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박보검, 토란 소년에서 파스타 청년으로 [인터뷰]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5.04 07: 27

말간 얼굴로 토란을 건네는 소년이 있다. 영화 '명량'을 본 이들은 명량해전이 끝난 후 이순신 장군에게 토란을 내미는 '토란소년'을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전쟁에 뛰어든 소년 수봉은 짧지만 강렬한 신스틸러(scene stealer)였다. 배우 박보검은 그렇게 1,700만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각인시켰다.
지난해는 박보검에게 특별한 해였다. 2011년 영화 '블라인드'로 데뷔한 후 꾸준히 활동했지만, 일부 대중들은 그를 아역배우 출신 이현우 닮은꼴로 기억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박보검은 유승호, 이현우 등과 함께 주목해야 할 '93라인'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명량'의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KBS 2TV '참 좋은 시절'의 이서진 아역, '내일도 칸타빌레'의 이윤후 역 등으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덕분이다. 
앳된 얼굴에 맑은 눈빛이 매력적인 그는 토란 대신 파스타를 권하는 청년이 됐다. 지난 29일 개봉한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제작 폴록스픽쳐스)의 석현이다. 일영(김고은)과 엄마(김혜수) 사이를 뒤흔드는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인상적이다. 빚 독촉을 위해 찾아온 일영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밝은 표정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 이를 지켜보는 일영도, 관객도 고개를 갸웃할 만큼 해맑다. 

하지만 박보검과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매사 긍정적인 석현 캐릭터는 박보검에게 맞춤옷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만큼 박보검은 석현처럼 건강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바른 생활 청년' 박보검을 OSEN이 만나봤다.
-극중 석현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비관하지 않는다. 관객에게 자칫 남성 캔디 캐릭터로 보일 수 있다. 어떤 부분에 집중했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긍정적인 성격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소속사에서 '너처럼 연기하라'고 했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가지고 임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모든 인물들이 어둡고 가라앉아 있는데, 나 혼자 밝다. 감정선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적당한 톤을 찾아가려고 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상황에서 한없이 명랑한데, 관객에게 따라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석현은 실제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석현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부정은 부정을 낳고, 긍정은 긍정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후반부 엄마의 대사 중에 "끔찍할 땐 웃어'라는 대사가 있다. 석현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집안 물건마다 붙어 있는 차압 딱지가 얼마나 싫겠나. 그런데도 웃으려고 노력한다. 석현을 포함해 '차이나타운' 속 모든 인물들이 안쓰러운 사람들이다."
-석현은 '요리하는 남자'다. 시나리오 준비 단계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영화가 개봉하는 시점과 맞물려 '요리하는 남자'가 유행이 됐다. 설정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석현에게 요리는 꿈과 목표다. 처한 상황이나 현실에 좌절하거나 얽매이는 친구가 아니다. 아버지는 빚을 지고 해외로 떠났고, 석현은 혼자 집을 지키면서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이 상황을 버텨나가려면 잘하는 걸 발견해서 그 꿈을 키워나가는 진취적인 친구다."
-석현이 베푼 친절에 일영은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석현은 일영에게 왜 그렇게 친절한가.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그때 한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석현은 별별 사채업자들을 만났을 거다. 보통 나이 많은 무서운 남자들이 왔을 거다. 처음엔 얼마나 무서웠겠나. 나중에는 그 단계를 넘어 사채업자들도 내 편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석현은 평소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해서 매력적인 사람인데, 그것이 또한 석현의 생존 방법이었던 거다. 그런데 어느 날 또래 여자애가 찾아왔다. 대수롭지 않게 친절히 대하면서 '이 여자애는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실제 타인에게 혹은 이성에게 친절한 편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소중하다고 생각해 친절히 대하려고 한다. 물론 석현만큼은 아니다. 서로를 좀 알아야 요리를 해준다. (웃음)"
-박보검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가 '이상형'일 만큼 관심이 높은데, 이상형이 어떻게 되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통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 연애는 데뷔 전에 했다. 일과 연애를 동시에 못하는 것 같다. 소속사에서도 연애를 금지하지 않는데,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없는 것 같다. 연애세포가 다 죽어 가고 있다."
-'차이나타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겁지만, 실제 촬영장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고 들었다.
"설렜고 즐거웠다. 서로 윈윈(win-win)하려는 마음이 컸다. 당초 감독님이 계획한 일정대로 촬영이 끝났다. 정말 꼼꼼히 준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감독님들도 그렇지만, 한준희 감독님 역시 대화의 장을 자주 열어주셨다. 석현은 '명량'의 수봉 이후 깊게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인물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의 중요도가 예전과 비교해 컸다. 연기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극중 인물 중 호흡을 맞추는 사람은 김고은이 유일하다. 김고은과의 호흡은 어땠나.
"처음 (김)고은 누나를 봤을 때 '도도한 여배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둘 다 낯을 가려 어색했다.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친해진 후에는 착하고 귀여울 때가 더 많아 누나 같지 않았다. 연기할 땐 확 몰입해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줘 매력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 김고은 외에도 고경표, 엄태구, 이수경 등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 20대 배우들이 있어 좋았을 것 같다.
"촬영할 때는 접점이 거의 없었다. 홍보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 단체로 대화를 나누는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창은 없나.
"내가 스마트폰 메신저를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세계에 뒤늦게 입문한데다가 문자나 전화가 더 좋다.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다시 피처폰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꿈과 희망을 가진 석현이지만, 부모가 남긴 빚으로 허덕인다. 박보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
"대입 실패다. 올해 명지대학교 뮤지컬학과 2학년인데, 남들보다 2년 늦었다. 맨 처음 입시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좌절감이 컸다. 이후 열심히 준비했고, 덕분에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었다. 연극영화과도 좋지만 뮤지컬학과에 진학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춤과 노래, 연기를 다 배울 수 있다. 동기들의 꿈도 그만큼 다양하다. 친구들을 보면서 초심을 잃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노래를 곧잘 부른다고 생각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 (웃음)"
-힘들었던 시기는 어떻게 극복했다.
"가족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형, 누나와 나이 차가 큰 편인데, 많이 의지한다. 또 감사한 일은 가족과 소속사 분들이 굉장히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칭찬을 하기보다 못하면 못한다고 채찍질을 해준다."
-반면 지난 2014년은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작품들이 모두 성공을 거뒀다.
"복받은 해였다.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 선배님들 모두 좋은 분들을 만났다. 그 인연들이 다 소중하다. 굉장히 감사한 2014년이었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석현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감사하다고 말하면 말 그대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역할의 분량과 상관없이 호평을 받았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작은 역할이라고 해도 나에겐 큰 역할이다.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해서 감독님이 생각하신 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믿고 맡겨 주셨는데 작품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좋게 봐주셨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감사한 일이다. 부담감보다 그만큼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책임감이 크다."
이 말을 마친 박보검은 "내가 생각해도 말을 잘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성숙한 답변을 이어가던 그의 '반전 매력'이었다. 장난기 섞인 말투에서 풋풋함이 묻어났다. '차이나타운'의 석현이 밝은 모습 그대로가 박보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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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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