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빌려 드립니다’, 폼 잡지 않고 웃기는 난방영화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1.17 08: 59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아내에게 구박받는 10년차 백수 아빠를 딱하게 여긴 초등학생 딸 아영(최다인)은 교내 아나바다 행사에 아빠를 매물로 내놓으며 교실을 발칵 뒤집는다. 이도 모자라 중고 거래 사이트에까지 아빠 전화번호를 공개해 아빠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재취업 의사가 없는 명문대 출신 아빠를 어떻게든 바쁘고 요긴한 사람으로 만들어보려는 딸의 황당하면서도 깜찍한 동심이다.
 장난으로 벌인 이 프로젝트는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콜을 받으며 사업이 번창할 조짐을 보인다. 왕따 피해 학생과 가족 몰래 출산을 앞둔 미혼모 등 아빠의 손길이 절실한 소외된 이들로부터 협조 의뢰를 받기 시작한 것. 이 과정에서 태만(김상경)은 평소 흠모하던 홈쇼핑 쇼호스트 미연(채정안)의 집안일을 돕게 되면서 아빠 렌털 사업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아빠의 구두축이 닳기 시작할 무렵, 이들 부녀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하나둘 찾아든다. 가족을 먹여살린 엄마의 미용실이 월세 탓에 폐업 위기에 몰리고, 자칫 아빠를 친구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아영의 불안함이 더해지며 세 식구가 사는 평온한 연립주택에 불길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촬영을 마치고 반 년 넘도록 개봉 일을 잡지 못한 ‘아빠를 빌려 드립니다’(김덕수 감독)는 만듦새가 뛰어나거나 배우들의 명연기가 번쩍이는 무시무시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지루할 틈 주지 않는 잘 정돈된 기승전결과 애써 폼 잡지 않는 소박함이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 남는다. 10년간 씨네월드 이준익과 감독의 집 김상진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연출자답게 영화 곳곳에 해피 바이러스와 흐뭇한 웃음이 잘 버무려져 있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부부 김상경 문정희를 축으로,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주변 인물을 배치해 영화적 온기를 높인 건 이 영화의 미덕. 태만의 친구이자 사업파트너인 승일(조재윤)과 태만의 욕쟁이 진상 고객 보미(방민아)의 러브 라인도 무리수가 아닐까 싶었지만 둘의 천연덕스런 케미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채정안마저 극중 발 연기 때문에 중도 하차한 전력이 소개될 땐 왠지 셀프 디스처럼 여겨져 적잖은 웃음을 유발했다.
 이 영화가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선전한다면 절반은 아역 최다인의 공로일 것이다. 애어른 같은 훈련을 통한 기계적인 연기가 아닌 역할과 하나된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연기가 빛났다. 연기력 출중한 아역이 늘고 있지만 최다인은 그중 가장 큰 동그라미를 받을 만한 자질이 충분했다. 영화는 처음이지만 이미 드라마 ‘결혼의 여신’(13) ‘너라서 좋아’(13) ‘아내의 자격’(12)에서 어른 시청자를 울리고 웃긴 아역이다.
특히 바빠진 아빠가 한편으론 좋지만 자신을 향한 관심과 애정도가 떨어지자 예전 아빠를 그리워하며 자신을 원망하는 대목에선 감정 연기가 기대 이상이었다. 현장 컨트롤이 어려워 아역과 동물 나오는 영화를 기피하게 마련인데 감독이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 등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잘 활용했다는 인상이다.
작년 전북 익산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홍부용 작가의 동명 소설을 비튼 작품. 서민들의 생활고를 따스한 시선으로 디테일하게 그릴 수 있었던 건 감독 역시 경제적 어려움 탓에 한동안 영화를 떠나 뮤직비디오와 광고 촬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던 경험 때문이다. ‘추격자’ ‘써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대목에선 감독의 재치가 느껴졌지만 양자택일하지 않은 건 창작자로서의 노고를 의심케 하는 과욕이었다. 12세 이상 관람가로 이달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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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빌려 드립니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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