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투혼의 銀' 허준, "AG 결승 패배 뒤 분해서 잠을 못 잤다"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4.10.25 14: 15

2014 인천아시안게임 펜싱 은메달리스트이자 남자 플뢰레 간판인 허준(26, 로러스펜싱클럽)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한남동 로러스 펜싱클럽에서 허준을 만났다. '1등'만을 알아주는 현 사회 풍조 속 허준의 소속팀 로러스가 '허준 은메달 획득 감사의 밤' 행사를 열고 아시안게임 '2등'을 치하했다.
허준은 지난달 열린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과 단체전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선수단에 귀중한 2개의 메달을 안긴 바 있다. 168cm의 신체적인 열세와 부상 등을 딛고 거둔 값진 성과였다.

▲ 잊을 수 없는 인천의 아픔
허준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일주일을 쉬었는데 몸살이 났다. 긴장이 풀린 것 같다. 3일간 많이 아파서 힘들었고, 4일째 되는 날 병원에 하루 입원했다"고 말했다.
허준은 이번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서 부상 투혼을 불살랐다. 진한 감동을 안겼다. 오른 햄스트링으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주사를 맞고 피스트에 섰다. 세계랭킹 1위 마졘페이(중국)에게 13-15으로 석패, 금메달 만큼 값진 은메달을 수확했다.
허준은 "아직도 오른 허벅지가 안좋다. 운동을 그만둬야 좋아지는데 그럴 수 없으니 좋아질 수가 없다(웃음)"면서 "이젠 익숙하다. 테이프도 칭칭 감고, 선수단에서 놔주는 주사를 맞으면 2~3주 정도는 일시적으로 통증이 없다"고 웃어보였다.
아시안게임 결승전 패배의 아픈 기억은 또렷했다.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쳤기에 다 아쉬운 패배였다. "결승서 패한 뒤 잠을 못 잤다. 화가 나고 분해서 잠이 안 오더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니깐 잠을 못 잤다"는 허준은 "단체전도 졌다. 지금까지 운동을 했는데 인천에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먹었다"고 당시 어려운 심경을 고백했다.
168cm의 작은 키. 아시아 정상권에 도달하기까지 부단의 노력이 있었다. "키가 작은 나는 항상 큰 선수를 상대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빠른 스텝과 함께 키 큰 선수들의 칼을 더 많이 견제한다. 바떼라는 쳐내는 기술을 통해 상대를 편하지 않게 한다. 12년 정도 펜싱을 했는데 모든 움직임과 생각을 수만 번은 한 것 같다."
▲ 올림픽을 겨누다
허준은 아시안게임의 아픔을 뒤로 하고 올림픽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허준은 "세계랭킹 16위 이내에 들어가면 예선을 거르고 본선에서 뛸 수 있다. 지금 15위인데 시즌 동안 16위 이내의 랭킹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남자 선수들은 기량이 평준화 돼 있어 64강전부터 쉽지 않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런던올림픽서 단체전에 나서지 못했던 남자 플뢰레 대표팀은 리우에서 함께 피스트에 오를 기회를 얻었다. 허준의 각오도 남다르다. "개인전 보다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개인전 메달을 따도 좋긴 하지만 단체전 메달이 더 기쁘다. 뒤에서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단체전에 나갈 경우 3명 모두 개인전에 뛸 수 있다. 하지만 단체전에 못 나갈 경우 상위랭커 1명만 개인전에 나갈 수 있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런던올림픽 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인 '괴짜검객' 최병철의 존재는 더없이 큰 힘이다. 허준은 "나의 대표팀 첫 입촌 때부터 (병철이) 형이 나갈 때까지 계속 한 방을 썼다. 병철이 형은 나와 단 둘이 술을 마실 때도 펜싱 얘기를 할 정도로 펜싱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조언도 많이 해줬다"고 말했다.
올림픽 메달을 위해서는 이탈리아, 미국, 중국 등 강적을 넘어서야 한다. "나라마다 펜싱 스타일이 다르다"는 허준은 "이탈리아는 움직임이 덜 하지만 타이밍과 손기술이 좋고 점수를 잘 낸다. 미국은 엄청 공격적이다. 중국은 느리지만 리치가 길고 타이밍이 좋다. 일본은 작지만 빠르다. 이탈리아 선수들이 제일 잘하고 껄끄럽다"고 했다.
허준은 "모든 스포츠의 근간이 되는 체력이 좋아야 한다. 키 큰 선수들을 상대하려면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체력 소모가 더 크다. 다른 게 다 없고 체력만 좋아도 반은 먹고 들어갈 것 같다"면서 "난 안 찔린다는 생각으로 피스트에 올라가기 때문에 움직임이 더 많다. 그래서 지금보다 2배 정도 체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고 했다.
▲ 펜싱, 너는 내 운명
허준과 펜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의 펜싱 인생은 중학교 때 시작됐다. "처음엔 공부가 하기 싫었다. 어머님의 권유로 펜싱을 하기 위해 중학교 때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당연히 키가 클 줄 알았다."
대학 시절엔 방황도 했다. 허준은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집안 사정이 안 좋아 여건이 되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4~5개월 동안 이 일 저 일을 하며 방황했다"면서 "온갖 고생을 한 덕분에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 먹을 수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였다"고 철없는 과거를 회상했다.
로러스와 인연도 허준의 펜싱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대학 최강의 기량을 자랑하던 허준은 지난 2012년 로러스와 첫 인연을 맺었다. "로러스 실업팀이 창단된 지 2년 정도 됐다. 다른 팀에 가보진 않았지만 굉장히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는 허준은 "김영호 총감독님과는 삼촌과 같은 사이다. 편안하게 해주신다. 워낙 커리어가 좋으셔서 선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경기력이 향상 되는지 잘 알고 계신다. 대회를 나가도 최대한 부담을 안 주려고 편안하게 해주신다"고 은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다. "대표팀의 중간 나이대다. 내가 잘할수록 후배들의 수준이 올라가고, 30살이 됐을 때 후배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다(웃음). 펜싱 선수의 전성기는 대게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에 가장 많이 온다고 한다. 나도 아직 전성기가 아니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doly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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