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명, "지금이 전성기, 45세까지 최고령 목표"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4.09.30 06: 18

"요즘이 야구를 하며 가장 행복하다".
올해 한화 마운드에서 가장 고생한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안영명(30)이다. 선발·중간·마무리를 넘나들며 팀이 필요로 하면 어떤 상황과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다. 43경기 6승6패4세이브6홀드 평균자책점 4.80. 보여지는 기록 그 이상의 공헌도가 있다. 구원으로 나온 37경기 평균자책점은 3.09에 불과하며 7월 이후 팀의 50경기 중 31경기에 나와 46이닝을 던진 투혼을 발휘했다. 안영명은 "지금이 내게 전성기인 듯하다. 45세까지 최고령 선수를 목표로 던지겠다"고 말했다.
- 올 시즌 거의 끝나 가는데 돌아보면 어떠한가. 

▲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마디로 인생 같았던 한 해였다. 초반에 내 뜻대로 안 되서 2군에서 시작했고, 1군 올라와서 해보려니 (타구에 맞아) 명치뼈가 부러지며 입원했다. 오히려 그때부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고, 마음을 가볍게 먹었다. 자연스럽게 경기가 잘 풀렸고, 위치도 고정적으로 어느 위치를 맡게 됐다. 아주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런대로 잘 수행했던 것 같다.
- 구속이 최고 150km까지 나올 정도로 구위가 좋아졌다.
▲ 주위에서는 서른 초반이 투수에게 최고 전성기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이 내게는 절정기,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체력적으로는 어렸을 때보다 못하지만 투구라는 게 체력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인 부분이 큰데 그 부분에서 많이 안정돼 있다. 나름대로 2년 동안 착실하게 준비한 결과라고 본다. 앞으로 이를 잘 유지하는 것이 과제다. (정민철 코치가 직구 투수라고 정의했다는 것에 대해) 맞는 말씀이다. 직구가 가장 강한 무기이고, 그 무기를 더 자신있게 던지려 한다.
- 7월 이후 안영명-박정진-윤규진 트리오의 활약이 대단했다.
▲ 서로 신뢰를 많이 하고 있다. 연투를 많이 했지만 서로 부담을 나눠가졌다. 스케쥴이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만약 누가 '1이닝밖에 못 던지겠다'고 하면 나머지가 거기에 맞춰 준비한다. 규진이에게도 배우는 것이 있지만 정진이형을 보며 느끼는 것이 많다. 몸도 좋지만 식습관이나 루틴을 체계적으로 철저히 지킨다. 양파즙을 매일 빼놓지 않고 똑같이 드셔야 할 시간에 드시고, 경기 전 준비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 야구를 오래할 수 있는 생활습관에서 배울 게 많다.
- 올해도 그렇지만 선수생활 내내 다양한 보직을 소화했다.
▲ 그 보직에 따라 던지는 스타일이 변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에 맞게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다. 특A급은 활약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별다른 어려움없이 한 것 같다. 어떤 보직이든 다 매력이 있다. 지금 중간을 하고 있는데 정말 매력이 있다. 나가기 싫으면 피곤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정말 나가고 싶어 나가는 것이다. (14일 KIA전에서) 3⅔이닝을 던진 것도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경기 전 식사를 하고 유니폼을 입고 불펜에서 대기하며 등판하는 과정이 행복하다.
- 이제 중고참인데 후배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나.
▲ 내가 고참이긴 해도 훈계는 조심스럽다. 같은 프로 선수이기 때문이다. 내게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는 성심성의껏 얘기해준다.
- 향후 투수진의 리더감이라는 팀 내 평가가 많다.
▲ 정진이형 이후에는 규진와 나밖에 없다. 당연히 그런 책임감은 있어야겠다. 그렇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게 하지는 않을 듯하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은 게 있다. 운동시간에는 잡담이나 말을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규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갓 프로에 들어와 어린 후배들에게는 미리 얘기해주는 편이다. 스스로 컨트롤이 안 돼 팔을 다칠 수도 있다. 나도 그런 고생을 해봐 어린 선수들에게는 애착이 간다.
- 배짱 두둑한 투구 스타일이 구대성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내가 어떻게 감히…. 2006~2007년 당시 내가 중간에서 던지고, 구대성 선배님이 마무리를 하셨다. 다른 것보다 멘탈적으로 대선수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 단계 위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구대성 선배님은 감히 말하지만 무대포 스타일이다. 고민없이 강하게 승부하는 스타일인데 나 역시 그런 것을 선호한다. 본인이 블론을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잘 할 때도 호들갑을 떨지 않으셨다. 나 역시 그런 것을 가까이서 보며 배웠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한다. 구대성 선배님 뿐만 아니라 정민철 코치님께도 선수 시절 함께 섬세한 자기관리 법을 배웠고, 한용덕·송진우 코치님께도 많이 배웠다.
- 타자와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아마추어 때부터 배운 교육이다. 타자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건 있다. 심리적으로 지고 있으면 결과는 타자가 이긴다. 상대 타자가 대선배라도 내 볼을 쉽게 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한다. 타자가 홈런을 치고 미리 손을 드는 건 내 자신에게 용납이 안 된다.
- 어릴적 어떻게 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됐나.
▲ 친형(한화에서 뛴 안영진)이 먼저 야구를 하면서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따라했다. 5학년 때부터 투수였다. 원래부터 방망이를 못 쳤지만 타격에 매력을 별로 못 느꼈다. 다른 선수들은 투수를 하면서도 3~4번을 쳤지만 난 8번 타순도 억지로 쳤다. 난 투수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투수가 최고로 재미있었다.
-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003년 한화에 1차 지명받았다.
▲ 팀이 4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잘했다. 운 좋게 구단에서 1차 지명을 해줬다. 나 역시 연고팀이기 때문에 한화에 오고 싶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 1999년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고 천안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다. 천안 지역의 학생 선수들이 가서 환영의 꽃다발을 전했다. 난 그때 박수만 치고 있었는데 언젠가 한화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생각했다.
- 야구를 하며 최고의 순간과 아쉬웠던 순간이 있는가.
▲ 최고의 순간은 콕 짚을 수 없다. 하루하루 순조롭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최고의 순간을 꼽으면 요즘이 정말 가장 행복하다. 아쉬웠던 순간으로는 2006년 삼성과 한국시리즈 6차전이 기억난다. 그 경기에서 내가 선발로 나갔는데 3점을 주며 이닝을 많이 못 던졌다. 내 실력이 월등해서 더 많은 이닝을 던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고,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그 이후 팀이 계속 하락세라서 더 아쉽다. (향후 팀 비전에 대해) 내년에는 무조건 4강에 들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늦어도 5년 안에는 발전이 될 것이다.
- 안영명에게 한화 이글스란 어떤 의미인가.
▲ 내게 한화 이글스는 신용과 의리다. (2010년 트레이드로) KIA에 다녀온 뒤 그런 생각이 들었다. KIA로 트레이드될 때도 구단에서 '꼭 데려올게'라고 약속했다. 다시 한화로 돌아올 때 구단에서 내게 의리를 지켜줬다. 나 역시 구단이 의리를 지킨 것에 부응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
- 앞으로 야구인생에서 꿈과 목표가 있나.
▲ 최장수 투수가 되는 것이다. 정진이형 옆에서 몸 관리하는 법을 많이 배우고 있다. 최고령이 될 때까지 야구하고 싶다. (역대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는 2009년 한화 투수 송진우과 2014년 LG 투수 류택현으로 만 43세).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일단 45세까지 하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그때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구속 145km 이상 던지고 싶다. 지금 정진이형도 146km 이상 던지지 않나. 요즘 시대가 좋아졌고,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켜주기 때문에 못할 게 없다. 45세가 되어서도 괜찮으면 목표를 올릴 수 있다. 지금 내 나이가 31세인데 앞으로 14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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