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조아린 박기원 감독, 응답한 선수들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2.16 20: 46

[OSEN=장충, 최익래 인턴기자] 백전노장의 진심이 통했다.
대한항공은 16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NH농협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 원정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29-27, 25-23, 25-20)으로 승리했다. 5연승이다. 한 번 흐름을 탄 대한항공은 ‘1강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경기 전 만난 박기원 감독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입을 뗐다. 그는 “경기 브리핑에 앞서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 지난 경기에서 있었던 해프닝에 대해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팬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렸다.

지난 14일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일어난 ‘강민웅 유니폼’ 사태에 대한 사과였다. 박기원 감독은 그 경기에서 강민웅의 부정 유니폼을 가장 먼저 지적했다. 규칙에 어긋난 일이니 어필은 당연했다. 하지만 한국배구연맹(KOVO)의 미흡한 진행으로 25분간 경기가 중단되면서 배구팬들이 피해를 봤다. 박 감독은 배구인으로서 진심을 담아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다.
초유의 해프닝에 당황한 것은 대한항공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기원 감독은 “지난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에게도 사과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배구 선배로서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대한항공 선수단은 14일, 강민웅 사건에 풀세트 접전이 겹치며 체력이 고갈됐다. 엎친데덮친격으로 하루 휴식 후 우리카드와 경기가 열리는 상황. 준비 자체가 쉽지 않았다. 16일 아침 약간의 서브 훈련만 소화했을 뿐이었다. 박기원 감독도 “이런 상황에서 ‘오늘 경기 반드시 잡자’고 주문하기 힘들었다”며 경기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준비 부족에도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박기원 감독의 진심이 통했을까? 본의 아니게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대한항공 선수들은 여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코트를 누볐다. 득점이 나올 때마다 큰 액션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1세트 22-22 동점상황에서 블로킹에 성공한 진상현은 관중석 앞으로 뛰어가 우사인 볼트의 번개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네 차례 듀스 끝에 1세트를 따냈고, 2세트도 25-23으로 간신히 가져갔다. 단 하루 휴식을 취한 대한항공에게는 팽팽한 승부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 선수단 얼굴에서 지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범실이 나올 때도 밝은 얼굴로 서로를 독려했다. 3세트 25-20으로 승부가 확정된 뒤에는 코트 위에서 둥그랗게 모여서서 껑충껑충 뛰며 기쁨을 만끽했다.
올해로 66세가 된 박기원 감독은 V리그 최고령 사령탑이다. 경력도 화려하다. 자존심 강한 박 감독이 고개를 숙였고 선수들은 응답했다. 녹초가 된 대한항공 선수단을 움직인 것은 노감독의 진심이었다. /ing@osen.co.kr
[사진] 장충=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