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 오지환, 유망주 무덤에서 피어난 장미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5.05.27 07: 05

“이제 에러를 안 할 때도 됐다.”
LG 트윈스 내야수 오지환(25)은 화려한 수비를 자랑한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지금, KBO리그에서 오지환보다 수비 범위가 넓고, 어깨가 강한 유격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로 센스와 안정성도 부쩍 향상됐다. 타자 주자의 스피드를 고려해 더블플레이 유무·송구의 세기 등을 정확하게 결정한다. 오지환의 수비 장면들만 하나로 묶어놓아도 정말 볼만한 하이라이트 필름이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 오지환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그 누구보다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오지환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난과 질책을 받아왔다. 보통의 정신력이었다면, 예전에 코칭스태프에 포지션 전향을 요구했을 것이다. 2010시즌 2년차 만 스무 살에 LG의 주전유격수가 된 오지환은 당해 에러 27개를 기록했다. 2012시즌에도 에러 25개로 딱히 수비에서 발전이 보이지 않았다. ‘오지배’란 별명은 좋은 뜻보다는 나쁜 뜻에 가까웠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고등학교까지 투수를 했던 선수가 프로입단 2년 만에 유격수를 맡아야 할 정도로 LG 내야진은 부실했다. 육성시스템 또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LG에서 스카우트·운영팀장·수비코치 등을 역임했던 넥센 염경엽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팀이 지환이에게 못쓸 짓을 했었다. 고등학교서도 유격수를 안 해본 선수가 프로에 오자마자 1군 주전 유격수가 됐다. 잘 하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1, 2년만 2군에서 시간을 줬어도, 더 빠르고 순탄하게 성장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염 감독은 “지환이가 에러를 범한 경기 후 락커룸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봤다. 자신의 에러로 팀이 졌으니 얼마나 동료들에게 미안하겠나. 선배들을 볼 면목도 없고, 락커룸에 들어가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홀로 덕아웃 벤치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종종 봤었다”며 “하지만 지환이는 정신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다. 결국에는 해냈다. 요즘 지환의 수비를 보면 유격수의 모습이 제대로 나온다. 그만큼 지환이의 정신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지환의 수비력 향상은 LG 성적과 직결됐다. LG는 2013시즌 DER(수비효율성) 0.672를 기록, 이 부문 리그 4위에 자리했다. 2012시즌에는 8개 구단 최하위였으나, 1년 만에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2014시즌에는 0.670으로 2위까지 치솟았다. DER은 인플레이된 타구의 처리 비율을 의미한다. 높을수록 팀 수비가 뛰어난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흔히 LG가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비결로 투수력을 꼽는데, 투수들을 뒷받침해준 야수진의 수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수비의 중심에는 오지환이 자리했다. 이제는 LG에서 그 누구도 오지환의 수비를 대신할 수 없다.
오지환은 올 시즌 에러 4개를 기록 중이다. 지금 페이스가 유지된다면, 커리어 최소 에러가 유력하다. 지난 26일 잠실 kt전을 마치고 오지환은 “이제 에러를 안 할 때도 됐다”면서 “그동안 많은 분들이 나를 도와주셨는데 염경엽 감독님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프로에 왔을 때부터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주셨다. 프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염 감독님께서 믿고 나를 기용해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내야진을 이끌어야하는 상황에 대해선 “지금 경기에 나가는 선수들 중 내가 경험이 좀 있는 편이다. 그래서 함께 내야를 보는 (양)석환이나 (황목)치승이 형과 여러 가지를 공유하고 있다. 다리가 빠른 타자가 누구인지 꾸준히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들끼리는 잘하는 것만 말하고 서로 칭찬만 하자고 약속했다”며 리더십도 보였다. 
어느덧 리그 정상급 유격수가 된 오지환이지만, 팬들은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오지환이 타격에서도 LG를 이끌기를 기대한다. 오지환 역시 지난겨울부터 절치부심, 타격폼을 수정하며 2015시즌을 준비했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효과가 컸지만, 슬럼프가 찾아오며 타율이 2할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오지환은 좌절하지 않았다. 수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내하면 언젠가는 달콤한 열매가 따라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지환은 “잘 안 풀릴 때 타격폼에 너무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어떤 폼으로 치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편하게 느껴지는 대로 치려고 한다. 가장 자신 있는 폼으로 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지환은 지난 22일 사직 롯데전서 4타수 4안타로 반등을 시작, 27일 kt전에선 홈런 포함 3안타를 치면서 시즌 타율을 2할5푼9리까지 올렸다.
LG가 지난 10년 동안 키운 주전 야수는 오지환과 이병규(7번) 밖에 없다. 매년 드래프트를 통해 수많은 유망주를 영입하지만, 이들의 재능을 만개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두 경기 반짝활약으로 LG의 미래를 책임질 영웅이 됐다가, 몇 경기 부진해서 역적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비난의 화살을 받은 신예선수들은 좌절했고, 좀처럼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지 못했다. 몇몇은 팀 이적 후 슈퍼스타가 됐지만, 대부분이 백업선수나 1.5군 선수로 올라서는 데 그쳤다. LG 팜을 두고 유망주 무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지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지환이 어떻게 유망주 무덤에서 장미로 피어났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서는지 지켜보면, LG구단 또한 육성 가이드라인이 잡힐 것이다. 정신력이 약한 선수는 코칭스태프의 관리와 지도로 강하게 만들면 된다. 기회만 준다고 리빌딩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리빌딩에 성공하기 위해선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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