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투피치?' 김광현 역습 시작됐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8.03 05: 54

김광현(27, SK)은 여전히 SK의 에이스다. 그런데 그 ‘에이스가 되는 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전형적인 투피치 투수였던 김광현의 스펙트럼이 점점 다른 색을 더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광현의 진화는 이제부터 시작일 수도 있다.
김광현은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8이닝을 2실점(비자책)으로 버티며 승리투수가 됐다. ‘삼수’ 끝에 시즌 10번째 승리를 따내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 고지도 밟았다. 어깨 부상으로 2011년과 2012년 명성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냈던 김광현은 2013년 10승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에 이어 2014년(13승), 그리고 올해도 에이스의 진면모를 발휘하며 명예회복에 완전히 성공했다.
팔꿈치 염증의 후유증도 우려됐고 4일 휴식이라는 핸디캡도 있었다. 하지만 김광현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최고 152㎞의 빠른 공, 그리고 전매특허인 예리한 슬라이더를 던지며 LG 타선을 무력화시켰다. 멀리 뻗어나간 장타는 5회 손주인의 2루타 하나뿐이었다. 그만큼 구위가 좋았다. 그런데 그 ‘구위’를 형성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숨겨진 또 하나의 요소가 있었다. 바로 커브와 체인지업이었다. 타자들의 눈을 현혹하며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위력을 배가시키는 감초 임무를 톡톡히 했다.

김광현은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투피치 투수’로 잘 알려져 있다. 상대 타자들도 이를 머릿속에 넣고 타석에 들어간다. 물론 두 구종의 위력이 엄청나 알고도 못 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광현도 이제 프로 9년차다. 승부 패턴과 구종의 궤적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됐다. 특히 제구가 안 되는 날은 노림수에 말려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커브와 체인지업이 같이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 2일 경기에서도 그랬다. 1회였다. 선두 문선재가 행운의 내야안타를 치고 출루했다. LG 벤치는 선취점의 가치를 생각한 듯 임훈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그리고 박용택이 우전안타로 1사 1,3루를 만들었다. 타석에는 우타자 정성훈이 들어섰다. 여기서 김광현과 이재원 배터리의 승부구는 커브였다. 슬라이더 3개를 연거푸 던진 김광현은 4구째 빠른 공으로 정성훈의 눈을 흔든 뒤 5구째 122㎞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이 삼진은 1회를 무실점으로 넘길 수 있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김광현은 올 시즌 들어 커브의 구사 비율을 높이고 있다. 여전히 빠른 공과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이기는 하지만 ‘빠른 구종’인 두 구질과 상극에 있는 커브를 섞어 재미를 본다. 일단 빠른 공 타이밍에 대비하며 빠른 슬라이더까지 대처하려고 하는 타자로서는 느린 커브가 제구까지 잘 돼 들어올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결정구로 활용하는 빈도도 지난해에 비해 훨씬 늘었다. 최근 커브 제구를 보면 김광현은 ‘스리피치’ 투수가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에 체인지업까지 추가했다. 아직 실전에서의 사용 빈도는 낮지만 그래도 경기에서 한 번씩은 꼭 실험하는 구종이다. 7회 1사 1루 김영관의 타석이었다. 역시 슬라이더와 빠른 공으로 승부하던 김광현은 4구째 117㎞ 커브를 섞어 파울을 이끌어냈다. 언제든지 커브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김광현은 5구째 빠른 공에 이어 6구째에는 빠른 공과 같은 폼으로 나오는 126㎞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역시 전혀 대비하지 못한 구종이었다.
"잘 던질 수 있는 구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김광현은 체인지업에 대한 욕심이 많다. 최근 2년째 전지훈련에서 체인지업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다.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첫쨰다. 여기에 더 이상 두 가지 구종으로는 절정의 위력을 보여주기 쉽지 않다는 위기의식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구종을 완벽히 배우는 데 보통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진행형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꾸준히 써먹으며 감각을 익히고 보완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물론 승부처에서는 여전히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비중이 높은 김광현이다. 이는 앞으로도 평생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두 구종, 혹은 간간히 던져보고 있는 또 하나의 구종인 포크볼을 감초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경기 운영과 포수 볼배합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다. 다른 구종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타자 몸쪽을 파고드는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효과는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 김광현은 2일 경기 후 체인지업이 그런 몫을 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김광현은 2일 전체 96개의 투구수 중 커브 12개(12%), 체인지업 6개(6%)를 섞었다. 지금껏 100구를 기준으로 빠른 공과 슬라이더 외 구종이 2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경기는 거의 드물었다. 더디지만 조금씩 변하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아직 만 27세인 김광현의 진짜 전성기는 그 ‘18개’의 반란이 정교화되는 시점에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닌, 2~3년 안에 찾아올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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