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탈출’ 김광국, 우리카드 봄배구 사령탑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1.14 06: 41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더라고요. 설문지 조사도 했고요. 하다보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카드 세터 김광국(30·188㎝)은 지난여름 코트가 아닌, 코트 바깥에 있는 시간도 꽤 길었다. 구단이 마련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심리적인 이유에서 찾은 것이다. 그만큼 구단이나, 선수나 절박했다. 실제 김광국은 만년 유망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구단이 가장 답답해하는 선수 중 하나이기도 했다.
2009-2010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뽑히며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한 김광국이었다. 구단 사정은 힘겨웠지만 역설적으로 김광국의 경쟁자들이 하나둘씩 빠르게 사라졌다. 출전 기회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김광국이 스스로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난 시즌 김상우 감독 부임 후에도 그런 악순환은 계속됐다. 세트당 세트 성공은 8.071개. 토스가 흔들리면 경기에서 빠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벤치에만 있었다.

그런 김광국이 변하게 된 것은 김상우 감독의 결단이 배경에 있다. 김상우 감독은 지난 시즌 고비 때마다 세터를 바꿨다. 흔들리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일시적으로 충격요법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김상우 감독은 결국 김광국을 밀어보기로 했다. 김상우 감독은 “세터를 여러 명 교체하다보니 한계가 있었다. 일단 어떻게되는 김광국에게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떠올렸다.
만약 김광국이 그대로 무너진다면 팀 전체가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었던 도박이었다. 그래서 더 세심하게 다뤘다. 채찍은 물론 당근으로 기도 살려줬다. 칭찬도 해주고, 자신감도 불어넣었다. 심리치료도 받게 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려고도 애썼다. 우리카드로서는 다행히 김광국은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오히려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성장이 끝났다”는 주위의 시선을 비웃는 활약이다.
올 시즌 김광국은 팀의 주전세터로 자리를 굳히며 세트당 11.140개의 세트 성공을 기록 중이다. 종전 자신의 최고 기록이던 2013-2014시즌(10.161개)를 훌쩍 넘는 수치다. 리그 1위인 강민웅(한국전력·11.402개)와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단순한 기록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김상우 감독을 비롯한 많은 배구 관계자들은 “코트 위에서 자신감이 붙었다”며 달라진 모습을 칭찬 중이다. 김 감독의 심리도 ‘불안’에서 점차 ‘안도’로 바뀌고 있다.
올 시즌 우리카드가 다양한 공격 루트를 보여주는 것도 김광국의 공이 크다. 파다르와 최홍석 외에도 중앙 속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재미가 붙었다. 중앙 공격수들과 꾸준히 이야기를 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김 감독은 “세터가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 한다”고 오히려 두둔이다. 주위의 믿음은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1년 사이에 토스 구질이 확 달라지거나, 혹은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경기는 사람이 하고, 사람은 심장이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제 김광국은 마냥 남의 일이었던 봄 배구를 향해 뛴다. 더 강력해진 자신의 심장, 더 강력해진 동료들과 함께다. 어쩌면 올 여름에는 더 이상의 심리치료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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