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독했던 김성근, 더 독했던 최정의 희생

  • 이메일
  • 트위터
  • 페이스북
  • 페이스북


[OSEN=김태우 기자] 김성근 한화 감독의 야구는 때로는 ‘독해 보인다’라는 이미지를 남긴다. 경기 요소요소에 개입한다. 승리 확률을 높이려는 최선의 노력이다. 김 감독 고유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런 회심의 한 수는 때때로 상대 벤치의 계산을 휘저어 경기 분위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휩쓸려가기 일쑤다.

그래서 그럴까. 4일 이런 김성근 감독과 맞붙은 SK도 독한 야구를 했다. 9-2로 크게 이기기는 했지만 경기 중반까지는 팽팽한 흐름이었다. 때문에 SK도 1점을 짜내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조동화는 선행 주자가 홈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일부러 3루까지 뛰며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아웃은 됐지만 득점 주자를 구했다. 김용희 감독도 4일 경기 후 “스스로 생각하는 지능적인 플레이들이 나오고 있어 고무적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김용희 감독조차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SK가 3-1로 앞선 7회 무사 1,2루에서 나온 최정의 희생번트였다. 이날 경기의 승부처였다. 한화는 위기에 몰리자 필승 카드인 윤규진을 올려 SK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실점을 막고 8·9회 역전을 노려보겠다는 총력전이었다. 타석에서는 SK의 간판스타인 최정이 들어서 있었다. SK의 모든 팬들이 ‘한 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동상이몽의 순간, 팀의 중심타자가 내린 선택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번트였다.

최근 비교적 감이 괜찮은 최정이었다. 전반기 부상으로 부진했지만 서서히 명예를 회복 중이었다. 조금씩 잘 맞은 타구가 나오고 있다. 최근 타격 연습량을 평소보다 많이 가져가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벤치에서도 별다른 사인이 없었다. 그냥 강공이었다. 아무리 1점이 급해도 이런 상황에서 팀의 중심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할 감독은 많지 않다. 오히려 기대득점치의 통계를 보면 더 손해일 수도 있다. 타순이 좋은 만큼 SK도 한 방으로 대량 득점을 노려보겠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최정은 초구에 기습번트를 댔다. 윤규진이 잡아 1루로 공을 던져 최정을 아웃시켰으나 주자는 한 베이스씩을 더 진루한 후였다. 플레이 직전 상황을 보면 한화 내야는 최정의 번트에 거의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수비수들은 비교적 정상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주자들의 리드폭과 움직임도 사전에 번트를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무슨 사연에서 번트를 댄 것일까.

최정은 4일 경기 후 “오늘 타격감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땅볼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입을 열었다. 최정은 이날 첫 두 타석에서 안타 없이 물러난 상황이었다. 이어 최정은 “그런데 1점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기습번트를 대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말 그대로 희생이었다. 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1점을 위해서는 확률적으로 기습번트를 대는 것이 팀에 더 이득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1루에서 아웃되기는 했지만 최정은 어둡지 않은 얼굴 표정으로 덕아웃을 향했다. 김용희 SK 감독은 미동 없이 경기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최정의 번트는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2,3루가 되자 한화는 전진수비를 펼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정의윤의 타구가 유격수 키를 넘기는 적시타가 됐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무난하게 잡히는 타구였다. 이 적시타는 승부의 추를 SK쪽으로 기울게 했고 결국 이재원의 적시타, 그리고 박계현의 2타점 적시타가 나오며 한화를 주저 앉혔다. 팀을 위한 최정의 ‘독한 희생정신’이 필사적인 총력전을 펼친 한화를 무너뜨린 단초가 됐던 것이다. 어쩌면 SK가 추구하는 '원팀' 정신이 이 플레이 하나에 잘 녹아 있을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

OSEN 포토 슬라이드
슬라이드 이전 슬라이드 다음

OSEN 포토 샷!

    Oh! 모션

    OSEN 핫!!!
      새영화
      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