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시스템 야구, 야구판 혁신 일으킨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10.25 06: 13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린 중요한 승부. 경기는 박빙의 리드로 흘러가고 있고 가장 믿을 만한 불펜 투수는 이틀 연투를 했으나 던질 수 있다고 말하는 상황”
감독들이 딜레마에 빠질 법한 상황이다. 불펜 투수들의 3일 연투가 쉽지 않고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현장 지도자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말처럼 칼같이 자르기 어려운 현실도 분명 존재한다. 이에 대한 가정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겠냐는 질문에 김용희 SK 신임 감독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내놨다. “매뉴얼대로 하겠다. 그리고 그 매뉴얼대로라면 등판은 없을 것”이라는 게 답변이었다. 김 감독이 주창한 ‘시스템 야구’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3일 공식 취임식을 갖고 SK의 제 5대 감독으로 임기를 시작한 김용희 감독은 “시스템 야구를 추구하겠다”라는 취임 일성을 남겼다. 사실 감독들의 스타일을 한 기준에 재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편의상 ‘빅볼’과 ‘스몰볼’로 나눠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둘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철저한 매뉴얼대로의 야구, 그리고 그 매뉴얼에 기반한 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철학이다. 생소한 개념이다.

김 감독은 마흔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1군 감독을 경험했다. 참신한 시도를 많이 한 감독으로도 기억된다. 한국프로야구의 벤치에 ‘초시계’를 가장 먼저 도입한 감독이기도 하다. 단순한 감이 아닌, 철저한 데이터로 상대 투수 퀵모션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현장의 원로 지도자들은 “그것이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야구의 시발점이 됐다”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런 김 감독은 시스템 야구의 신봉자다.
감독의 감이 아닌, 그간 쌓아온 데이터와 선수 개개인들의 장·단점을 모두 집대성한 매뉴얼대로의 야구를 펼치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이야기다. 김 감독은 올해 SK의 육성총괄로 재직하면서 4월부터 그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선수의 특성, 그리고 상황에서의 팀 특성 등을 세밀하게 종합했다. 수많은 상황을 가정한 ‘모범답안’이 어느 정도는 나와 있다는 것이 김 감독의 자신감이다.
이렇게 매뉴얼대로 하다보면 감독이 개입할 만한 여지가 줄어 ‘빅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매뉴얼 안의 내용에 따라 언제든지 ‘스몰볼’로도 바뀔 수 있다. 흥미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매뉴얼의 힘은 경기 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훈련 방식, 그리고 선수들의 체력이나 부상 관리도 모두 매뉴얼의 힘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그런 팀의 매뉴얼이 한 번 정착되면 설사 감독이 팀을 떠나더라도 구단의 정체성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SK 구단이 선임 배경으로 설명한 ‘팀 아이덴티티’는 이와 연관이 있다.
물론 그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문제는 분명 아니다. 김 감독도 “보완하고 계속 수정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마무리캠프, 내년 겨울 전지훈련 등을 통해 그 매뉴얼을 가다듬는 작업을 하겠다는 각오다. 팀을 떠나는 선수, 새로 들어오는 선수가 있는 만큼 선수들의 특성 파악도 계속해야 한다. 과제가 산적해있다. 김 감독이 팀 사정을 잘 아는 전임 감독들의 힘을 빌리겠다고 공언한 것도 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 시스템 야구가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그런 야구를 펼치기에는 ‘2년’의 계약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실패를 했다. 더 이상 실패하기는 싫다”라는 김 감독은 자신감이 있다. 자신의 매뉴얼이 틀리다고 입증됐을 경우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도 공개적으로 했다. 반대로 김 감독의 매뉴얼이 정착될 경우 SK는 감독에 관계없이 팀 스타일의 정체성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선도적인 구단이 될 수 있다. 김 감독의 도전은 어떤 식으로 끝을 맺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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