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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영의 다작을 바라보는 일부 안쓰러운 시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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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영화 ‘제보자’(임순례 감독)의 주인공은 투톱 박해일 유연석이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더 짙게 잔상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경영(54)이다. 황우석 박사를 연상케 하는 척박한 생명공학의 일그러진 영웅 이장환 박사를 너무나도 실감나게 연기했기 때문이다.

 극중 이장환 박사가 뇌성마비 환우의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고 “반드시 일어서게 해주겠다”고 공언할 때는 마치 예수를 보는 것 같았고, 자신의 연구 조작이 거짓으로 탄로 날 위기에 놓이자 복제견 몰리를 측은하게 쳐다보며 독백할 때는 절로 연민이 느껴질 정도였다. 감히 이경영 이외의 제3자가 떠오르지 않는 호연이었다.


한때 대한민국 영화를 주름 잡았던 그에게 사실 명연기 운운하는 게 난센스일지 모른다. 1990년대 그의 출연작이 개봉하던 서울극장과 국도극장엔 언제나 수 백 미터의 줄이 섰고, 가장 먼저 매진을 기록한다고 해 극장주로부터 ‘매진 배우’로 불렸던 그다.

 요즘 믿고 보는 대세 배우로 일컬어지는 하정우가 ‘롤러코스터’에 이어 ‘허삼관 매혈기’를 연출, 주연하는데 이 방면의 맏형이 바로 충주 출신 이경영이었다. 그는 ‘몽중인’(01)으로 주연 겸 연출가 뿐 아니라 그 동안 번 돈으로 제작까지 나서며 일찍이 주목받았다. 덕분에 충무로 ‘꼰대’ 감독들의 시기 질투도 받아야 했지만, 확실히 업계의 변화를 일찌감치 알아보는 매의 눈을 가졌던 건 틀림없어 보인다.

 이경영이 본격적으로 주7일 일하기 시작한 건 이태우 판사로 나온 ‘부러진 화살’(11) 이후일 것이다. 최근 몇 달간 그의 출연작만 손꼽아 봐도 그가 얼마나 촌각을 다투며 사는 지 대번에 알 수 있다. ‘군도’에선 화적떼의 정신적 지주로 나와 중량감을 보였고, ‘해적’에선 능력 보다 야망이 큰 불량 해적으로 나와 카리스마와 빅 웃음을 선사했다.

‘타짜-신의 손’에선 어땠나. 라면을 좋아하고 손금과 명리학에 조예가 깊은 강남 도박판 보스 ‘꼬장’으로 출연해 통쾌함과 배우 보는 맛을 만끽하게 해줬다. 사람들 뒤통수치지 않고 미나(신세경)와 함께 대길(최승현)을 돕는 몇 안 되는 조력자로 나와 관객의 흐뭇한 박수를 받았다. 10월초 개봉하는 ‘제보자’에서도 햄릿형 캐릭터 이장환을 빼어나게 연기하며 깊은 울림과 페이소스를 자아냈다.

 슬럼프와 악재를 훌훌 털어내고 본업에 돌아온 그를 관객들은 뜨겁게 맞아주고 있다. 최근 그의 출연작 무대 인사를 가보면 하정우 김남길 못지않은 큰 박수가 터져나온다. “바쁘신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틀에 박힌 멘트에서 벗어나 진심을 담은 촌철살인도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다. 그는 현재 ‘허삼관 매혈기’ ‘암살’을 찍고 있고 ‘은밀한 유혹’ ‘협녀’ ‘소수의견’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다작 활동을 우려하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특히 그를 20년 가까이 지켜보며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선배와 동료들의 걱정 아닌 걱정이 있다. 쉽게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에 이 영화, 저 영화 도와주다가 자칫 이미지가 소진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어렵게 얻은 만큼 늘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에 임한다는 이경영이 언젠가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시 마음을 다치지나 않을까 싶은 안쓰러움이다. 이경영의 한 측근은 “소속사가 없다보니 개런티 협상도 잘 못 하고 천성이 워낙 착한 탓에 몇 다리 건너는 온갖 인연에도 다 휘둘린다”며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개중에 그런 경영이의 선량함을 악용하는 영화인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경영은 “제가 뭐라고 회사에 들어가겠나. 지금도 충분히 제 힘으로 스케줄을 뛸 수 있다”고 말하며 손사래 친다. “잘 나갈 때 꽃등심 먹은 사람은 나중에 기억 못 해도, 힘들게 지낼 때 찬밥에 라면 같이 먹은 사람은 반드시 기억하게 돼있다”는 말도 그가 후배들에게 즐겨 하는 말이다. 아무도 안 써줄 때 특별출연, 우정출연으로 도움을 준 이들에게 어떻게든 보은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경영은 촬영장에서 '반사판 형님'으로 불린다. 젊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줘야 영화가 살고, 그래야만 자신도 차기작이 보장된다는 마인드다. 사업 때문에 아직 갚아야 할 빚이 남아있다는 이경영이 마음 다치는 일 없이 오래도록 연기하는 걸 보고 싶다. 안성기 최민식과 더불어 이렇게 멋지게 나이 드는 배우가 국내엔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bskim01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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