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조피디 “이승환형? 11살 많은데 더 젊더라”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6.12.09 07: 50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유행어를 빌자면 참으로 ‘고구마’ 같은 답답한 세상에 ‘사이다’만큼 시원한 노래를 조피디(조중훈)가 연속해서 들고 나왔다. 지난달 8일 피디스(PD's)라는 이름으로 함께 창작활동을 해온 윤일상의 곡에 자신이 가사를 붙여 ‘시대유감 2016’을 발표한 조피디는 같은 방식으로 최근 ‘100m(미터)’를 무료로 배포한 것.
전작이 국정농단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최순실과 그 일당에 대한 비판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부터 비리의혹자 혹은 그와 관련된 것을 의심받는 사람들 그리고 일부 정치인까지 혼쭐을 내는 한편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을 허용한 재판부의 판단과 그렇게 용기를 낸 국민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더불어 아직 대한민국에 희망이 살아있음을 강조하며 구시대적 이념의 편 가르기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5%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를 만났다.
-세월호 참사 때 배우 등이 시국선언을 하고 이번 최순실 사태에 다수의 가수가 대통령 하야촉구 집회에 동참해 노래를 부르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아침이슬’이 본래의 창작의도와 달리 독재정권이 민중운동 압박 차원에서 박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저항정신의 징표가 된 걸로 알고 있다. 1970~80년대는 많은 이들에게 그랬듯이 적지 않은 가수들에게도 암울한 시기였던 걸로 안다. 신중현 선배님의 ‘미인’ 같은 훌륭한 명곡이 퇴폐적이란 어이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을 정도니 대학생들이 특히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당시의 용기 있는 분들의 행동이 민주화의 밑거름이 됐듯 지금도 수많은 국민들의 소신과 표현이 그나마 희망을 준다. 여기에 대중의 사랑으로 먹고사는 가수들이 힘을 보태는 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편향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저는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특별히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딴따라’ 아닌가? 그런데 전문직 차원에서 보면 음악을 매개체로 대중과 소통하는 가수, 특히 저처럼 가사 등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가사나 곡으로 저라는 사람과 제 생각 등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행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방적이거나 편협하거나 혹은 보편타당한 정서에서 많이 위배되는 것을 억지로 주입하려는 의도는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정교와 사이비종교의 차이라고 비교하면 지나치게 거창하겠지만.”
-이번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계기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다. 지난 9월 언론을 통해 최순실 의혹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틈틈이 메모를 하며 가사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저도 아들 둘(11살, 7살)을 키우는 부모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제게 가장 큰 관심사는 그 녀석들에 대한 것이고, 그들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성장해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제일 큰 소원이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를 보니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누군가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영웅심이나 얄팍한 계산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만난 (이)승환 형이 그렇듯 저 역시 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대중의 열화와 같은 갈망과 용솟음치는 분노를 모른 체하는 것은 대중의 성원으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란 직업상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사적인 문제에 일일이 나서는 것은 과잉욕구거나 주제파악의 결여일 수도 있지만 이번 문제만큼은 차원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저 자신부터 지나치게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평소 진보적인 성향인가?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부터 그렇게 대척점에 세워 가르는 이분법적 이념다툼 자체가 싫다. 공자는 ‘논어’에서 온고지신, 즉 옛것을 알면서 새것도 안다는 말씀을 하셨다. 미풍양속과 민족정기는 지키되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전 국민적 정서를 배워가는 게 중요하지, 굳이 ‘꼰대’와 ‘애들’로 나눠서 무슨 발전을 바라자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 저도 주량이 늘었다. 거의 매일 ‘처음처럼 이슬’만 먹고 산다. 제가 특정한 이념이 강해서가 아니다. 상식과 보편타당 그리고 법과 국민정서에 벗어난 엄청난 일들이 청와대와 그 측근에서 일어났다는 뉴스가 매일 언론을 통해 폭로되는 데 대한 국민들의 상실감과 자괴감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저도 그들과 똑같은 감정과 판단이다. 영어로 ‘커피 더 드릴까요?’의 줄임말은 그냥 ‘모어 커피?’라고 하면 되지만 우리말은 ‘더 드릴까요?’로 훨씬 더 친절하다. 서구사회가 개인적 주체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가족과 소속단체 등 사회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따뜻한 민족이다. 그런데 오랜 독재통치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 전체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문화가 의외로 위축돼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문화의 활성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부산 울산 온양 등의 집회 무대에 올랐다.
정치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유권자들만이라도 이젠 보수니 진보니 그런 이념의 편짜기에 휘둘리지 말고 안정된 현실과 발전적인 미래를 보고 추구할 줄 아는 시각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력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에게 항의편지를 보내고, 광화문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일부 어른들이 “저게 뭐냐,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까지 동원하고”라며 혀를 끌끌 차는 데 놀랐다. 그 말씀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천동지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는 걸 미래의 주인들에게 가르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과하신 거다. 지금 주권을 빼앗긴 데 대해 침묵하는 걸 보여준다면 아이들이 그대로 배울 게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가르치는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건가? 우리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중, 고등학생 때를 돌이켜보자. 그때 우리가 과연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아예 몰랐던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전혀 없었던가? 중학생의 항의문은 어른이 시킨 것도 써준 것도 아니라는 진실을 외면하는 건 역사왜곡과 주권상실을 간과하는 것과 다름없다.”
-답답하다. 재밌는 얘기로 돌리자. 이승환을 이번에 처음 봤다는데.
“하하하, 저도 정식으로 데뷔한 지 17년이 지난 중견인데 희한하게도 그 형이랑 마주칠 일이 없었다. 시쳇말로 승환 형하고 저는 ‘가문’이 다르다. 형은 록이고 나는 힙합이다. 형이 주석이나 마스터플랜 등 힙합 뮤지션하고도 잘 어울리는 걸로 알고 있다. 국내 힙합계도 ‘계파’가 있는데 저는 그쪽 계파가 아니라 그동안 못 만난 것이다. 형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충격이었다. 형이 나보다 11살이나 많은 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젊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형의 첫인사가 고맙게도 ‘얼굴이 나랑 많이 닮았네’였다. 형이 어떤 여자랑 자리를 함께했다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제 모임을 본 사람이 저를 형으로 오인한 데서 나온 해프닝이었다.”
-힙합에 대한 생각은?
“흔히 록을 저항의 음악이라고 말한다. 저는 힙합과 랩은 반항의 문화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본토에서나 우리나라 일부에서도 과격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저급한 스타일과 가사가 있긴 하지만 반항을 일방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요즘 10~20대가 랩에 열광하는 것을 기성세대가 눈살을 찌푸리고 몰아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 자신도 지나치게 ‘꼰대스러워지는 것’을 항상 조심하고 있다. 문화에는 정서라는 게 중요한데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진화의 방향을 선정하는 데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오리지널리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발전의 방향성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은 필수다. 현재 랩과 힙합이 대중가요의 대세가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기에 비해 사생활이 가려져있는데
“하하하, 제가 인기가 높긴 한가? 사실 아들들, 특히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가 주변사람들에게 저를 확인시켜주는 걸 은근히 즐기는 편이다.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님들도 아는 체를 많이 해주신다. 가족이나 집 소개를 섭외하는 방송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나가면 돈 더 버니 좋겠지. 하하하, 농담이다. 방송출연은 사실 돈과 연결된다.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부모가 아이들의 의사에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춘기를 지났을 즈음에 나가고 싶다고 하고, 또 자연스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의사를 존중할 것이다. 아이들이 아빠를 자랑스레 생각하는 것은 맞지만 저는 먼저 나서서 저를 알리거나 내세우지 말라고 가르친다. ‘아빠를 아는 사람들이 전부 아빠를 좋게 생각하는 건 아냐’라고. 저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들들이 저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들을 경우 상처를 입을 테니까.”
-아내가 첫사랑으로 알려졌는데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첫사랑이자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다. 아내는 제 일에 대해 전혀 얘기를 안 한다. 원래 말수가 적기도 하지만. 직업상 집에 있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많은 편인데 그냥 어렸을 때처럼 장난 치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면서 지극히 평범하게 산다. 둘째가 없었을 땐 그나마 활동적으로 밖에 자주 나갔는데 이젠 그 횟수가 많이 줄었다. 둘째가 이제 유치원에 다닐 만큼 크니까 아내가 ‘아이 둘 키우느라 이젠 지쳐서 쉬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꽤 많이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는 편이다. 저번에 부산 집회 공연 때도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제 고향도 보여주고 제가 하는 일도 보여주면서 자연스레 사회를 알아가라는 의미이자 우리가 아빠-아들은 물론 가장 친한 친구사이임을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동안 음악과 사업을 병행했는데 앞으로 계획과 인사말
“2006년부터 (윤)일상 형하고 피디스를 해왔다. 제가 피처링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Hold the line’도 피디스의 작품이다. 앞으로 저는 피디스 활동과 더불어 후배 뮤지션 트레이닝과 프로듀싱에 전념하고 경영은 가능한 한 분리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
조피디는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시고 희망을 놓지 말아주세요. 투표는 꼭 합시다”라고 끝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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