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솔직하다] 고의사구 작전, 벤치 개입의 성공작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9.15 06: 23

고의사구는 야구의 수많은 작전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의 작전이다. 단순히 한 타자를 거르는 것이 아닌, 다음 타자와의 승부, 그리고 그 승부에서 있을 법한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절대 위기를 넘길 수도 있지만 실패하면 그 고의사구로 걸어 나간 주자 때문에 갑절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양날의 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고의사구는 벤치가 경기를 읽은 흐름, 그리고 선수들의 ‘강인함’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수치로 평가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벤치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선수들의 심장이 약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작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올 시즌 고의사구로 가장 재미를 본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은 어디었을까. 물론 고의사구가 벤치의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도 자체가 벤치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수 있다.
올 시즌 들어 가장 많은 고의사구 상황을 연출한 팀은 예상대로 한화다. 한화는 총 35번이나 고의사구 작전을 썼다. 경기에 가장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편인 김성근 감독의 성향이 묻어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이 SK(30회)였으며 LG(28회), 롯데(23회), KIA(20회)가 평균 이상의 고의사구 작전을 쓴 팀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장 고의사구 작전을 덜 쓴 팀은 넥센으로 6번에 불과했다. 삼성도 10번, kt는 12번, NC와 두산은 13번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강팀일수록 고의사구 시도 횟수가 적었다는 점이다.

이 중 고의사구 작전에서 가장 재미를 본 팀 중 하나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SK라고 할 만하다. 한화에 이어 가장 많은 고의사구를 준 SK는 고의사구 직후 타석에서 2할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피홈런 한 개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장타를 내주지 않아 대량실점 위기에서는 벗어났고 주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삼진에서는 9개로 가장 많았다. 피OPS(피출루율+피장타율)에서는 0.653으로 그럭저럭 좋은 수치였으며 뜬공보다 땅볼이 많아 병살타를 유도하는 측면에서도 좋은 결과를 냈다.
횟수는 적지만 삼성도 막강한 마운드를 엿볼 수 있었다. 삼성은 고의사구 직후 타석에서 피안타율이 2할이었고 5개의 땅볼을 유도하는 동안 뜬공은 하나밖에 없었다. 병살타도 두 번이나 유도했다. 막내 kt도 힘을 냈다. 피안타율은 9푼1리로 가장 좋았고 피OPS는 0.349에 불과했다. kt 마운드의 전체적인 전력을 고려하면 고의사구 직후 집중력은 엄청났던 셈이다. 시도 자체는 많지 않지만 그 시도가 확실한 결과로 돌아온 팀들이다. 류중일 감독, 조범현 감독의 시도는 상당 부분 적중했다.
이에 비해 재미를 보지 못한 팀도 많다. 두산은 13번의 고의사구 직후 타석에서 피안타율이 4할1푼7리로 가장 높았다. 피OPS는 1.045에 이르렀다. 피장타율이 0.583에 이르렀다는 것은 고의사구 후 대량실점의 위기 자체가 많았다고 해석할 법하다. 투수들이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화·SK에 이어 고의사구 작전이 가장 많았던 LG도 피안타율이 3할7푼5리로 높은 편이었다. 두산과는 달리 장타 허용이 많지는 않았지만 8개의 뜬공과 2개의 희생플라이가 나온 반면 땅볼 유도는 3번에 그쳤다.
그렇다면 가장 시도가 많았던 한화는 어떨까. 평균 정도의 성적을 냈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생각보다는 재미를 못 봤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화의 피안타율은 2할7푼6리였으며 피OPS는 0.745였다. 평균을 약간씩 웃돈다. 여기에 문제는 6번의 볼넷을 내줬다는 것. 리그 최다다. 고의사구를 내주며 다음 타자와 승부를 걸었는데 그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다는 것은 팀을 수렁에 빠뜨리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한화는 많은 상황에 비하면 병살타도 한 차례 유도하는 데 그쳐 고의사구 작전의 ‘하이라이트’도 적은 팀이었다. /skullboy@osen.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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