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오지환, 문신 딜레마에 빠지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7.02.09 08: 53

LG 트윈스가 큰 고민을 안고 올해 KBO리그에 들어가게 됐다. 내야수 오지환(27)이 시즌 도중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아 팀을 떠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자칫 주전 유격수가 중요한 시점에서 이탈할 수도 있어 LG는 은근히 속을 끓이고 있다.
오지환은 2016 시즌 뒤 이대은(28. 경찰야구단)과 더불어 경찰야구단 입단을 시도했으나 ‘문신’에 발목이 잡혀 무산됐다. 이대은은 그 뒤 문신제거 시술을 받고 어렵사리 입단에 성공했고,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반면 오지환은 문신제거에 실패, 끝내 불합격 처리됐다.
경찰청은 만 27세로 입단 나이를 제한해놓고 있어 공백 없이 야구 선수생활을 이어가야하는 오지환으로선 벼랑 끝에 선 셈이 됐다. 오지환은 왼 팔뚝 부위에 ‘no pain, no gain(노력 없이 얻을 수 없다는 뜻)’이라는 문신이 있다. 오지환은 “우승을 위해 힘든 훈련을 견딜 때마다 외우는 나만의 주문 같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지환은 지난해 경찰청 입단이 좌절 된 다음 문신을 지우기 위해 그동안 4차례나 레이저 시술 등을 했지만 제대로 원상회복이 안 돼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시술을 받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피부 복원 시술이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는 사이에 입영 통지서가 날아오면 속절없이 현역으로 입대해야할 판이다.
LG 구단 관계자는 “원래 지난해에 보냈어야 하는데 좀 어렵게 됐다. 문신을 지우고 있는데 (문신이) 너무 깊어 잘 안지워진다. 상황이 녹록치 않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최근에는 군 복무를 의식한 선수들이 미리 문신을 지우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오지환처럼 깊이 문신을 새길 경우 엉뚱한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영화 ‘해바라기’에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배우 김래원이 과거 주먹 시절 자신의 몸에 칭칭 동여매다시피 새긴 문신을 지우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김래원은 자신의 어두웠던 시절과 결별하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과거를 지우는 의식’으로 문신을 지워버렸다.
문신(Tattoo)은 1769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서 최초로 소개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은 남태평양 타히티 섬의 언어 가운데 ‘예술적’이라는 뜻을 지닌 ‘tatau’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발견됐다.
문신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신분을 상징하는 치장으로 애용하는 곳도 있다. 옛 로마나 러시아에서는 범죄자와 노예의 표시로 ‘낙인을 찍어’ 양민과 구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에는 어부들이 해룡(海龍)의 해침을 막기 위해 일부러 문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1990년 배대균 지음 『한국인의 문신』 참조)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張吉山)』에는 주인공 길산의 연인 묘옥이 자신의 가슴에 ‘길(吉)’자를 연비(聯臂)해 넣어 사랑의 정표로 삼았다는 대목도 나온다.
사람의 몸에 새겨 넣는 문신은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할까. 스티브 길버트는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원제. Tatoo History:A Source Book)』에서 문신을 ‘치기어린 장난’이 아니라 ‘규격화된 몸으로부터의 해방’으로 규정했다. 문신은 종교적인 제의의 상징으로, 때론 성적 유혹이나 용맹함, 범죄자나 노예의 표식으로도 작용했다.
지난 2001년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단연 돋보였던 외국인 타자는 도미니카공화국 태생인 호세 펠릭스였다. 당시 이승엽과 치열한 홈런경쟁을 벌였던 그는 그 해 8월 4일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이름을 팔뚝에 그리고 다녀 주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호세는 ‘사랑해 하리수’를 슬그머니 지워버린 대신 그의 어머니와 두 아이의 얼굴을 새겨 넣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여태껏 외국인 선수들 말고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 가운데 문신을 한 선수는 보기 어려웠다. 문신이 어두운 세계의 이미지를 연상시켜 꺼려한 탓도 있을 것이다. 문신의 이미지는 다양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움과 위압감, 또는 혐오감 같은 이미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번져가고 있는 문신 풍조, 이 ‘자발적 낙인’을 일시적 ‘유행병’으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제 몸의 훈장’으로 칭송해야 옳을까. 문신은 치졸한 자기 최면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바야흐로 개성시대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성취욕구나 상승 의지의 표현으로 문신을 새겨 동력으로 삼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당당하게 문신 사실과 그 의미를 외부에 알린 선수도 있다. 특정 신분이나, 직업 종사자들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문신이 이제는 연예인은 말 할 것도 없고 프로 축구나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서 별 거리낌 없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선수들의 팔뚝 아래 부위 문신은 TV의 프로야구 경기 중계 화면이나 사진기자들의 앵글에 고스란히 잡혀 드러난다. 문제는 그 같은 문신이 보기에 따라서는 위화감이나 혐오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선수들의 문신은 주로 팔뚝이나 어깨나 가슴, 옆구리 부위에 여러 이미지를 새겨 넣기도 한다. 성취욕구의 절박한 표현, 비장감, 자신만의 염원, 식구들에 대한 사랑의 표식 등으로 다양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십자가 문양을 한 선수들도 눈에 띈다.
KBO는 프로야구 TV 중계가 있는 날이면 이런 저런 항의 전화에 시달린다. 그 가운데 선수들이 혼잣말로 습관적으로 내뱉는 욕설이나 화면에 잡힌 선수들의 문신은 그대로 안방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노골적인 거부감 표시나 질책이 심하다고 한다.
KBO는 지난 2011년부터 리그규정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에 욕설, 침 뱉는 행위 금지, 유니폼 착용 후 흡연 금지 등과 더불어 ‘과도한 문신의 외부 노출 금지’(제11항)조항을 명기해놓았다. 이 조항은 실행위원회(단장회의)를 통해 확정한 것이지만 어느 구단이 소속 선수들의 문신을 제지하거나 징계를 내린 사례는 아직 없다.
KBO는 “일반적으로 작은 문신은 괜찮지만 TV 중계가 많기 때문에 눈에 띄거나 교육상 안 좋을 경우, 여름이지만 긴팔을 입고 나오도록 구단이 권유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신이 이젠 예전과는 달리 개인적인 취미로 일반화 돼 있다 시피 한 마당에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을 내세워 선뜻 규제를 하기도 쉽지 않다. KBO로서는 어쨌든 경기장 질서 유지나 스포츠의 기본적인 매너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선수들이 운동의 활력소로 문신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어 일반적인 정서와 시각에 대한 고민은 어쩔 수 없다. 선수들은 미국 등지의 해외전지훈련 때 문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신을 한 선수들은 대개 ‘상대 기를 죽여 운동을 더 잘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앞세운다. 그들의 사고는 앞 세대와는 달리 자유롭다. 문신에 대한 시각은 선수 당사자나 지도자 사이에서 세대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옹호와 배척 사이에 거리가 있다.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은 “(문신은)미국 선수보다는 남미 선수들이 많이 한다. 일본 선수들은 없다. 우리 선수들이 왜 그런 흉내를 내는지 모르겠다.”면서 “개성이고 생각에 차이가 있겠지만 상대 기 죽이기? 그건 아니다. 프로야구는 ‘어린이들에게 꿈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지 않았나. 문신이 꿈을 주는 것인가. 예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팀에서 야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성인인 선수들도 감독이 관리해줘야 되고 팀에 지침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얘기를 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지금은 개성시대이다. 아름다움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성형 연예인들도 그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는 세상인데, ‘성형이나 염색, 문신이 다를 게 뭐 있나’라는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규제가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고려하더라도 외설적, 폭력적인 내용이 담긴 문신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는 의견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가 어느 곳에서는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이 세상살이긴 하다. 이 땅에서 문신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해야할 시대가 온 것은 분명하다.
프로야구선수들의 문신이 성취욕구 자극이든, 아니면 자기과시이든지 간에 적어도 군 복무 전에 하는 것은 현실적인 괴로움을 고려할 때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런 걸 두고 ‘미적(美的)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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