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 아시안컵은 브라질WC '힐링캠프'였다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5.02.01 06: 18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55년 만의 우승이 무산됐어도 슈틸리케호의 첫 국제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31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서 열린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전 호주와 경기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1-2로 석패했다. 1988년 대회 이후 27년 만에 결승 무대에 진출한 한국은 이날 패배로 1960년 우승 이후 55년 만의 아시아 정상 도전이 좌절됐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동안 아시아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해야했던 한국으로서는 아쉬운 결과다. 그러나 결과는 뒤로 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면 패배라는 무거운 이름 뒤에 싹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회복, 응원보다 실망이 컸던 팬심에 불어넣은 활기, 갖은 악재를 넘어선 끈질긴 '투혼'의 부활이 특히 그랬다.

지난해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8년 만의 16강 좌절이라는 결과보다 더 심한 내상을 입고 돌아왔다. '의리 논란' 속에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졸전을 펼쳤다. 선수들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고, 팬들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과정도, 결과도 좋지 못했기에 브라질월드컵의 기억은 한국 축구에 악몽처럼 남았다.
슈틸리케호의 아시안컵은 그런 의미에서 브라질월드컵의 상처를 씻어주는 '힐링캠프'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상주 상무의 '군데렐라' 이정협을 발탁하고, 서드 골키퍼였던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을 주전으로 적극 기용한 슈틸리케 감독은 "이기든 지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는 발언으로 불안을 잠재웠다.
대회 초반,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상대인 오만과 쿠웨이트를 압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진한 경기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조별리그에서 팀의 주축인 이청용(볼튼)과 구자철(마인츠)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악재가 겹치는 가운데서도 슈틸리케호는 흔들림이 없었고, 대회 무실점 5연승을 달리며 1988년 대회 이후 27년 만의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결승전에서 석패하며 호주에 우승컵을 넘겨줬으나, 부상자들의 공백을 메우며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의 모습에 팬심도 돌아왔다. 팬들은 뜨거운 박수와 격려로 슈틸리케호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55년 만의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선수들의 자신감도 한층 단단해졌다. "4년 전 3위, 이번에 2위를 했으니 다음에는 꼭 1위를 하겠다"는 기성용(스완지 시티)의 말처럼, '힐링캠프'를 성공적으로 마친 슈틸리케호는 미래를 향한 본격적인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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