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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의 사자후] 위성우 감독,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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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만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명승부가 실제로 벌어졌다. 결코 기적이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로 만든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여자농구대표팀은 15일 오후 7시 30분(한국시간) 프랑스 낭트에서 개최된 2016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C조 2차전에서 FIBA랭킹 10위 벨라루스를 66-65로 제압했다. C조 세 팀이 나란히 1승 1패씩 물고 물렸다. 골득실을 따져 벨라루스와 한국이 나란히 8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14일 나이지리아에게 69-70으로 아깝게 패했다. 선수들이 받았을 충격은 더욱 컸다. 벨라루스는 나이지리아를 71-60으로 꺾은 강호였다. 더구나 한국에 비해 하루 더 쉬었다. 모든 조건이 한국에게 철저하게 불리했다. FIBA의 전문가들도 한국의 전력을 얕봤다. 위성우 감독은 세계농구에게 보란 듯이 한국의 존재감을 알렸다. 근래 한국농구에서 보기 드문 쾌거였다.  

▲ 산왕공고를 잡은 북산고, 한국 

“솔직히 저도 비디오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 정도 전력일 줄은 몰랐거든요. 리바운드를 잡고 슛을 쏘는 박력 있는 모습이 남자나 마찬가지더라고요. 언제 비디오를 보여줘야 할지 참 고민입니다. 섣불리 보여주면 선수단 사기만 꺾일 수 있거든요.”

기자는 대표팀이 출국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진천선수촌을 찾았다. 위성우 감독은 매일 밤 비디오분석으로 시간을 보내며 초췌한 모습이었다. 남자고교선수들과 연습경기를 치렀지만 충분치 않았다. 나이지리아와 벨라루스의 전력이 워낙 강하다보니 어떻게 붙어야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쉽사리 비디오를 공개하면 ‘우린 안 돼’라는 패배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대표팀의 분위기는 흡사 산왕공고의 비디오를 보기 전 북산고와 똑같았다. 벨라루스 주전센터 옐레나 루첸카(33, 195cm)는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한 장신센터다. 파워풀한 리바운드나 골밑장악이 일품이다. 가드 린제이 하딩(32, 173cm)은 명문 듀크대학을 졸업한 뒤 WNBA 뉴욕 리버티에서 뛴다. 대학시절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던 선수로 미국에서 벨라루스로 국적을 옮겼다. 이런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한 벨라루스다. 

상대의 면모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 위축됐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들은 선수단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노력했다. “우리가 준비한 것만 잘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나이지리아전은 한국이 무조건 잡았어야 하는 경기였다. 막판 선수들이 집중력 부족을 드러내며 역전패를 허용했다. 다음 상대는 더 강한 벨라루스다. 선수들은 지레 포기하기보다 오기를 보였다. 그렇게 대역전승의 발판이 마련됐다. 선수들의 승부욕 뒤에는 보이지 않는 코칭스태프들의 노력이 있었다.   

결국 실전에서 박지수는 강백호가 됐고, 김단비는 서태웅이 됐다. 3점슛을 척척 꽂은 강아정은 정대만이 부럽지 않았다. 

▲ 준비한 전략 100% 적중 

진천선수촌 연습경기로 위성우 감독이 준비한 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선, 변연하, 신정자가 은퇴했다. 한국은 위기 때 완급조절을 해줄 가드가 없었고, 한 방을 터트려줄 해결사도 없었다. 특정선수에 의존하는 전략을 짤 수 없는 상황. 대신 강아정, 김단비 등 수준급 슈터들이 많았다. 195cm의 장신이면서 기동력이 우수한 박지수의 성장도 눈에 띄었다. 위성우 감독은 모든 장점을 모아 ‘한국식 스몰볼’ 농구를 구상했다. 

가장 활동량이 좋은 이승아가 주전가드를 맡았다. 강아정과 김단비가 더블 슈터를 본다. 막내 박지수가 주전센터를 맡는 동안 노련한 양지희가 커버해준다. 선발 전원이 속공에 가담할 수 있고, 외곽슛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위 감독은 남고선수들을 상대로 이미 여러 번 라인업을 실험해 성공했다. 다만 유럽선수들을 상대로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을 뿐이다. 김단비와 강아정은 쌍포의 역할을 200% 완수했다. 세계적 슈터들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수비에서 여러 선수를 고르게 활용하는 로테이션이 맞아떨어졌다. 높이와 체격이 불리한 한국은 결국 한 발 더 뛰고 먼저 길목을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 연속 경기를 치른 벨라루스전에서 위 감독의 용병술이 더욱 빛났다. 나이지리아전에서 중용받지 못한 배혜윤, 곽주영, 임영희가 더 많은 시간을 뛰었다. 이들은 주전들의 체력을 아끼고, 끈끈한 수비의 긴장감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비밀무기 강이슬의 기용도 적중했다. 전주원 코치는 “강이슬이 수비에서 센스가 부족한 편이다. 하나하나 잡아줄 시간은 없다. 짧은 시간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3점슛으로 승부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강이슬은 조커로 제격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강이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 강이슬은 나이지리아전 3쿼터 11득점을 쏟아내며 한 몫을 했다. 주전들이 체력이 떨어져 경기가 전반적으로 처지는 상황에서 사이다 같은 활력소가 됐다. 모든 것이 위성우 감독의 구상 속에 있었다. 

▲ 무관심과 미비한 지원 속에 얻은 성과 

위성우 감독은 올해만큼은 대표팀을 맡지 않을 생각이었다. 프로농구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을 겸임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우리은행이 통합 4연패를 달성하며 위 감독은 여름 내내 쉰 기억이 없다. 정중하게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농구를 생각하면 위 감독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농구협회는 위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또 다시 지휘봉을 떠넘겼다. 결국 위 감독은 “아무나 국가대표 하겠습니까”라며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어렵게 지휘봉을 잡았지만 농구협회의 지원은 미비했다. 유럽원정을 떠나 강호들과 A매치를 하는 일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국내에서도 연습상대를 구하지 못해 남고선수들과 손발을 맞춰야 했다. 남고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져 연습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 어린 선수들은 국제대회 경험 자체가 적다보니 생소한 분위기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가 A매치만 많이 했다면 나이지리아전처럼 막판 집중력 부족으로 잡히는 경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벨라루스를 잡은 뒤 위성우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잘해줘서 고맙다. 끝까지 응원을 부탁드린다”면서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자신은 주목받지 못해도 괜찮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올림픽 티켓 획득여부와 상관없이 위성우호는 세계무대에 한국농구의 저력을 선보였다. 한편으로 ‘지원을 안 해줘도, A매치 한 번 안 잡아줘도 열심히 하면 이런 성과가 나온다’는 구시대적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모든 것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여기에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는 이들이 없었으면 한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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