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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박유천의 기관실 베드신 TPO에 맞는 최선의 행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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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낡은 고깃배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는 요즘 보기 드문 이해심 많은 남자다. 횟집 사장이기도 한 그는 아내가 백주 대낮에 외간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걸 보고도 “그러고 싶냐”며 애써 고개를 돌린다. 평소 남편 노릇, 가장 구실을 못 한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그는 전진호가 폐선 될 위기에 처해도 식구 같은 선원들의 생계 걱정부터 하는 씨맨십 가득한 이타적 인간이다. (이 기사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 돼 있습니다.)

타인에게 이토록 관대한 철주이건만 그의 현실은 가혹하다 못해 비참하다. 분신 같은 어선은 IMF 고금리에 눈이 먼 선주에게 압수될 위기이고, 모처럼 나간 바다에선 병어는커녕 멸치 조업도 번번이 실패하며 빚만 쌓인다. 이 모든 걸 한 방에 만회하기 위해 철주가 선택한 건 밀항 조력. 국내 최대 밀항지인 여수 인근 공해상에서 은밀히 중국 조선족 밀항자들에게 배를 대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벌어지고 수습에 나선 철주와 선원들은 배와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무자비한 행동을 강요받게 되며, 전진호는 서서히 피바다 생지옥으로 변한다. 망망대해 도망갈 곳 없는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이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지, 이성을 잃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혐오스럽고 서로를 미치광이로 만드는지, 각오를 단단히 했음에도 고개를 돌리고 싶을 만큼 잔혹하고 불편한 장면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극단 연우무대의 30주년 기념작이기도 한 동명 연극 ‘해무’는 초연 당시 인간 본연의 뒤틀린 욕망을 핀셋으로 정교하게 다뤘다는 평을 받을 만큼 탄탄한 희곡과 섬세한 연출로 동숭동의 화제였다. 만선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던 선원들이 해상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계기로 욕망과 탐욕을 넘어 악마의 초대를 받는다는 점에서 문제작 반열에 올랐다.

원작과 결말을 달리한 영화 ‘해무’는 여섯 선원의 캐릭터를 보강하고 70% 이상을 바다에서 촬영하는 등 비주얼에 공을 들였다. 빼놓으면 섭섭한 또 하나의 주인공 역할을 해낸 바다 안개도 극적으로 활용했다. 수십 명의 밀항자들이 어창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해무가 다가오는 시퀀스는 단연 압권이었다.

‘해무’는 어쩌면 이번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절박한 사람들의 표정과 사연으로 초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한다. 철주를 비롯한 선원들은 범죄인 줄 알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밀항에 나서고, 수십 명의 중국 밀입국 동포들 역시 사선을 넘는 비장한 각오로 폭우을 뚫고 전진호에 몸을 던진다. 해경과 주위 화물선을 피해 어창에 숨어있던 밀항자들이 몰살당하자 당황한 선원들은 증거를 없애고 밀항 브로커의 보복에 대비한 2차 범죄를 공모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여간다.

광기어린 인간들의 선상 난투극이 ‘해무’를 구성하는 한 축의 씨줄이라면, 또 다른 날줄은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과 조선족 처녀 홍매(한예리)의 가엾은 러브스토리다. 밀항 과정에서 생명의 은인으로 만나게 된 두 남녀는 서로의 순수함에 끌리게 되지만, 성욕에 눈먼 창욱(이희준) 때문에 관계의 치명적 균열을 맞는다. 창욱으로부터 홍매를 지키기 위한 동식의 안간힘은 눈물겨울 정도인데, 설상가상으로 동식은 유일한 밀항 생존자인 홍매마저 제거하려는 아버지 같은 선장과도 사투를 벌여야 하는 트릴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선택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미필적 고의와 부주의한 과실 치사, 또 여기서 발생하는 각종 충돌과 죄의식 등 ‘해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격렬한 인간 드라마다. 하지만 보고나서 개운치 않은 건 감독의 과잉과 개연성에 적잖은 의문부호가 따르기 때문이다. 선뜻 동의하긴 어렵지만 ‘그래 저런 상황이라면 저런 극단적인 행동도 할 수 있겠다’라고 이해하기엔 지나친 장면과 묘사들이 엉켜있다는 인상이다. 이 영화의 핵심이랄 수 있는 동식과 홍매의 기관실 베드신도 그 중 하나다.

살벌한 도륙의 현장을 목격한 두 남녀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옷을 벗기고 몸을 섞는 장면은 얼른 납득되지 않는다. 6년 후, 구로 3동에서의 애틋한 재회를 염두에 둔 장치였다고 해도 그렇다. 이 베드신이 단지 TPO에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두 남녀의 슬픈 본능이라고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심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화 보며 ‘저 사람들 왜 저럴까?’ 의아한 건 애석하게도 이 장면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누구나 심적으로 병약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특히 궁지에 몰리면 평소 제어됐던 야만성과 폭력성이 어느 순간 용수철처럼 튀어나올 수 있다. 초능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적어도 봉준호 표 상업 영화라면 인물의 심리와 다음 행동 패턴 정도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끔 장치 또는 배열했어야 하지만 ‘해무’는 여러모로 보폭이 빨랐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이 관객보다 늘 반 박자 정도 앞서 진행되다 보니 서서히 끓어올랐다가 터져야 할 감정의 비등점이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예컨대 6년 후 두 남녀의 재회 신이 울컥하거나 뭉클한 여운을 남기지 못하고 다소 작위적으로 다가온 것도 그런 연장선상의 결함일 거라고 생각한다. 2003년 봉준호와 ‘살인의 추억’을 공동 작업한 스크립터 출신 심성보의 연출 데뷔작이다. 청소년 관람불가로 8월 13일 개봉.
bskim0129@gmail.com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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