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 주연 ‘강남 1970’, 작전상 후퇴가 신의 한 수?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1.17 07: 30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이달 말 개봉키로 했던 이민호 김래원 주연 ‘강남 1970’(유하 감독)이 돌연 개봉을 내년 1월로 미뤘다. 내부수리를 거쳐 좀 더 산뜻하게 손님을 맞겠다는데 이의를 제기해선 곤란하다. 하지만 일찌감치 쇼박스의 12월 텐트 폴 영화로 소개된 마당에 출전 선수 명단에서 스스로 이름을 뺐다면 뭔가 말 못할 속내가 있을 수 있다.
‘안정적 관객 수요가 있는 1월 성수기를 위해서’라는 쇼박스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이들은 별로 없다. 이는 마치 처음 간 식당에서 ‘이집 뭐가 맛있어요?’라고 묻는 것과 흡사하다. 백이면 백 식당 주인은 ‘손님, 저희는 다 맛있어요’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 뭔가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거나 피치 못할 이유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더군다나 제작발표회를 나흘 앞두고 이를 취소하며 개봉을 연기한 ‘우왕좌왕’ 사례가 흔치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편집실을 비롯해 ‘강남 1970’의 후반작업 업체에서 흘러나온 개봉 지연 사유를 들어보면 대략 몇 가지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일단 등급과 관련한 영화의 폭력성과 잔인함 수위다. 1970년대 청와대와 안기부의 정치 자금 조성을 위해 정권과 토건 세력의 강남 건설 붐을 소재로 한 영화다보니 주요 인물로 철거 용역 깡패가 나오는데 이들의 폭력성이 감독의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나 ‘비열한 거리’ 보다 세다는 거다.

영등위로부터 청불 판정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자 쇼박스가 장고 끝에 12월 시장에서 발을 뺐다는 말이 가장 먼저 돌았다. 황금어장인 겨울 시즌 영화를 청불로 가져간다는 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감행하기 어려운 셈법이니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장 12세와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낸 CJ와 NEW의 경쟁작 ‘국제시장’ ‘빅매치’와 심의를 앞둔 ‘상의원’ ‘기술자들’과 견줘 봐도 불리한 싸움이 될 게 명약관화하다. 결국 ‘청불로 가기 위해선 12월 시장을 피한다’로 의견이 모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희박하지만 드라마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재편집을 거쳐 15세로 등급을 낮춰 개봉할 여지도 없진 않다.
또 한편으로 쇼박스의 현 재정 상태와 연결 짓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대를 밑돈 ‘군도’를 비롯해 올해 쇼박스의 흥행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게 사실. 올해 불가피하게 적자가 예상되는데 굳이 흥행이 불투명한 ‘강남 1970’을 연말에 붙여 적자 폭을 키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철저하게 결과로 평가받는 임원들 입장에선 자리를 걸어야 하는 타이밍일 텐데 그들이 무리수를 둘 이유가 전혀 없다는 관측이다.
쇼박스 간부들은 2년 전 여름 ‘도둑들’로 크게 웃은 뒤 ‘미스터 고’ ‘군도’로 2년 연속 여름 시장에서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부진한 성적표 보다 더 문제가 됐던 건 개봉 전 두 작품 모두 1000만 동원이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다가 ‘간부로서 직관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내부 평가를 2년 내리 받았다는 점이다. ‘군도’의 경우 최종 편집을 앞두고 내레이션 등 감독을 설득하지 못한 점도 윗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말이 나왔다.
조심스럽게 이민호의 티케팅 파워도 연기 사유로 거론된다. 그의 한류 이미지 덕분에 '강남 1970'이 아시아 11개국에 선 판매 됐을 만큼 좋은 배우임엔 틀림없지만, 12월 시장에서 황정민 이정재 이성민 한석규 등과 겨루기에는 여러모로 체급이 달린다는 지적이 나왔을 게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선 아직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도 쇼박스의 ‘작전상 후퇴’를 결정하는데 판단 근거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민호는 그간 신중을 기하다 본의 아니게 좋은 작품을 여러 편 놓쳤는데 남자 배우를 잘 만들어내는 유하 감독을 통해 신뢰감 갖춘 배우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로 이 작품을 택했다.
무엇보다 멀티플렉스가 없는 배급사다 보니 센 영화들이 한 숨 돌리는 1월에 치고 들어가 극장을 확보하겠다는 밑그림도 작용했을 것이다. 암암리에 CGV가 ‘국제시장’을 밀고, 롯데시네마가 ‘기술자들’에 우호적으로 관을 내줄 것이므로 이들 영화 중 누군가 삐끗하길 기다렸다가 그 틈을 파고들겠다는 전략이다.
영화계에는 오래 전부터 '가장 좋은 마케팅은 본편 그 자체'라는 말이 있다. 영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거나 기대치를 뛰어넘으면 용쓰지 않아도 저절로 입소문이 나게 돼있다는 얘기다. 과연 ‘강남 1970’이 여러 핸디캡을 딛고 2015년 벽두에 크고 의미 있는 울림을 자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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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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