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경이로운 신고 선수’ 박해민, 그의 길을 묻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11.04 07: 10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헤르만 헤세의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에 우리는 놓여 있다. 
‘프로야구 선수’ 박해민(24. 삼성 라이온즈)은 벼랑 끝에서 선수 생활의 끈을 다시 쥐었다. 허공에 띄운 ‘희망의 연(鳶)’이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져버렸다. 박해민의 야구 인생은 그렇게 끝날 뻔 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출구를 간신히 찾았다. 그리고 어렵사리 찾아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인 드래프트(선발) 때 지명을 받지 못했던 박해민은 이른바 신고 선수로 벼랑 끝에서 프로야구 선수의 끈을 잡았다. 박해민은 잠깐 그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대학(한양대) 4학년 때 드래프트에 나가는 대학생들 타자 중에서는 타격 성적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 ( .429) 기대를 많이 했다. 도루는 적었지만( 7, 8개) 그 때는 잘 치면 되는 줄 알았다가 막상 지명이 안 되자 암담했다. 그 때는 학교 운동도 안 나가고 침대에 누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부모님 보기도 죄송하고, 많은 기대를 하고 계셨는데 부모님은 티를 안내려고 하셨지만, 몇 년 동안 저만 바라보고 뒷바라지를 해주셨는데 죄송한 마음에 울음이 절로 나왔다. 부모님 연세도 있는데, 동생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어느 정도 저한테 책임도 있는데. 그러다가 삼성에서 오라고 해서 신고 선수로 입단했다. 처음에는 선수층이 두꺼워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프로 선수로서 뭘 해야 할지도 몰랐는데, 코치님들이 수비와 주루에 신경을 쓰라고 해서 준비를 많이 했다.”
예전엔 ‘연습생’으로도 불렸던 ‘신고 선수’는 비정규직이다. 신고 선수에게 내일은 없다. 보장받지 못한, 언제라도 퇴출당할 수 있는 불안한 신분이다. 물론 비록 신고 선수였지만 버젓이 한국 프로야구사에 그 이름이 길이 남을 선수들도 많다. 신고 선수의 원조 격인 장종훈(한화 이글스 코치)을 비롯해 김현수(두산 베어스)가 그 이름을 떨쳤거나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고, 가깝게는 올해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200안타(201안타) 고지에 오른 서건창(넥센 히어로즈)도 있다. 그들이야말로 ‘입지전적인 선수’들이다. 박해민은 고교 선배인 김현수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삼성은 올해 4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 구단에 박해민이 없었더라면 그런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까. 이 대목에선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밝은 눈’을 지닌 류중일 감독과 코치들의 안목을 칭찬해도 좋겠다. 그만큼 박해민의 존재는 도드라졌다. 삼성 타선과 수비에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가 바로 그였다. 서울 영중초, 양천중과 신일고를 거쳐 한양대를 나온 박해민은 박교흠(52), 김석자(46) 씨의 1남1녀 중 맏이다. 아버지가 부동산 중계업과 퀵 서비스 일을 하고 있어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한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야구를 하고 있다. 나이 어린 여동생(해영, 4살)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대견한 오빠이기도 하다. 
박해민은 2012년에 신고 선수로 삼성 구단에 들어갔다. 2년 동안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2013시즌에 단 한 게임, 그것도 대수비로 나간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그의 연봉은 3년째 2400만 원으로 변함없다. 그러다가 올 시즌 주전 중견수자리를 꿰차고 1번, 2번, 6번 타순에 갈마들며 삼성의 정규리그 1위에 큰 힘을 보탰다. 올해 성적은 119경기에 나가 타율 2할9푼7리, 92안타, 2루타 11개, 3루타 4개, 1홈런, 31타점, 36도루로 준수하다. 신인왕 후보로 명함을 당당히 내밀만하다.
그가 말한 대로, “운이 좋았다.” 배영섭이 입대하는 등 외야에 빈자리가 생겼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운으로 돌리는 것은 마뜩치 않다. 박해민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신고 선수는 프로야구 판의 비정규직이다. 그런 불안한 신분으로 출발했다. 하늘의 별따기 같은 삼성 주전으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어깨도 아프고 포기할까도 생각했는데 오른쪽 공 던지는 어깨를 다쳐 신인 때 재활도 3개월하고, 되게 불안했다. 다행히 1년 연장이 됐는데 또 아팠다. 신고 선순데다 아프기까지 하니까 그냥 포기하고 싶었다. 그 때 이한일 재활군 트레이너님께서 ‘한 번만 믿고 재활해보자’고 하셨다. 신고 선순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믿어 주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명이라도 믿어주니까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아프면 안 된다, 좀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아무래도 운이 좋았다. (배)영섭이 형이 군대에 가고, (강)명구 형이 부상당하고...”
(이한일(33) 트레이너는 럭비 선수출신이다. 전도유망한 선수였지만 경희대에서 부상으로 접고 방향을 틀어 전문 트레이너 길을 찾아 대학원까지 다녔다. 신용운 등이 재활군에서 그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 재기에 성공했다. 1군으로 올라간 선수들이 잘 뛸 때마다 그에게 카톡을 보낸다. “형 덕분”이라고. 박해민도 이한일 트레이너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낸다.)
-요즘 상태는.
“연골 판 손상이었는데, 지금은 공을 못 던지거나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다. 하지만 한번 안 좋았기 때문에 조금씩 통증이 있더라도 안고 뛴다. 참을만하다. 아무래도 비시즌 때 아프지 않게 재활을 해서 한 시즌 버텨야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이제 막 발돋움을 했는데, 병역 문제도 고민스럽겠다.  
“군대도 가장 걸리는 부분이긴 한데, 올 시즌이 1년 풀타임 처음이고, 입대문제는 제 생각만 앞세울 수 없으니까 구단과 얘기해보고 구단이 하라는 대로 할 생각이다.”
-올해 기록을 대충 훑어보니, 6월 8일 번트 2루타, 6월 14일 5타수 5안타, 7월 6일 첫 홈런(상대 투수 두산 노경은), 7월 10일 롯데 장원준에게 ‘헤드 샷’을 당하는 등 누가 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여러 기록이 눈에 띄었다. 번트 2루타는 일부러 띄웠다고 했던데.
“번트를 계속하면서 번트를 잘 댄다고 알려져 다른 구단의 압박이 심해져 번트 시도를 줄였다. 그날 김한수 코치님이 띄워서 한 번 시도해보라고 권유하셨다.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는데 마침 공이 높게 날아와 성공한 것이다.”
-5타수 5안타는 물론 처음이겠다.
“아마 때도 없었다. 그날 처음으로 1루수에다가 1번 타자로 나가 부담감이 심했다. 부담감을 가지면 안 좋은 결과가 올 것 같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부터 잘 풀려 결과가 좋았다.”
-홈런은 딱 하나였다. 장타력은 어떤가.
“원래 장타력은 없는 편이다. 고교나 대학 때도 홈런이 별로 없었다. 두산 3연전 때 몸 쪽 승부가 많이 들어와 이번에 당하면 시즌 내내 시달릴 것 같아 3연전이 끝나기 전에 몸 쪽 안타 하나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의식적으로 다리를 빼고 친 것이 좋은 타구로 연결됐다.”
-‘헤드 샷’ 때 장원준이 미안한 표시를 했다. 어땠나.
“야구를 하면서 맞아본 게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놀랐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할 수 있겠다 싶었다. 7회인가여서 경기를 마치려고 생각해 1루로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속도 메스껍고 해서 괜히 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싶어 교체해 달라고 했다.”
-전반기는 좋았는데 후반기에는 어려움 겪었다. 체력이 문제였는가.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되고 어떤 식으로 경기 전, 후에 체력보충을 해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1년을 보냈다.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체력 유지하는지 형들한테 많이 보고 배워야 하겠다.”
-올스타전에 류중일 감독의 추천으로 이례적으로 나갔다.
“첫해부터 올스타전에 나간다는 게 꿈만 같았다. 최고의 선수들만 모이는 자리인데.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추억을 만들었다. 많이 보고 배웠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엔 감독님 추천 아닌 팬들 투표로 나가고 싶다. 동기부여도 생겼다.”
-시즌 중 류 감독이 농담 삼아 한 얘긴 줄은 모르겠지만 우 타자로 시켜보고 싶다고 했는데.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오른손 타자였다가 중학교 때는 왼손으로, 고교 1학년 때는 스위치로 바꾸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팀에 좌 타자가 많고 감독님이 경험이 있어서 시켜본다고 하니까 일단 해보고 나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저의 장점은 빠른 발과 번트, 이런 건데 잔기술을 포기해야한다는 점에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오른손으로 해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재미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음식은.
“일 년 차 풀타임이어서 체력 문제를 생각해 많이 챙겨먹으려고 했다. 원래 채소 같은 걸 안 좋아했지만 체력에 도움이 된다면 이것저것 챙겨먹으려고 한다.”
-A형이던데, 성격은 어떤가.
“많이 내성적이다. 낯도 가리고 친하지 않으면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성격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나가 안 되면 이게 왜 안 되는지, 나 자신을 피곤하게 한다. 아직 확실한 주전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체력이 떨어져 주루 플레이나 수비에서도 실수도 나왔다. 타격은 사이클이 있지만 수비는 실수가 나오면 안 되는데 불만족스러웠다. 
완벽하게 하려고 제 자신을 괴롭히는 성격이다. 왜 안 되나, 늘 고민한다. 머릿속 생각도 많고. 단순해졌으면 좋겠는데. ‘이게 안 될 때는 다른 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하는 방법이나 해결책을 아직 잘 모르다 보니까. 저보다 경험 많은 선배들이나 형들한테 배워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신인왕에 대한 의식을 안 할 수가 없겠다. 
“박민우(NC 다이노스)가 앞서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 1군에서의 목표는 신인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은 안하지만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여서 욕심이 나기도 한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
이제 박해민은 난생 처음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 서게 됐다. 그로선 처음 겪는, 색다른 도전무대이다. 박해민의 활약여부에 따라 삼성의 한국시리즈 4연패로 가는 길이 순탄하게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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