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쪼개기] ‘착않여’ 채시라만 할 수 있는 이런 철딱서니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5.03.12 09: 39

이런 엄마가 있다. 자식의 인생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엄마. 유일한 딸을 교수로 키워놓은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는 딸이 강의를 맡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자 흔들렸다.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한 채, 일찍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살아야 했던 그의 자아는 아직 고등학생 시절에 묶여있다. 엄마는 ‘실패한 인생’이라 말하고 딸은 ‘정신병자’라 말하는 이 철없는 여자. 채시라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극본 김인영 연출 유현기 한상우)에서는 딸 정마리(이하나 분)를 위해 무릎을 꿇는 김현숙(채시라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김현숙은 강사인 딸의 학교 교수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무턱대고 교수실로 들어간 그는 “정마리 강사 엄마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교수님댁 무료 파출부라도 하곘다. 저희 마리 다음 학기부터는 강의하게 한다고 약속 해달라”고 떼를 썼다.

이후 그의 모습은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고, 심지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엄마를 끌고 나온 정마리는 계속 “교수님께 얘기를 해보라”며 교수 타이틀에 집착하는 엄마에게 분노해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렸다. 그는 “교수 엄마가 꿈이면 우리 학교 교수들 몇 명 입양해”라며 “아빠도 지긋지긋했을 거야. 이 열등감, 자격지심”이라고 쏘아 붙인 후 자리를 떴다.
김현숙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나말년(서이숙 분)과 악연으로 인해 끝내 정학을 당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나말년은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싹부터 자른다’는 철학(?)을 가진 교사였고, 끼 많은 여고생이었던 김현숙은 미움을 받아 학교 밖으로 내몰렸다. 내리는 빗물을 맞으며 슬픔을 잊기 위해 홀로 춤을 췄던 30여 년 전의 엉뚱한 김현숙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모습 그대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됐다.
채시라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고등학생 자아에 멈춰있는 김현숙 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푸석푸석한 파마머리를 한 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말년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딸 정마리에게 떼를 쓰며, 전남편 정구민(박혁권 분) 앞에서는 여동생처럼 툴툴거리는 그의 모습은 특이한 여고생이었던 김현숙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만들며, 열등감으로 뭉쳐 살아온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김혜자부터 도지원, 채시라, 장미희, 이하나 등 연기를 잘 하면서도 개성 있는 여배우들을 한 데 모아놓은 명품 연기 종합세트 같은 드라마다. 그 중에서도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채시라의 깊이 있는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활약에도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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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여자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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