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굳이 황우석 박사를 두 번 죽여야 했을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9.17 08: 55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제보자’(임순례 감독)를 보는 내내 가슴 한편이 무거웠다. 영화사와 감독이 실화를 기초로 한 픽션임을 누차 강조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황우석 박사가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노벨 의학상 후보이자 인류를 구원할 생명공학의 빛 같은 존재에서 하루아침에 대국민 사기극의 장본인이 돼버린 낯익은 그 이름.
극중 이경영이 연기한 한국대 이장환 박사의 줄기 세포 11개가 모두 가짜이고 논문 역시 조작됐다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질 때마다 극적 카타르시스 대신 왠지 모를 서러움과 절망감이 밀려왔다. 사면초가에 몰린 이 박사가 자신의 업적이자 과오인 복제견 몰리 앞에서 “너무 멀리와 버렸어. 사람들은 하나를 내놓으면 둘을 원하고 기대하지”라며 회한에 젖은 채 독백할 땐 배신감을 넘어 측은함마저 들었다.
‘제보자’는 꼭 10년 전 세상을 뒤흔든 황우석 박사와 MBC ‘PD수첩’간의 진실 공방을 극화한 영화다. 제작사는 이 영화의 장르를 ‘진실 추적극’이라고 용기 있게 표기했지만 애석하게도 ‘제보자’가 새롭게 제기하거나 내놓은 진실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PD수첩-취재 그 뒷이야기’라는 부제가 더 잘 어울릴 만큼 이미 공개되고 확인된 사실만으로 서사를 채웠을 뿐. 생존 인물의 민감한 과거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조심스러움이 엿보였지만 오히려 이런 소극성이 창작물의 뼈아픈 단점이 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제보자’는 사회 고발극 ‘도가니’와 맥을 같이 하는 가 싶지만 어느 순간 경로를 벗어난 어정쩡한 영화가 돼버렸다. 둘 다 똘똘 뭉친 악이 선을 이겨선 안 된다는 사회 정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도가니’가 장착한 현재적 문제의식을 ‘제보자’는 제대로 갖추지 못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분이나 울림의 진폭이 약하고 좁게 느껴진다. 굳이 미덕을 찾자면 언론의 기능과 중립성을 강조한 정도인데 과연 이것이 이 영화의 궁극적 지향점이었을까.
사회의 공기인 매스컴이 부패하고 혹세무민의 도구로 전락했을 때 세상이 얼마나 퇴보할 수 있는지는 굳이 이 영화가 부르짖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당위다. 집요하게 진실을 감추며 자신의 신화를 지키려 한 박사와 권력자들, 이에 반해 국익 보다 진실 규명이 먼저라고 믿는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대결이 ‘제보자’의 승부처일 텐데 영화는 두 집단의 대립을 단선적으로만 보여줄 뿐 스파크를 튀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부산을 가기 위해 경부선 기차에 올랐지만 동대구쯤에서 하차한 찜찜함이 남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청와대의 압력 등 난관을 이겨내며 줄기세포 조작을 세상에 고발한 PD의 집념은 마땅히 박수 받아야 한다. 하지만 10년 전 이야기가 오늘날 영화로 의미를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나 메시지가 동반돼야 하는데 ‘제보자’에는 이게 흐릿하다. 게다가 상업 영화로서 대중을 사로잡으려면 뭔가 그럴 듯한 개연성과 에피소드가 더해져 관객의 심박수를 높여야 할 텐데 ‘제보자’는 그쪽으론 그다지 정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영화가 누군가를 디스하려고 기획된 건 아닐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일부 언론과 맹목적 쏠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사명감을 발휘한 정의로운 집단을 통해 ‘당신은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습니까’를 되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10년 전 사건을 기억하지 못 하거나 별 관심이 없었던 관객들에게 ‘제보자’는 어쩌면 쇼킹함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10대들 사이에서 스포일러였다고 하니 ‘제보자’도 얼마든지 신선함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세련되진 않더라도 뚝심있는 연출력으로 유명한 임순례 브랜드의 영화라면 배우의 감정 진폭이 어느 정도 감지되고,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울림과 감동이 잘 버무려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결정적으로 아쉬운 건 요즘 시청자들은 선수들이 빠진 MBC ‘PD수첩’ 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더 즐겨보고 신뢰하지 않을까 하는 기자의 느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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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보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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