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김인식 감독-상비군 체제로 2017 WBC 대비하자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5.11.23 07: 24

일본 야구국가대표팀 이름은 ‘사무라이(侍) 저팬’이다. 대표 팀 이름에 굳이 봉건시대 무사를 뜻하는 ‘사무라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에서 그네들의 야망과 전의를 읽을 수 있다.
‘사무라이 저팬’은 지난 2006년 왕정치(75) 감독 체제로 출범, 제1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제패했다.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던 일본은 야구 종목의 올림픽 복귀에 대비, 지난 2013년부터 ‘사무라이 저팬’을 상설체제로 편성, 관리하고 있다. 현 고쿠보 유키(44) 대표 팀 전담 감독은 2013년 11월부터 지휘봉을 잡아 오는 2017년 3월에 열릴 예정인 제4회 WBC 때까지 계약돼 있다.
비록 일본 대표 팀이 이번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한국에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고 우승이 좌절되긴 했으나 그네들의 치밀한 준비성은 우리가 본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한국 대표 팀은 이번에 일본 투수 오타니 쇼헤이(21. 니혼햄 파이터스)의 벽에 막혀 애를 먹었다. 개막전과 준결승 두 차례 맞대결에서 전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만약 일본이 준결승에서 선발 오타니를 길게 끌고 갔더라면, 한국의 9회 초 대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프리미어12에 앞서 일본의 스포츠전문지 『닛칸스포츠』 11월 3일치에 실렸던 고쿠보 감독과 왕정치 소프트뱅크 구단 회장의 대담기사를 보면, 그네들의 ‘사무라이 저팬’에 대한 자부심과 세계 정상 정복의 의지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사무라이 상설로 침투한 세계 1위의 생각’이라는 제하의 그 기사는 근년 들어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뽑히는 것을 열망하고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과 일본의 본격적인 프로야구 교류는 1991년에 열렸던 한-일 슈퍼게임 때부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은 올스타가 아닌 지역 선발팀으로 한국 대표  팀과 맞섰고, 상당한 수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이 세계대회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WBC가 계기였다. 그 이후 일본은 보다 체계적인 대표 팀 관리를 위해 ‘상설’ 체제로 전환해 짧게는 2017년 WBC, 길게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역대 국제대회를 앞두고 대표선수단 구성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표 팀 발탁을 탐탁지 않게 여기거나 아예 외면하는 선수조차 있었다. 더욱이 감독 선임은 난제여서 현역 감독들은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이젠 한국도 일본처럼 당장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온 WBC대회와 2019년 제2회 프리미어12, 나아가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 한시적이 아닌 상설로 대표상비군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감독도 전임제로 해서 선수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종합,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적어도 2017년 WBC까지는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김인식(68) 감독이 계속 지휘봉을 잡는 게 좋겠다. 김인식 감독은 현재 KBO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기술위원회는 대표 선수 선발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원장이 대표 팀 감독까지 겸직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2006년과 2009년 제 1, 2회 WBC에서 한국대표팀을 4강과 준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던 김인식 감독은 이번 프리미어12에서도 그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김인식 감독은 프로야구 감독으로 현장 복귀 뜻을 갖고 있다. 감독 통산 980승을 올린 뒤 일선을 떠났던 그는 20승이 모자라 1000승을 채우지 못한 데 대해 입버릇처럼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의 사례도 있듯이 김인식 감독이라고 다시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김 감독이 프로구단 감독으로 복귀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를 능가할 만한 대표 팀 감독을 찾기는 어렵다. 김인식이라는 지도자야말로 대표 팀 감독으로서 가장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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