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꿰뚫는 장기하의 '심리학개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0.23 08: 28

[OSEN=박영웅의 Early Bird] 장기하는 말하듯 노래하는 가수다. 외국어 가사를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말 사랑도 각별하다. 해괴망측한 외계어 가사를 남발한다거나, 깃털에 가까운 저속한 유행어에서 해법을 찾지 않는다. 자극적인 MSG를 첨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성을 건드리는 음악. 정규 3집 '사람의 마음'은 인공조미료 없는 천연음악이라 부를만 하다.
“애써 정교하게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처럼, 로큰롤의 전형적인 틀과 흥을 유지하면서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본질을 지킨다. 여기에 외래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노랫말에는 자극적인 포인트 하나 없다. 그저 일상의 소리에서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을 조용히 마음에 저미는 식이다. 억지로 귀에 박히는 후렴구를 배치한다거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애써 감정을 쏟지 않아도 슬픔을 전달할 수 있다. 이건 그들만이 가진 고급기술임이 분명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앨범을 파보자. 초창기 모든 시선이 장기하에 집중됐다면 이번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림을 보여주고자 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덕분에 이 앨범의 테마인 '사람의 마음'을 말하는데 있어 보다 폭넓게 접근이 가능했고 위트있는 표현력은 여전히 듣는 재미의 역할에 충실한다. 물기어린 사운드는 기쁨, 슬픔, 고독, 불안 등 인간의 감정 안에서 교차되며 공감을 산다. 13곡의 수록곡에 심오한 뜻의 노랫말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단어, 말투 하나하나가 더욱 진하게 귀에 박힌다.

그 과정에서 국어책을 읽듯 어눌한 장기하의 창법은 그야말로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제 집에 가자’라며 무심한듯 첫 소리를 내뱉자 마치 옆에서 말하는 듯 하고(‘사람의 마음’), 착하게만 살기엔 바보취급받는 요즘 세상에서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착한 건 착한 거야’라고 주장한다. 내게 헌신적인 사람에게 뭐라도 퍼주고 싶다며 지고지순한 마음을 표현하는가 하면(‘구두쇠’) 이기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타인의 관심을 구걸한다.(‘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이는 마치 SNS에만 집착하며 관심받길 바라는 현대인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건조한 장기하의 보컬은 최고의 가창력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 최적의 가창력임은 분명하다.
인간의 다양한 심리를 겨냥한다. 주목할 점 역시 장기하의 노랫말인데, 모든 곡은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공감을 꿰뚫는다는 점이다. 뭔가 뜨겁게 가슴을 자극하진 않아도 편안하게 공감을 건드린다. 매일밤 라디오 사연 속 사람들의 외로운 퇴근길은 이렇게 힐링송의 주제가 되었고, 외할머니의 모습에서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란 말이 튀어나왔다. 일상의 섬세한 관찰에서 만들어진 곡들이기에 충분히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과장되지 않은 정직함을 머금고 있으니 감정을 그대로 전달함에 있어 흐트러짐이 없다. 그저 소박한 자기고백이다.
지난 20일 JTBC '비정상회담’에서 장기하는 "해외 진출을 포기하더라도 우리말 가사만 쓰고 싶다”고 했다. 분명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에는 우리말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감각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의 바람이 담긴 우리말 음악은 앞으로 이정표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공감이 화두인 시대. 누군가 나서서 혁명적인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그저 함께 고개를 끄덕거리길 원한다. 가만 보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흥얼대거나, 그저 별 일 없이 살고 싶었던 것 뿐이라고 투덜댄다. 그렇게 노래가 말을 한다. 과거 그는 청년실업의 현실을 노래하며 짜릿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됐고, 코믹한 가사와 무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싸구려 커피’를 통해 잉여의 현실을 대변한 그는 청춘의 자화상처럼 인간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기도 했다.
그러한 부담스러울 법한 과거의 모습에서 억지로 타협점을 찾을 필요는 없다. 늘 새로울 수 없고 힘에 부칠 수 있다. 그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들려주면 된다. 이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장기하는 “산울림, 송골매 선배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혁신적인 음악을 하는게 목표”라고 했다. 진정성을 전달하면서도 창의성을 드러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장기하란 캐릭터 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보여줄 팀플레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가요 칼럼니스트]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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