쌓이면서 LG만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시즌 초반 성적이 안 나오자 후배들 대다수가 너무 풀이 죽어있더라. 그래서 일부러 ‘올라간다. 올라간다’를 입에 담고 살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나. 우리도 언젠가 ‘올라갈 수 있다’는 의식을 후배들 머릿속에 심어주고 싶었다”고 LG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야구의 거의 모든 것들이 숫자로 환산되고 보다 정교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타율과 OPS, 평균자책점과 WHIP 같이 단편적인 것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됐는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윈 셰어, WAR 등으로 선수 한 명의 종합적인 가치를 직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올 시즌부터 메이저리그는 야수들의 타구 반응속도, 평균 주행속도, 송구속도 등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선수 수비력 평가에도 명확한 기준이 만들어질 듯하다.
하지만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리더십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팀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쉽다. 선수 입장에서도 함께 뛰고 생활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LG에서 정현욱과 임재철의 리더십은 작지만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편 정현욱은 지난 27일 1군 엔트리서 말소됐다. 정현욱은 지난 25일 4회초까지 진행되다가 우천으로 노게임 선언된 경기에 등판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을 느꼈고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양 감독은 “선발투수를 조기에 바꾸면서 당시 현욱이 외에는 길게 던져줄 수 있는 투수가 없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됐는데 팀 입장에선 다행이었으나 현욱이에게는 미안하더라.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비가 오는 악조건 속에서 공을 던졌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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