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과 노아 그리고 7년 전 영화 ‘아들’ 뒷얘기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0.07 08: 35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아이고, 그럼요. 김 기자님, 당연히 시간 내봐야죠.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희 집 근처로 와주셔도 될까요?”
지난 2007년 4월 중순. 회사 사정상 홍보 일정을 놓친 기자가 밑져야 본전이란 다급한 심정으로 차승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영화 ‘아들’ 개봉을 앞둔 그에게 별도로 인터뷰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는 몰염치한 부탁이었다.
희미하지만 평소 안면이 있던 터라 흔쾌히 오케이 한 차승원과 서울 강남구 고센이란 카페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은 안 하는 조건이라 동네 마실 나오듯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카페에 들어선 차승원과 두 시간 남짓 이런저런 이야기를 곁들이며 영화 ‘아들’에 대한 인터뷰를 했던 게 벌써 7년 전 일이 됐다.

장남 노아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란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영화 주제에서 벗어나 실제 부자지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여느 배우처럼 차승원도 사생활에 대한 질문엔 멋쩍은 웃음으로 일관했고, 그때그때마다 어떻게든 화제를 영화로 돌리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속사정이 감춰져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고, 단지 영화 홍보로만 인터뷰가 채워지길 바라는 눈치로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차승원은 ‘국경의 남쪽’ 흥행 실패 후 유해진과 투톱으로 출연한 코미디 ‘이장과 군수’로 흥행 배우로서 자존심을 회복한 직후였다. 장진 감독의 ‘아들’로 다시 한 번 진지한 정극 연기에 도전하던, 배우로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을 맞던 시기였다.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한 ‘아들’은 24회차, 순제작비 20억 원의 작은 영화였고 불운하게도 같은 날 맞붙은 ‘스파이더맨3’ 때문에 호평에도 불구 많은 관객을 동원하지 못 했다.
‘아들’은 살인죄로 복역하던 무기징역수인 모범수 강식이 단 하루 귀휴를 얻어 사춘기 아들 준석을 만나 부정을 회복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휴먼 드라마. 차승원의 아들로 ‘천하장사 마돈나’의 류덕환이 호흡을 맞췄고, 종영 10분 전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깜짝 반전이 대단한 화제였다.
당시 차승원은 “노아가 극중 아들과 비슷한 나이어서 시나리오를 보며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무조건 참여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소개했고 “노아와 같이 보고 싶은 영화”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영화 팸플릿에는 ‘차승원이 아들 노아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로 표기됐었다.
같은 시기 투병 중이던 장진 감독의 부친도 극중 귀휴를 신청하는 말 못 하는 무기수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고, 류덕환도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치는 영화’라고 밝혀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당시 차승원의 속깊은 의중도 모른 채 단순한 영화 홍보 컨셉상 아들 노아를 언급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기자의 식견이 얼마나 짧았는지 거듭 자책하게 된다.
사실 장진 감독은 이 시나리오를 최민식 한석규 송강호에게 먼저 건넸고 그들이 모두 고사한 뒤에야 ‘박수 칠 때 떠나라’ 이후 허물없이 지내온 차승원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배우로서 자존심 상할 만한 상황임에도 차승원은 별말 없이 “하겠다”고 했고, 감독은 부랴부랴 주인공 연령대를 낮추는 시나리오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날 차승원은 “하물며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영화도 그런 운명적인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면서 “누구한테 먼저 갔다가 거절됐다는 이유로 그 시나리오에 선입견을 갖는 건 배우로서 직무유기이자 창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 영화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자기장 같은 게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저 코미디 배우로만 소비되는 걸 경계한 발언 정도로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이 휴먼 드라마를 통해 노아와 추억을 하나라도 더 쌓고 싶었던 그의 부정이 깊숙하게 밴 말이었다.
비록 흥행 면에선 아쉬움을 남겼지만 ‘아들’에는 주옥같은 대사와 명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5년 만에 만난 어색한 부자가 공중목욕탕에서 잠수한 채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 장면이었다. 거의 대사 없이 서로의 내레이션으로 채워진 영화인데 ‘아들이 무서워하는 내 눈이 싫습니다. 눈을 감으면 좀 나아지려나요? 아무리 씻어도 내 눈이 무서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살인자. 아들은 살인미소라니 그것도 부전자전인가 봅니다’라는 차승원의 독백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고소 사건으로 차승원의 애틋한 가족 스토리가 공개됐지만 온라인에는 그를 지지하는 댓글이 수천 개씩 올라오고 있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 노아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그의 다짐이 부모와 자식을 쉽게 등지는 가족 해체 시대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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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힐'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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