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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1917년 보성고 졸업앨범에서 한국야구 최초 시구 사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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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최초로 추정되는 시구 사진이 발견됐다.  

시구 사진은 1917년 보성고 제8회 졸업앨범에 실린 것이다. 오영식 보성고 국어교사는 최근 야구 사진이 실려 있는 1916년과 1917년 보성고 졸업앨범을 공개했다. 오영식 선생이 찾아낸 야구관련 사진은 1916년 제7회 졸업앨범에 두 장(한 장은 부분 확대한 것), 1917년 제8회 졸업앨범에 6장(부분 확대 두 장 포함) 등 모두 8장이다.

1916년 앨범에는 보성고 교정에서 야구하는 장면이 실렸고, 1917년 앨범에는 시구식 장면과 야구경기 장면 3장, 시구식과 야구경기 장면 부분 확대 두 장이 실려 있다. 시구의 주인공은 당시 보성고 최린 교장으로 추정된다. 시구자는 중절모를 쓴 연미복 차림의 인물로 나타난다. 시구자의 뒤에는 심판으로 보이는 한복은 입은 인물이 시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야구 사진에 개별 설명이 붙어 있지 않아 연도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시구 사진 밑에는 ‘시구식(試球式)’이라는 한자가 인쇄돼 있고, 야구경기 장면에는 ‘전반야구대회(全般野球大會)’라는 한자가 있다. 시구식 연대는 1910년대 초반으로 유추된다. 1917년 졸업앨범에 보성학교 교사를 역임했던 한글학자 주시경(周時經 1876~1914년)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1914년 이전의 사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이 1학년 때 배웠던 스승의 사진을 앨범에 수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야구 초창기 시구사진은 1920년 11월 4일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년) 선생이 조선체육회 창립기념으로 열렸던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에서 도포를 입고 시구를 한 것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이다. 또 1928년 5월 18일 윤치호 조선체육회장이 제9회 전조선야구대회에서 역시 도포 차림으로 시구하는 모습은 한국야구사(1999년 발행)에 수록돼 있다. 따라서 1912~1914년으로 상정할 수 있는 최린의 시구 사진은 이상재보다도 5년 이상, 윤치호 보다는 10년 이상 연대가 많이 앞서는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시구 사진으론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04년 필립 질레트가 이 땅에 야구를 들여온 때로 보자면 이 시구는 야구전파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911년부터 1919년까지 보성학교 교장을 지냈던 최린은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인 이었으나 뒤에 변절, 친일파로 돌아섰다. 제3대 조선체육회장(1923년 11월28일~1924년6월 24일)도 역임했던 최린은 1924년 제5회 전조선야구대회에서 시구를 한 기록이 남아 있다.  

 
보성고 100년사(2006년 발행) 편찬 작업을 주도했던 오영식 선생은 “당시 보성고 교정은 현재 조계사 자리에 있었다. 야구경기 장면 사진 뒤편에 보이는 삐죽 솟은 건물은 각황사(覺皇寺)라는 절이었다. 학교를 창립한 이용익 선생이 독립운동으로 탄압받아 학교 재단이  천도교로 넘어갔다가 3.1 운동 뒤에 불교 종무원으로 보성학교 재단이 넘어갔다. 나중에 불교재단이 보성학교 터에 조계사를 짓게 된 것이다. 각황사 옆에 보이는 큰 나무는 현재 조계사 대웅전 앞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오영식 선생은 “최린이 그 무렵 보성학교에서 10년간 교장을 했으므로 시구자는 최린으로 추정된다.”면서 “최린 교장이 당시 연미복 차림으로 보성학교 자료에 자주 등장한다.”고 밝혔다.

보성고는 1906년 이용익(李容翊. 1854~1907년)이 종로구 박동(현 수송동 인근 조계사 터)에 창립했다. 개교 당시 사립보성중학교로 출발했던 보성고는 설립자인 이용익이 독립운동으로 일제에 탄압을 받아 재단이 천도교-불교로 바뀌며 수난을 겪었다.
 
1910년대 보성고 졸업앨범에는 야구 말고도 축구 등 다른 종목 관련 사진도 찾아볼 수 있다. 1916년 앨범에는 야구와 더불어 축구 경기 장면 사진도 실려 있다. 이번에 확인된 보성고 졸업앨범에 들어있는 야구사진은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다. 특히 1917년 앨범에 들어있는 시구식과 야구경기 장면 사진은 초창기 한국야구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사진의 배경에는 북악산과 인왕산 등 서울 북촌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산들이 선명하게 잡혀 있다.

야구경기 사진을 보면 외야 개념이 없이 선수들이 내야 선상에 옹기종기 모여 수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주심이 투수 바로 뒤에 서있는가 하면, 1루 뒤에는 한복차림의 심판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도 자못 이채롭다. 타석에 서 있는 타자 뒤에 포수가 서서 투수의 공을 잡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야구도입 초기의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국야구는 1904년 황성기독청년회(YMCA)에 이어 1905년 德語학교, 英語학교, 日語학교 등 외국어학교에 야구부가 창단되고 1907년 휘문의숙(휘문고)을 필두로 사립학교로 서서히 번져나가 한· 일 강제병합 1년 뒤인 1911년부터 경신, 중앙, 배재, 보성, 오성학교 등이 속속 야구부를 창단, 급속도로 야구가 보급됐다. 보성학교의 졸업앨범을 통해 초창기 한국야구의 민낯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오영식 보성고 국어교사(근대서지 편집위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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