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예능이 쉽게 만드는 것 같지? [김PD의 제작노트]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2.26 09: 28

[OSEN=편집자 주] 목요일 심야 예능 시청률 1위인 SBS ‘백년손님’은 사위와 장모가 함께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현재 남재현, 이만기, 정성호, 이철민 등이 출연하고 있고, 막강한 재미를 뽐내고 있죠. ‘백년손님’의 막내 PD인 김명하 PD 역시 결혼 4개월차에 접어든 ‘신입 사위’입니다. 제작진으로서, 그리고 이제 막 ‘처월드’를 경험하는 유부남으로서 살짝 공개하는 김명하 PD의 좌충우돌 제작 일지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편은 ‘백년손님’의 인기 비결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고, 이번에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 비화가 듬뿍 담겨 있습니다. 김 PD가 말해주는 ‘백년손님’ 카메라 밖 1mm는 소소한 웃음이 녹아 있습니다.
얼마 전 설이 지났다. 사위로서 처음 맞는 명절이었는데, 남의 사위들 처가 가는 프로그램 만든답시고 정작 내 처가에는 인사드리러 가지 못했다. 전화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니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괘념치 마라’ 하셨는데, 뭐랄까, 처가에 갔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는 또 다른 불편함을 느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전 국민이 다 쉬는 명절에도 나는 사위 도리도 못하며 일을 했어야 하는 걸까? 내가 뭘 하고 사는지 스스로 되짚어 보기 위해, 오늘은 짧게나마 ‘백년손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적어보려 한다.
1. 회의; 스무 명이 모여, 웃기고 자빠졌다

숫자와 그래프, 상사의 코멘트(라 쓰고 잔소리라 읽는다)로 이뤄졌던 전 직장에서의 딱딱한 회의와 달리, 여기서는 ‘사람들을 웃기려고’ 회의를 한다. 이춘자 할머니가 뭘 좋아하는지, 이만기 아저씨가 뭘 해야 즐거워할지에 대해, 스무 명이 골방에 갇혀(?) 짧으면 3시간, 길면 8시간씩 얘기를 하는 거다. 밤이 깊어질수록 헛소리와 뻘소리(?)의 비중도 늘어난다. 하지만 그 헛소리도 쉬이 넘길 수가 없다. 농담으로 던진 한마디가 곧바로 다음 주 촬영 아이템이 되기도 하는 게 예삿일이니까. 회의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나오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울 만한 것’을 찾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않으면 아무리 웃겨도 과감하게 버린다. 요즘 시청자들은 ‘진짜’가 아니면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니까. 그리고, 진짜가 아니면 이춘자 할머니가 ‘걍’ 안 하시니까.’
2. 촬영; 은밀하게 위대하게
열심히 회의한 내용을 가지고 울진으로, 포항으로 촬영을 간다. 기본이 편도 5시간이다.(목동 SBS 본사에서 인천공항을 통해 홍콩까지 가는데도 5시간이면 된다던데...) 도착하면 집안 곳곳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리고는, PD고 작가고 다 함께 마당 한 켠이나 창고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는다. ‘백년손님’ 촬영의 가장 큰 특징은 ‘지켜보기’이다. PD와 작가가 현장에서 하는 일은 상황을 꼼꼼히 지켜보면서 큰 흐름을 잡는 것뿐이다.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하는 ‘디렉션’을 최소화 하자는 것이 메인PD의 원칙이기 때문이다.(사실 더 큰 이유는, 설사 디렉션을 준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데 있다.) ‘백년손님’의 핵심 출연자는 연예인이 아닌 시골 할머니들이다. 방송용 코멘트나 연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리 없다. 외부에서 촬영하다 비가 오면 고추 말리려고 내놓은 거 거두러 가야 한다고 촬영장을 무단이탈(?)하시고, 식사하는 장면을 찍을 때면 스태프에게 ‘총각은 배 안 고프냐’고 물어봐도 그대로 놔두는(?), 자유방임형 촬영이 ‘백년손님’만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일지도 모르겠다.
3. 스튜디오 녹화; 우리들의 이야기
촬영이 끝나면 ‘밤샘편집→편집본 시사’의 무한 굴레를 돌게 되고, 어느 정도 틀이 잡힌 편집본을 가지고 스튜디오 녹화를 진행한다. ‘백년손님’의 스튜디오에는 크게 세 축이 있다. MC 김원희와 아내들, 그리고 문제 사위들. ‘자기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김원희는 녹화 현장에서 그 농익은 진행능력보다도 타고난 ‘공감능력’을 훨씬 더 뽐낸다. 딸이자 며느리, 그리고 여자로서 느끼는 것들을 눈물과 웃음으로 이끌어내는 그녀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강제처가살이중인 사위들의 아내들과 대한민국 평균 사위들(그래서 문제 사위들)의 대결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보다 보면 김일중 아나운서 얘기가 내 얘기고, 한숙희 여사(이만기 아내) 얘기가 바로 내 아내 얘기다. ‘백년손님’ 스튜디오 파트는 강제처가살이 영상을 더 맛깔나게 해주기 위해 더해진 고명 같은 역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믿고 보는’ 하나의 에피소드 역할을 거뜬히 하고 있다.
4. 후작업
 
모든 촬영과 녹화, 편집이 끝나면 자막 작업과 믹싱 작업이 남는다. 자막은 요즘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무한도전’이나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시리즈만 봐도 자막의 중요성은 자명하다.) ‘백년손님’의 자막은 조연출이 초안을 쓰고 메인 PD가 수정을 하는 식으로 완성된다. 2초 만에 지나가는 자막 한 줄을 쓰기 위해 30~40분을 고민하는 것은 예사다. (패러디를 해야 하나?, 상황정리를 해주는 게 나으려나?, 서른 개가 넘는 폰트 중 뭘 골라 쓰지? 등등) 그래도 내가 쓴 자막이 나올 때 사람들이 피식이라도 웃어주면 그게 그렇게 뿌듯해서 또 밤을 새가며 자막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그래 천직은 천직이구나 싶기도 하다.
 
믹싱 작업은 화면, 음악, 효과, 자막 등을 총망라해서 ‘방송본’을 만드는 작업이다. (내부에서는 ‘종편’이라고도 하고 ‘완제’라고도 부른다) 그저 그랬던 장면이 음악 하나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밋밋했던 상황에 효과음 하나로 세련되게 바뀌는 마법 같은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실수가 있으면, 그 실수가 그대로 시청자들의 안방으로 전달되는 것이니만큼, 늘 긴장 속에서 진행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면, ‘방송본 테이프’가 나오고(요즘은 파일로 나오기도 하지만), 그럼 비로소 1주일 스케줄이 마무리 된다.
촬영부터 편집, 믹싱을 하면서 수십 번은 족히 본 방송본을, 집에서 본방 사수를 하고 있노라면 기분이 참 묘하다. 편집할 때는, 자막 쓸 때는 안 보였던 작은 흠들이 그렇게 눈에 띌 수가 없다. 적어도 수백만 명이 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걸 매주 목요일 밤 본방을 보면서 느끼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길래 며칠씩 밤을 새냐는 우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밤을 샐만큼 중요한 일이니, 까불지 말고 하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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