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농구] 필리핀 팬들, 어떻게 삼산체육관 점령했을까?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4.09.27 16: 58

“여기가 마닐라야? 인천이야?”
필리핀 농구팬들이 인천을 점령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은 27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벌어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 결선리그 H조 2차전에서 필리핀을 접전 끝에 97-95로 이겼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전에서 필리핀에 패한 통쾌한 복수를 했다. 문태종은 38점을 넣어 수훈갑이 됐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삼산체육관 앞에는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이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단체로 전세버스를 대절해 수 천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현장에 와서 표를 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천인지 마닐라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경기장에서 만난 필리핀 팬 마이클(38)은 “안산에서 일을 하는 엔지니어다. 필리핀 사람들끼리 단체로 휴가를 내고 왔다. 필리핀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입장권 가격에 대해 묻자 “한 달 월급을 줘서라도 왔을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전 국민이 어려서부터 농구를 하고 즐긴다”고 밝혔다.
필리핀 팬이지만 한국어를 읽을 수 있어 한국농구 소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김민구가 작년에 잘했는데 다쳤다고 알고 있다. 김민구가 없으니 한국을 이길 것이다. 안드레이 블라치가 아시안게임에 오지 못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펄쩍 뛰었다.
필리핀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으로 한국은 인천에서 마치 원정 경기를 치르는 불리함을 안고 싸웠다. 한국은 응원전에서 일방적으로 밀렸다. 경기 중 문태종이 자유투를 시도하자 야유가 쏟아졌다. 필리핀 팬들은 국가대표팀을 뜻하는 ‘질라스(Gilas)’를 연호했다. 한국 선수들이 인천에서 기가 죽는 웃지 못 할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3쿼터 막판 한국이 맹추격을 하자 한국 팬들도 ‘대~한민국’을 외치며 힘을 냈다. 결국 한국은 문태종의 막판 대활약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경기 후 문태종은 필리핀 팬들이 더 많았다고 하자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팬들은 티켓이 2-3주 전에 매진돼서 못 왔을 것이다. 우리 가족도 보려고 했는데 오늘 구매해서 왔다. 필리핀 팬들이 정말 많이 왔다. 경기장 분위기는 좋았지만 우리를 응원해주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조직위원회는 인터넷을 통해 입장권을 판매했고, 조기에 매진이 됐다. 하지만 기업에 뿌렸던 표를 다시 현장에서 판매하면서 필리핀 팬들이 대거 들어올 수 있었던 것. 남은 표가 없는 줄 알았던 한국 팬들은 관람을 일찌감치 포기해 현장에 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직위원회는 어떠한 공지도 남기지 않아 또 한 번 미숙한 행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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