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수영] "지친다"는 박태환의 말이 더 미안한 이유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14.09.24 09: 02

한국 마라톤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를 시작으로 희대의 라이벌인 이봉주가 쌍끌이로 이끌던 시절이었다.
고 손기정 선생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후 56년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황영조는 이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 마라톤은 황영조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와 동갑내기인 이봉주가 나타났다.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란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 2연패를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2연패를 한 선수는 이봉주가 유일하다.

이처럼 1990년대 한국 마라톤은 황영조와 이봉주가 함께 끌었다. 집중적인 관심과 투자를 바탕으로 한국 마라톤은 최전성기를 맞았다.
물론 이후 후계자 발굴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한꺼번에 2명의 선수가 세계최고의 자리에 있던 것은 흔치 않다. 특히 기본종목인 육상에서 한국이 세계를 이끈 것은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또다른 기본종목인 수영에서도 세계 최고의 선수가 나타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박태환이다.
박태환은 경기고 재학시절 참가한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다. 당시 박태환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단거리 뿐만 아니라 장거리인 1500m까지 정복했다. 당시 박태환은 대회 최우수선수상(MVP)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에게 아시아 무대는 좁았다. 2007년 호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서는 자유형 400m에서 호주의 수영영웅 해켓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를 바탕으로 4위에서 1위까지 올라섰다.
결국 박태환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자유형 400m 정상에 올랐다. 또 자유형 200m에서는 은메달까지 따내면서 펠프스(미국)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며, 베이징올림픽에서 2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영조처럼 경쟁자가 없던 박태환은 한 때 방황을 하기도 했다. 세계 정상에 올랐던 박태환은 2009 로마 세계선수권에서는 출전 모든 중목에서 결선진출에 실패했다. 무너질 수 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박태환은 홀로 이겨냈다. 화려하게 뒤집었다.
박태환의 후원사였던 SK텔레콤은 세계적 수영지도자 마이클 볼(호주)코치를 전담 지도자로 영입했다. 후원사의 도움으로 박태환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부활에 성공한 박태환은 2011 상하이 세계선수권에서도 400m 1위에 오르며 최고의 자리를 다시 탈환했다.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박태환은 힘에 부친다. 후원사와 계약 종료 후 국민들의 성원으로 훈련을 이어갔다. 또 개인 스폰서는 훈련비 지원을 갑작스럽게 중단하는 등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이겨내면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3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여전히 박태환에게는 힘을 불어 넣어줄 라이벌이 없다. 아니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조차 찾을 수 없다. 그만큼 박태환은 여전히 홀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대회서 유독 부담감이 큰 이유도 분명하다. 자신의 이름이 걸린 수영장에서 경기를 펼치고 모든 사람들이 금메달을 당연시 하는 상황에서 자극을 줄 선수도 없고 후배도 없었다. 그렇게 박태환은 전담팀과 함께 홀로 고군분투 하고 있다. 결국 개인이 일궈낸 상황외에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태환은 23일 자유형 400m에서 쑨양(중국)-하기노 고스케(일본)에 이어 동메달을 따낸 뒤 "개인적으로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힘이 많이 부치는 것 같다. 많은 관중이 경기 뒤 잘했다고 격려를 보냈는데 얘기를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힘이 부치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홀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를 대체할 선수가 없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의 발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외로운 영웅은 이겨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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