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차 아슬란, “그랜저 형이라기 보단, 제네시스 아우”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4.11.05 07: 41

“왜 태어났을까?”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11월 4일 현대자동차 아슬란의 테스트 드라이브를 위해 파주 출판단지에 모인 사람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은 아슬란의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느라 바빴고 시승에 참가한 미디어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누누이 ‘다이너스티’ 이후 희귀해진 고급 전륜 세단의 수요가 시장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현대차의 플래그십 모델인 제네시스가 안락한 주행성에 초점을 둔 후륜구동 세단 영역을 맡고 있고, 그랜저가 럭셔리 세단의 엔트리 모델 구실을 담당하면, 정숙성이 강조 된 전륜구동 세단의 영역을 아슬란이 맡겠다는 계산이다. 가격대도 그랜저와 제니시스 사이에서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다. 제네시스 3.3 RWD가 4660만원에서 시작하고, 그랜저 2.4가 3024만 원인데 아슬란 G300이 3990만원이다.

시승행사에 참가한 김상대 현대자동차 국내 마케팅실장(이사)은 “독일계 고성능 스포츠 차량을 즐기고 있는 운전자들이 많아졌지만 디젤 엔진 특유의 열화 현상과 우리나라 지형에서 단점이 두드러지는 후륜구동에 대한 피로감이 몰려 올 시점이 됐다. 수입차 시장에도 전륜구동 차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전륜구동 시장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슬란이 어떤 특성을 지닌 차인 지에 대한 설명보다 아슬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차에 대한 ‘존재 자체의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일 터. 어쨌거나 제네시스와 그랜저 사이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이제부터 이 곳이 내 자리야’라고 외치는 형국이 ‘아슬란’의 입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차체 크기만 보면 아슬란은 그랜저에 가깝다. 전장 4970mm, 전폭 1860mm, 전고 1470mm, 축간거리 2845mm로 그랜저의 4920, 1860, 1470, 2845mm와 흡사하다. 아슬란이 전장만 50mm 길 뿐이다. 이에 비해 제네시스는 4990, 1890, 1480, 3010mm로 확실히 크다.
그러나 아슬란이 그랜저를 떠올리는 범위는 여기까지다. 일단 운전석에 앉고 나서부터는 모든 것이 제네시스를 기반으로 연상이 된다. 그랜저의 형이라는 생각보다는 제네시스의 아우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인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을 적용한 아슬란은 디자인에서의 개성은 별로 내세울 게 없다. 크기나 생김새는 그랜저를 좀더 세련 되게 정제했다는 느낌 정도다.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은 신형 제네시스와 쏘나타에 이어 아슬란이 세 번째로 적용 된 모델이지만 제네시스-쏘나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탓에 디자인이 쉬 질리지는 않을 법하다.
시승 코스가 긴 편은 아니었다. 파주출판단지 인근 롯데아울렛 야외 주차장을 출발해 제2자유로 송산IC 법곳IC-자유로 이산포IC-자유로-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을 왕복하는 43km 구간이었다. 공차 중량이 늘어나면서 애처로운 지경이 된 연비(공인 복합연비 9.5km/l)를 실측하기에는 짧은 편이었다. 공차 중량은 그랜저 3.0이 1590kg인데 비해 아슬란 3.0GDi는 1670kg이다. 무려 80kg이 늘었다. 별 수없이 연비도 ‘제네시스급’으로 떨어졌다. 대개의 시승차량이 그렇듯이 아슬란의 계기판에 표시 된 연비도 공인 복합연비를 하회하는 수준이었다.
출발 시 차량을 둘러싼 주변부를 8인치 모니터에 한눈에 보여주는 어라운드뷰는 아슬란에서도 훌륭한 조수 구실을 했다. 방향지시등 조작 없이 차선을 넘어갈 때 스티어링 휠에 진동이 전해지는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LDWS)도 운전자의 마음을 한층 느긋하게 했다.
시속 80~120km 실용 속도 구간에서 아슬란이 주는 정숙성은 매우 뛰어났다. 현대차 관계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정숙성’을 강조한 이유를 알만했다. 시승 구간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목소리가 산사의 불경소리처럼 낭랑하게 들릴 정도였다. 이중접합 차음유리와 12개의 고성능 스피커를 가동시키는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고 있었다.
그랜저에 비해 공차 중량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은 하체가 보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결 딴딴해진 하체를 바탕으로 부드럽게 전개되는 움직임은 고급 세단의 자격을 논할만했다. 후륜구동의 제네시스가 주는, 대양을 바람에 미끄러지듯 달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운전자에게 안락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고속 주행에서는 얘기가 달라졌다. 노멀, 에코, 스포츠의 3가지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는 탓에 스포츠 모드를 가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만나 볼 일이 없는 초고속 주행을 시도하자 현대차가 자랑하던 정숙성은 한계를 드러냈다. 제네시스와의 차이는 이 구간에서 좀더 분명해졌다.
현실 운전에서는 아슬란이 애초에 스포츠 세단으로 개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듯했다. 한계 범위 내에서의 아슬란은 자신의 위치에 나무랄 데 없이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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