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매치', 제2의 전성기 이정재를 위한 액션극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1.25 07: 30

‘빅매치’ 시각적 쾌감 못 따라간 낯 가림 심한 드라마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전직 프로 축구선수 익호(이정재)는 상대팀 선수 11명을 그라운드에서 때려눕힌 죄로 영구 퇴출당한다. 축구계에서 쫓겨난 익호에게 명함을 건넨 건 다름 아닌 이종격투기. 프로모터인 친형 영호(이성민)의 체계적인 관리와 트레이닝 덕분에 차츰 부와 명성을 손에 쥘 무렵 익호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 누명을 쓰고 납치된 형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게임의 먹잇감으로 초대된 것.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철창 속 투견처럼 주어진 미션을 하나씩 완수해내지만 그럴수록 놈은 형을 악의 소굴에서 꺼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맷집 강한 익호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아드레날린 분비가 최고조에 다다를 무렵, 놈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며 익호의 분노 게이지를 높인다.

‘빅매치’는 ‘도둑들’로 바닥을 찍고 ‘신세계’ ‘관상’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정재를 위한, 이정재가 주도하는 액션극이다. 아무리 주연이라도 영화가 이렇게 한 사람에게 의지해도 되나 싶지만, 이정재의 넘치는 자신감이 마치 ‘다 덤벼’라고 외치는 것처럼 모든 장면을 잡아먹어 버렸다. 이 같은 왕성한 배우의 소화력과 장악은 ‘빅매치’의 가장 큰 장점이 됐다.
도입부 경찰서 유치장에서 보여주는 이정재의 고난이도 액션은 이 영화가 앞으로 어디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를 잘 암시한다. ‘놀라지들 말고 안전벨트 단단히 매라’는 감독의 애피타이저는 중반부로 치달을수록 현란하고 빠르게 편집된 화면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이정재의 도심 액션은 아크로바틱과 비보잉을 보는 것처럼 시각적 쾌감이 기대 이상이다.
이정재가 쉬지 않고 불을 붙이는 화염방사기라면 여기에 휘발유를 들이붓는 이는 신하균이다. 기이한 음역대로 캐릭터를 잡고 악의 화신 에이스로 나와 안타고니스트 연기의 모범을 보여줬다. 소수 갑부들을 상대로 한 VVIP 게임의 연출자 겸 지휘자인 그는 흐름이 느슨해질 때마다 나타나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활력을 담당한다. 이죽거리며 곤경에 처한 익호의 승부욕을 자극할 때나 수십억 커미션을 챙길 생각에 들뜬 표정 연기는 조금 과장해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빅매치’의 미덕은 두 배우의 스파크 외에 더 이상 감지되지 않는다. 익호와 에이스가 접선하는 방식이야 웃어넘긴다 해도, 개연성 떨어지는 빈약한 드라마가 갈 길 바쁜 영화의 발목을 단단히 잡는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수록 주인공이 처한 위기와 활약이 잘 맞물리며 카타르시스를 자아내야 함에도 어느 순간부터 같은 구간만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극적 긴장감의 하강은 허술한 드라마가 감내해야 하는 혹독한 대가다.
에이스의 하수인으로 익호에게 접근한 수경(권보아)의 불분명한 캐릭터도 영화를 살리는 불쏘시개가 되지 못 했다. 불우한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신하균의 조력자가 됐고, 뜻한 바 있어 그를 배신하고 익호를 돕지만 지나치게 전형적인 틀에 갇힌 인물이다 보니 생동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경이 위기에 몰린 익호를 구할 때마다 통쾌한 반전 보다 ‘왜 저래’ 같은 뜬금없음을 느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캐릭터가 밋밋하다 보니 스크린에 데뷔한 보아의 연기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 담배 피우고 침을 뱉는다고 해서 꼭 불량스럽고 연민을 자아내는 연기가 되는 게 아님에도 감독이 왜 저런 디렉션만 줬을까 궁금했다.차라리 ‘도둑들’ 예니콜처럼 속물의 코믹함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지능범으로 가든가, 아니면 아예 시종일관 우울한 잿빛 소녀로 그리든가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보통 촬영 기간 동안 10명 미만의 스태프가 현장을 이탈하는 일은 흔하지만, 절반이 넘는 스태프들이 짐을 쌌을 만큼 현장의 작업 강도가 세고 고달팠다는 후문이다. 26일 개봉.
[언론인, 칼럼니스트]bskim0129@gmail.com
영화 '빅매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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