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판정 결과로 감독을 평가할 수 있나?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4.09.03 06: 23

합의판정 결과와 감독의 능력.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후반기 들어 심판 합의판정이 시행되면서 매 경기 각 팀의 운명이 합의판정에 의해 엇갈리기도 하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후반기 개막일인 지난 7월 22일부터 시작됐으니 휴식 일정을 제외하면 모든 구단이 이 제도 도입 이후 30경기 정도를 치렀는데, 많은 오심을 잡아주고 심판들을 긴장케 한다는 등의 호평 속에 서서히 안정된 제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합의판정이 화제가 되면서 합의판정을 신청해 성공시켜 경기 흐름을 바꿨는지 여부가 감독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있다. 특히 SK 이만수 감독은 8월 13일 잠실 LG전에서 한 이닝에 2번 연속 합의판정으로 결과를 뒤집어 승부의 흐름을 바꿔놓은 끝에 팀의 8-5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합의판정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과 감독의 능력은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 대다수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취지 자체가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경기 흐름이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 뿐,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수단이 되기는 힘들다. 한 감독은 후반기 초기에 "합의판정 승률과 벤치의 판단력은 전혀 관계가 없다. 어떻게 바라보고 이용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다른 팀 감독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벤치가 합의판정을 원하는 순간은 최초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다. 따라서 합의판정을 10번 요청해 10번 모두 성공했다고 해서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사실과 다르게 최초 판정이 불리하게 내려진 사례가 많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팀이라면 이전에도 억울한 상황이 있었으나 신청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을지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합의판정의 실패가 벤치의 무능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일례로 두산은 8월 17일 잠실 롯데전에서 합의판정으로 결승점을 뽑고 승리하기 전까지 7번의 합의판정 시도에서 모두 실패를 맛봤지만 있는 그대로 생각하면 앞선 7번의 상황에 심판들은 옳은 판단을 했고, 벤치는 이를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합의판정의 기회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경기를 매일 하는 것이다. 오심의 여지없이 심판이 모든 판정을 완벽에 가깝게 해낸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힘들다. 판정이 힘든 상황이면 양 팀 벤치와 플레이에 관여되어 있는 선수들은 각자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지나간 순간을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합의판정의 성공은 이익이 아니다. 그저 애초부터 받았어야 할 것을 조금 늦게 챙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합의판정으로 상황을 바꿔놓았다고 해서 기뻐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자신이 이의제기를 해야만 가져갈 수 있게 만든 심판들을 원망해야 마땅할 순간이다.
또한 합의판정의 실패는 심판이 정확한 판정을 한 것이므로 실패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비디오 리플레이는 심판의 실수를 교정하고 이로 인한 각 팀의 부당이득과 손해를 덜어주는 것이 전부다. 빼앗겼다고 여기던 것을 찾았을 때 혹은 그러지 못했을 때 생기는 심리적 효과까지 무시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물론 합의판정을 본래의 취지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단순히 판정을 바꾸는 것 이상의 효과를 가끔은 발휘할 수 있다. 모 감독은 경기 후반 역전승을 거둔 다음날 “상대 투수의 투구 리듬을 끊기 위해 아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합의판정을 요청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합의판정 전적 1패와 시즌 전적 1승을 맞바꿨다. 합의판정에서 받아든 성적표가 왜 감독 능력의 일부분이 될 수 없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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