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뺑덕’ CJ와 임필성의 의미 있는 콜라보레이션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0.10 16: 46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작년 임필성 감독이 코미디 영화 ‘주말의 왕자’ 연출을 맡는다고 했을 때 무척 설렜던 기억이 있다. 박해일 송새벽 등 세 어리바리 노총각들이 부산 해운대로 원 나잇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소동극도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코미디를 임필성이 연출한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천재적 재능에 비해 과소평가된 감독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 임필성이 요절복통 섹스 코미디로 모처럼 흥행 감각을 회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기대가 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연 배우까지 패키징 됐던 이 영화는 불운하게도 메이저 투자사의 허들을 넘지 못하고 결국 조용히 엎어지고 말았다. 개런티를 토해낸 배우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제작자와 감독도 한 동안 후유증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임필성이 모처럼 낙담 모드에서 벗어나 재기를 꾀한 작품이 바로 ‘마담 뺑덕’이었다. 고전 ‘심청전’의 심청이 아버지 학규와 뺑덕 어멈의 지독한 사랑을 그린 치정 멜로다. 정우성이 불같은 사랑에 눈이 멀었다가 진짜 시력을 잃게 되는 학규로 나와 아낌없이 벗었다. 감독 역시 ‘헨젤과 그레텔’(07) 이후 7년 만의 복귀작인 만큼 모든 공력을 아끼지 않고 쏟아 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CJ 투자작 ‘마담 뺑덕’은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을 밀어내고 강남 랜드마크인 청담 CGV의 대형 간판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링에 올랐지만 관객의 지갑을 열지는 못 했다. 같은 날 개봉해 빠르게 치고나간 ‘슬로우 비디오’ ‘제보자’의 등만 쳐다봐야 했고 9일까지 38만4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0위에 랭크되는데 그쳤다. 개봉 전 일반인을 상대로 한 블라인드 시사의 평점 2.9점 이후 또 한번의 충격이었다.
 임필성에겐 ‘남극일기’ ‘헨젤과 그레텔’ 이후 또 한 번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야 하는 순간이다. ‘마담 뺑덕’이 많은 대중과 교감하지 못 한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 중 하나로 불친절한 서사가 꼽힌다. 학규와 덕이의 불붙는 사랑까진 좋았지만 8년 후 덕이가 학규 모녀에게 복수하는 과정에 감정 이입하지 못 하겠다는 불평이 많았다. 오죽하면 ‘덕이야 가스 불 관리 못한 네가 엄마를 죽였다’는 실망성 후기까지 등장했을까.
서점가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양서가 아닌 것처럼 관객 몰이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적자 영화가 손가락질 받아선 안 될 것이다. 물론 상업 영화의 1차 목표 지점이 인풋 대비 아웃풋 보장이겠지만 설사 거기에 미치지 못 했더라도 좋은 품질과 감동은 또 다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담 뺑덕’은 비록 대중과 평단에서 수려한 점수를 받지는 못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우성 이솜의 흡입력 있는 연기와 임필성의 예술가적 상상력까지 도매금으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언제부턴가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늘면서 한국 영화가 획일화되고 있는데 임필성을 비롯한 몇몇 감독의 영화는 독특하고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한국 영화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여기에 CJ 같은 대기업이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이런 임필성의 특색 있는 영화에 투자자로 나섰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흥행이 검증된 감독과 배우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승자 독식 세상이 될 뿐 아니라 한두 번 실패를 겪은 이들에겐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강자들만 살아남는 정글의 세계라도 기회 만큼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다만, 임필성 감독에게 몇 가지 바람이 있다. 세 작품 모두 나름의 미덕이 있었지만 관객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일단 궁금하다. 대중들은 FM 수신기를 갖고 있는데 혹시 감독만 AM으로 전파를 송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묻고 싶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취미생활 하듯이 영화를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관객의 니즈에 귀를 열어놓을 용의는 없는지 궁금하다.
하나는 자신을 향한 우호 세력 보다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 좋은 감독이 될 것 같다. ‘마담 뺑덕’을 극찬하는 일부 평론가와 동료 감독,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잠깐 흐뭇해하고 곧장 귀를 씻을 것을 권한다. 건강을 위해선 혀를 즐겁게 하는 당분 보다 고구마 감자 같은 전분이 더 이로운 법이다. 시도 때도 없이 '누가 뭐래도 네가 최고'라며 치켜세우는 사람은 아첨꾼이거나 상대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될 확률이 높다.
이보다는 오히려 ‘영화 볼품없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네티즌 글부터 정독하길 바란다. 당장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겠지만 앞으로 계속 관객의 소중한 돈과 시간을 현명하게 점유하려면 그들의 사소한 불만부터 접수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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