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정 “하루에게 난 아직 전지전능한 존재”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4.12.23 11: 51

이젠 전 국민들에게 ‘하루 엄마’라는 수식어로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배우 강혜정. 영화 ‘올드보이’ 속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소녀 ‘미도’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래퍼 타블로의 아내이자 하루의 엄마 강혜정의 모습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고 일견 색달랐지만, 낯설지 않았다. 하루의 엄마로서 때로는 친구처럼, 언니처럼 딸을 돌보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꾸밈없는 강혜정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강혜정이 ‘엄마’ 역할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김성호 감독)에서 지소(이레 분)의 엄마 정현 역이다. 정현은 집을 나간 남편 대신 가장이 돼 매번 어린 딸에게 당하기 일쑤인 철부지 엄마다. 철부지 엄마라 해도 엄마는 엄마. 아직 한창인 여배우인데, 연달아 ‘엄마’ 이미지가 생기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그러나 강혜정은 오히려 엄마 역할을 기다려왔다고 했다. 사실 ‘엄마’ 역할을 맡은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저는 숨기고 가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케이스에요, 소위 ‘아이를 낳은 여배우’라면 미혼인 것처럼 굴어야 하고, 그래야 작품 선택의 스펙트럼도 넓어진다는 전제를 들어요. 그래서 ‘아기 엄마’, ‘아줌마’ 이미지를 부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있어요. 굉장히 공감해요. 그런데 제 기질이 그게 안 돼요. 전 이게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누구 엄마 역할을 하는 것도 좋고, 나 본연의 모습으로 나와서 누구 엄마, 누구 아내를 떠나 강혜정만을 가지고 판단되는 그런 영화들도 좋고요. 잘 보이기 위해 범주를 축소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강혜정은 여전히 앳되고 소녀 같다. 동안 중에 동안이다.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개리(극 중 등장하는 개의 이름)가 제일 잘 했다”며 두 손을 모은 채 커다란 눈을 반짝이는 천진난만한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한 두 사람의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는 일종의 멀티-캐스팅 영화라 할 수 있다. 핵심이 되는 아이들과 개, 이들을 둘러싼 어른들 김혜자, 최민수, 이천희의 캐릭터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강혜정은 자신의 비중이 다른 영화에서보다 적다는 점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저는 주연을 별로 안 좋아해요. 부담스럽거든요. 망하면 나 때문에 망하는 거 같고, 꼭 상을 받아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최동훈 감독님 영화처럼 여러 배우가 비중을 갖고 있는 작품이 좋더라고요. 주연이 싫다는 건 아니에요.(웃음) 다만 주-조연을 가리고 싶지 않아요. 사실 그건 재미없는 일이에요. 지소 엄마 역할도 마찬가지에요. 주연이 아니라고 매력적인 역할을 거부할 수 없죠.”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의미를 설명하는 강혜정의 말에서는 영화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배어 나왔다.
“아이들 영화를 본 적이 있으세요? 전 없어요.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작품이죠. 이 작품은 이런 작품에 투자를 해주고 만들 수 있는 제작여건이 감사한 영화에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코드들이 있어요. 그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다가 아이를 여기서 그저 소비되게 하지 않고 굉장히 잘 그려냈죠. 어른들 캐릭터가 서포트를 잘 해주면 잘 살아날 것이라는 그림이 보이더라고요. 감동적이다 싶었어요.”
영화 속 엄마 정현과 ‘하루 엄마’ 강혜정은 다르다. 같은 인물에 의해 표현되는 엄마임에도 이처럼 다를 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
“극 중 지소가 10살이에요. 10살 아이들은 엄마들이 걔네를 못 이겨서 말싸움을 하면 진대요. 우리 하루도 그렇게 될까요? 물어보니, 저도 몇 년 안 남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는대요.(웃음) 지금은 10살 구들을 상대로 정체성 무시하는 발언을 했을 때, 감당이 안 된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주의를 하고 있긴 한데. 사실, 저는 하루한테 가까운 사이처럼 잘 지내고 싶어요. 그렇게 ‘케어’함과 동시에 하루한테 좋은 선배이고 싶어요. 인생의 선배. 그에 반해 정현이라는 캐릭터는 지소, 지석이와 그저 불어 살아가요. 철이 없어요, 이 양반이. 아마 그전에도 지소한테 매일 당하고 살았을 거예요. 이만큼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 크게 문제가 없었던 것뿐이죠. 극단적 상황이 되니까 ‘요리한 번 안 한 엄마’서부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엄마라는 말이 나왔죠. 그래도 저는 아직 우리 하루한테 전지전능한 존재니까요. 그 점이 정현이와는 많이 다르죠.”
행복한 아내이자, 엄마는 이런 걸까? 강혜정은 이제 타블로-하루와 떼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자연히,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영화가 나온 후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해질 밖에. 부녀는 엄마의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강혜정은 “하루가 어떨지 모르겠다. 반신반의다”라고 말했다.
“하루가 아빠 일하는 모습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요. 그런데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 친구 마음속에 들어가 읽은 건 아니라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빼앗겼다’는 기분이 드는 거 같아요. TV에 나오면 우리 엄마 아니라고 돌리라고 하고요. 당황스럽긴 했지만 제 생애 누가 날 질투해주는 건 좋지 않아요? 특히 상습적으로 질투를 하지 않는 캐릭터가 질투해주니까요. 하루가 얼마 전에 그러더라고요. ‘하루는 커서 엄마 같은 일을 할 거야.’ 연기를 하고 싶어 하다기 보단 저랑 같이 다니려고 그런 거였어요.(웃음)”
강혜정은 여배우들이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다는 점, 기혼의 여배우들이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마음껏 활동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세상이 많이 변하기도 한 것 같아요. 다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활동을 해요. 예전에는 김성령 선배님이나, 차화연 선배님처럼 공백기 가져야 다시 받아주는 게 이해가 안 됐고 너무 아까웠어요. 만약 선배님들이 본인의 의지로 가정을 ‘케어’하고 싶어 쉰 게 아니라 연기를 하고 싶어도 못하고 계신 시간이 많았던 거라면 너무 안타까워요. 물론 지금도 그런 배우들이 많겠죠. 그렇지만 연기자는 연기로 사는 거잖아요. 모른척하고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사람을 죽여 봐서 살인자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애를 낳아봐서 애 엄마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요즘엔 ‘미스’도 엄마로 많이 나오는데 굳이 그런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혜정은 현재 동료 배우 공효진과 함께 연극 ‘리타’의 더블 캐스팅으로 활약 중이다. 내년 초까지는 연극에 매진한다는 계획. 엄마 역이든 엄마 역이 아니든, 선입견 없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배우로서의 길을 가겠다는 게 강혜정의 마음이었다.
“딱 하나 불편한 건요. 닭살스러운 그런 건 못하겠어요. 그런 걸 잘하는 배우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표현이 안 되는데 ‘초 여성스러운’ 멜로 여신들? 같은 건 어려운 거 같아요. 제가 해낼 수 있는 멜로는 ‘연애의 목적’의 홍 같은 멜로인 것 같아요. 저는 독특한 건 갖다 붙이면 잘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뭐든 주시면 다 잘하죠.’ 라고 써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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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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